〈지구의 시간〉전

지구의 변화를 체험하는 〈지구의 시간〉전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지구의 시간〉전
전시장 중앙의 원형 바닥에 물의 순환 작용을 표현한 ‘물의 순환’.

지구의 변화를 체험하는 〈지구의 시간〉전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자이언트스텝이 기획한 이 융복합 콘텐츠 전시는 인스타그래머블한 구성과 환경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미디어 아트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몰입형 전시 기획자 잔프랑코 이안누치Gianfranco Iannuzzi는 2019년 글로벌 개발자 포럼에서 “예술가와 기술자를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고, 예술을 표현하려면 기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기술이 예술의 형식을 새로이 창조하는 요즘, 첨단 기술을 활용해 독특한 미적 경험을 선사하는 전시가 광주에서 열렸다. 지난 7월 1일부터 11월 6일까지 선보이는 〈지구의 시간〉전이 그 주인공. VFX 디자인, 버추얼 휴먼 제작, 메타버스 등을 기획하는 비주얼 콘텐츠 전문 솔루션 기업 자이언트스텝이 기획한 전시로 평소 사람과 환경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이들은 인류에 의한 지구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9점의 작품을 공개했다. 전시 총괄 기획과 디렉팅을 맡은 정우진 자이언트스텝 이사는 “인류세 에 대한 고민이 기획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기후 위기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한 인식 전환을 목표로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LED 스크린형 게이트 ‘이매지너리 포털Imaginary Portal’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가로 17m, 세로 7m에 달하는 이 대형 게이트는 동굴을 모티프로 디자인했으며 선사시대부터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문명, 산업혁명, 근미래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보여줘 앞으로 이어질 전시의 예고편 역할을 한다. 자이언트스텝은 방사형 구조인 전시장을 십분 활용했는데 그중 공간 정중앙의 ‘물의 순환’은 원형 바닥에 물의 순환 작용을 표현하는 반응형 미디어 아트로, 마치 발밑에 수족관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거북이, 해파리, 고래 등 영상 속 다양한 해양생물이 지구의 회복력을 환기하고, 공중의 대형 LED 샹들리에로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물의 순환’을 둘러싼 8점의 미디어 아트는 시청각을 입체적으로 자극하며 인식의 확장을 유도한다. 그중 ‘사운드웨이브Soundwave’는 소리를 활용한다. 전시 공간에 설치한 3개의 마이크를 통해 입력되는 음성을 그래픽으로 구현하는데, 소리에 맞춰 매 순간 변주되는 그래픽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류의 경험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자이언트스텝 인하우스 디자이너 외에도 외부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주제를 다채롭게 표현한 작품들이 돋보였다.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인 변화를 표현해온 미디어 아티스트 클로드Claude와 협업한 ‘라르고Largo’는 액체와 기체로 이루어진 원시 지구를 표현한 작품인데 디지털 입자들이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인류가 일으키는 변화의 속도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원 데이One Day’도 주목할 만하다. 매일 일어나는 자연의 변화를 ‘지구의 기억’으로 재해석해 하루 동안의 하늘을 감상하는 전시인데, 뮤지션 루시드 폴이 자연의 소리를 기반으로 몰입형 사운드를 제작해 한층 현실감을 높였다. 〈지구의 시간〉전은 자이언트스텝이 참여한 독창적인 IP를 전시 형태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미래에서 온 이야기’와 ‘생명의 씨앗’ 모두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함께 제작한 VR 공연 〈비비런〉에 기반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중요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 탈놀이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을 기반으로 만든 비비와 비비런이 환경 파괴로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를 탐험하는 내용인데, ‘미래에서 온 이야기’는 평면 영상으로도 관람객들이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이야기 속 배경을 세트로 구현했다. 무너진 벽돌 더미와 버려진 타이어, 흙 무더기를 활용해 영상 속 세계관의 암울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병든 주인공 비비런이 생명의 씨앗에 의해 치유되는 과정을 표현한 ‘생명의 씨앗’은 비비런 모형 앞으로 다가가면 바닥과 벽면에 꽃이 피어나는 연출로 눈길을 끌었다. 모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꽃이 피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특징.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 외에도 태양계를 통해 지구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뉴 플래니터리 시스템New Planetary System’, 환경 파괴로 변화하는 지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지구의 기억’ 등 환경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신선함을 더했다. 이번 전시는 기후변화를 강조하는 대신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체험형 콘텐츠를 통해 즐거운 관람과 더불어 인류와 지구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끔 한 흥미로운 시도였다. acc.go.kr

전시 총괄 기획 정우진
기획 문지욱, 조인정, 지예선, 고희윤, 박슬기, 강정민
모션 그래픽·포스터 디자인
이원재
사운드 어드바이저 조다원
개발 최승호, 주영렬, 최민엽,
송예지, 김동우, 이아름 영상 제작 김승찬, 김도현, 김민지, 주채영, 이효원
주최·주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동 기획 자이언트스텝
장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전시2관
기간 7월 1일~11월 6일

왼쪽부터) 자이언트스텝 정우진 이사, 최승호 이사.
“ 물성을 활용해 오감을 충족시키는 미디어 아트 전시가 주목받을 것이다.”

기존의 미디어 아트 전시와 〈지구의 시간〉전이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대형 스크린을 일방향으로 바라보는 통상적인 미디어 아트 전시로부터 탈피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원 데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느낌을 주기 위해 360도 영상을 누워서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 ‘뉴 플래니터리 시스템’, ‘미래에서 온 이야기’에서는 구조물과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몰입도를 높였다.

환경보호라는 메시지를 교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 점도 흥미롭다.

특정한 메시지나 결론을 정해놓고 전달하기보다는 작품을 관람하면서 자신만의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전시 준비 단계에서도 관람객의 행동이 정확히 어떤 결과물로 나올지 예상할 수 없도록 미디어 아트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했다. 마이크에 입력된 음성에 따라 그래픽이 달라지는 ‘사운드웨이브’가 대표적이다. 정해진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관람객들이 전시를 즐기고 난 뒤 돌아가는 길에 천천히 경험을 되짚어보면서 작품의 의미를 되짚었으면 한다.

바닥에 발이 닿을 때마다 꽃이 피어나는 체험형 전시 작품 ‘미래의 씨앗’.
방문객들에게 어떤 관람 경험을 전달하고 싶었나?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 구성을 통해 사진 찍는 재미와 더불어 일상 속 소소한 행동이 쌓여 지구 환경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물의 순환’, ‘생명의 씨앗’처럼 실시간으로 관람객들이 하는 행동에 따라 콘텐츠가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일으킨 변화가 다음 세대에 이어질 것이며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앞으로 몰입형 콘텐츠 전시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나?

관객의 다양한 경험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점차 세분화될 것이다. 더 이상 영상으로만 이루어진 전시는 관람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물성을 활용해 오감을 충족시키는 미디어 아트 전시가 주목받을 것이다. 최근 키네틱 미디어 아트 그룹 사일로 랩을 인수한 것도 이러한 전망에서 비롯됐다. 앞으로 자이언트스텝은 기술과 예술, 디자인을 융합해 고객에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힘쓰고자 한다.

글 박종우 기자 인물 사진 이창화 기자
자료 제공 자이언트스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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