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디자인의 필요충분조건, 포스트스탠다즈

포스트스탠다즈라는 이름을 걸고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핀터레스트와 레퍼런스의 세계에서 벗어나 디자인업계의 새로운 표준이 되겠다는 의지로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공간 디자인의 필요충분조건, 포스트스탠다즈

김민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하는 동안 알음알음 공간 디자인을 의뢰받았다. 포스트스탠다즈라는 이름을 걸고 작업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핀터레스트와 레퍼런스의 세계에서 벗어나 디자인업계의 새로운 표준이 되겠다는 의지로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디자인의 당위성을 찾는 데 집중하며 자신만의 직관과 문법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하고자 한다. 디자이너의 의도와 디테일은 도면에서 읽힌다는 것이 그의 지론. 사용자에게 편리함을 주는 실용성을 바탕으로 디자인의 다양한 가치를 좇고 있다. 도쿄, 오사카, 나고야의 에이랜드와 보틀벙커, 아모레퍼시픽 스토리가든의 공간 디자인을 맡았으며 2022 서울국제도서전의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피크닉에서 열린 〈정원 만들기〉 전시를 디자인했다. 2018년부터 매년 〈포스트호텔〉 전시를 개최해 가구 디자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post-standards.com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중국 고대 청동기 – 신에서 인간으로〉. 유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전시 공간의 각 영역이 하나의 방이자 동시에 동선 역할을 겸하도록 설계했다.

2022년은 디자인 과잉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랜드 제품과 공간 요소요소마다 디자인이 강박적으로 가미되어 피로감을 주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물의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졌다. 기본기 없이 영역을 침범하며 디자인의 장벽을 낮추는 이들을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내는 디자이너도 있었다. 포스트스탠다즈는 조금 다른 자세를 취했다. 디자이너들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모종의 스테레오타입이 다소 안일하거나 모호한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자신의 작업에 당위성과 타당성을 부여하는 데 집중했다. 간편하게 조립하고 분해할 수 있는 ‘슈퍼말차’를 통해 한시적인 공간을 이롭게 활용하는 방식을 모색했으며, ‘아모레퍼시픽 스토리가든’에서는 타공판과 레일, 콘센트 배선 기구까지 정교하게 파고들어 유연하고 지속 가능한 전시 공간을 제시했다.

핵심은 필요한 만큼만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설계비부터 묻는 클라이언트에게 그가 건네는 대답은 언제나 같다. “모릅니다. 가용 예산도, 당신이 어떤 이유로 공간을 만드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쪽 같은 그의 태도는 사실 포스트스탠다즈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레퍼런스를 당연시하며 당당하게 요구하는 업계 관행에서 벗어나 ‘디자인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포부로 스튜디오 이름을 지었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과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포스트스탠다즈는 그때와 변함없는 기조로 디자인에 임하고 있다. 작업 과정은 상당히 심플하고 논리적이다. “예산에 따라 평면을 설계하고 매스 스터디를 거친 후 세부 디자인에 들어갑니다. 평면을 설계하는 동안 공간 디자인에 집중한다면 매스 스터디를 하는 순간부터 가구 디자인이 시작됩니다.

상품을 진열하기 위한 필수 조건에 따라 도출한 논리적인 디자인, ‘보틀벙커’.

이와 동시에 평면이 입체화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계속해서 상상합니다. 합리적이고 타당하면서도 심미적인 평면도가 떠오르면 이를 토대로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쌓습니다.” 그야말로 도면에서 시작해 도면으로 끝나는 설계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적성이다. 반드시 필요한 공간인지, 반드시 맞춰야 하는 동선의 폭인지, 반드시 특정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따지고 또 따지며 디자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식의 전개를 원시적이라고도 표현한다. 마치 0과 1의 이진법으로 사고하는 컴퓨터처럼 ‘이것이 필요한가?’, ‘이것이 가능한가?’를 계산해 디테일의 디테일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때문이다. 그의 성향을 잘 대변하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보틀벙커. ‘수납장은 최소 45kg의 하중을 지탱해야 하고, 이는 연결되어야 하며, 기둥과 측판은 양쪽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선반은 고정해야 하고, 탈부착이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라는 미션을 수립하고 이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집기 형태를 도출했다. 모듈식 디자인에 능란해서인지 포스트스탠다즈를 시스템 가구 회사나 VMD 전문 업체로 오해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8년 차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입장에서 다소 억울한 프레임일 수 있으나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일할 뿐”이라고 간명하게 답하며 작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원 만들기〉 전시장 2층의 ‘정원가들’ 디자인. 피트 아우돌프의 스케치를 차용해 영역을 구획하고 동선을 설계했다. 사진 피크닉

그에겐 작업의 범주를 정의하는 것 이상으로 디자인의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포스트스탠다즈는 매년 〈포스트호텔〉이라는 전시를 통해 가구 디자인을 선보이며 올해는 한발 더 나아가 ‘포스트스탠다즈 퍼니처’라는 브랜드 이름을 내걸고 새로운 디자인을 출시할 예정이다. 김민수는 평소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설파한 빅터 파파넥의 이론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디자인이란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의식적이고 직관적인 노력이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무익한 디자인에 대항하는 포스트스탠다즈가 유용함과 아름다움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기를 응원한다.
글 정인호 기자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 세 가지

논리적인, 합리적인, 의도적인.

지난해 소비 중 가장 만족하는 것

배드배드낫굿의 〈IV〉, 키스 맨스필드와 존 캐머런의 〈Voices In Harmony〉, MFSB의 〈MFSB〉(셋 다 바이닐 앨범으로 구매했다), 히라야마 마사나오의 튤립 그림, 그래픽 노블 〈The Electric State〉, 최경주 작가의 카펫.

WRM 스페이스에서 열린 〈포스트호텔 2〉. 여성 방문자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좌판의 폭을 좁히고 등받이를 낮추는 등 의도적으로 스케일을 줄였다.
지난해 날 설레게 한 디자인

식스티세컨즈 도산, 아모레퍼시픽 오산 공장, WMV 비즈빔 도쿄, 아오야마의 발렌시아가 매장.

디자이너를 건강하게 만드는 습관

긴장의 끈 놓지 않기, 삼시세끼 챙겨 먹기, 수시로 움직이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웨이트 트레이닝은 필수.

자신과 직결되어 있다고 보는 사회적 이슈

(직결되지 않은 이슈를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렵지만)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그리고 여전히 심심치 않게 들리는 반려동물 학대 사건.

새해 계획

적당한 휴식. 강아지, 고양이, 가족 사랑.
신뢰할 수 있는 디자이너 채용.

올해 꼭 만나고 싶은 클라이언트

호텔을 비롯한 숙박 시설, 쾌적한 동선 설계와 공간 구획이 가능한 사무 공간, 라이프스타일에 진정성 있게 접근하는 브랜드의 매장. 무엇보다 디자이너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클라이언트.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35호(2023.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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