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ding/구부림〉전
디자인 컬렉티브 ‘워크플레이’가 구부림을 주제로 첫 전시 〈Bending/구부림〉전을 열었다
디자인 컬렉티브 ‘워크플레이’가 구부림을 주제로 첫 전시 〈Bending/구부림〉전을 열었다. 마치 디자이너들의 진지한 놀이터 한복판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디자이너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까? 디자인 컬렉티브 워크플레이Workplay가 지난 3월 10일부터 19일까지 BKID 사옥에서 연 첫 단체전 〈Bending/구부림〉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워크플레이의 목적은 그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일과 놀이 사이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길을 모색하는 데에 있다. 첫 번째 주제로 선택한 ‘구부림’은 비단 조형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워크플레이는 평소 작업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구부림의 속성을 개념적으로 확장했다. 의도치 않게 발견한 구부림의 패턴을 적용하거나, 실제 구부림의 조형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는 등 탐구 과정이 돋보였다. 전시에서 눈에 띈 건 다양한 시행착오다. 일반 전시와 다르게 실패의 과정과 우연한 발견을 거리낌 없이 노출했다. 일례로 데이라이트 성정기 디렉터는 숲을 닮은 모듈 벤치 ‘아치아치ArchArch’를 선보였는데, 완성된 작품 옆에 프로토타입을 함께 두어 하나의 디자인이 다듬어지는 과정을 공개했다. 그는 이 벤치가 아치의 건축적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하며 “구부림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구부림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이장섭 교수와 스타트업 데이원랩 역시 시행착오를 전면에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구부림을 표현하기 위해 바이오플라스틱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의도찮게 발생한 물결무늬를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대신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삼았다. 이렇게 완성한 소재의 이름은 ‘보어텍스Vortex’. 소용돌이를 뜻한다. 이 밖에 BKID 송봉규 대표와 공간 디자이너 정순구는 가장 오래된 탈것이자 구부린 재료에 의해 형태가 결정되는 카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이는 공예부터 하이테크까지 디자인 전반에 관심을 보여온 송봉규의 수공예를 향한 애정이 드러나는 지점이었다.
(중) 이성용과 미헬 뷔테파게의 ‘타입튜브’.
(우) 보어텍스와 함께 전시한 다양한 소재.
또 이성용디자인의 이성용 대표와 그래픽 디자이너 미헬 뷔테파게Michel Bütepage는 글자의 획을 입체적으로 구부려 새로운 조형을 만들어냈다. 정면에서 보면 일반 글자 모양이지만, 보는 각도를 틀었을 때 획들이 공중에서 꼬여 새로운 조형을 만드는 게 특징이다. 조기상이 다른 팀원들과 함께 구부린 것은 사물이 아닌 상황이었다. 구부릴 줄 모르고 뻣뻣한 상황이 있다는 것을 관찰한 이들은 해결책으로 서로를 향해 자연스레 구부려 예의를 지킬 수 있게 하는 술병과 술잔을 제시했다. 이로써 부드러운 술자리를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전시된 작품들은 실제 가구나 제품으로도 기능하며 관객들이 부담 없이 앉고 만져보고 사용해봤다. 디자이너들의 실험실, 가능성의 요람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 워크플레이의 이번 전시는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workplay2023
글 정영수 담당 박종우 기자 사진 페노메노 자료 제공 BKID
참여 작가
성정기(데이라이트 디렉터), 송봉규(BKID 대표)·정순구, 이성용(이성용디자인 대표)·미헬 뷔테파게, 이장섭(서울대학교 교수)·데이원랩, 조기상, 김민지, 이양지(페노메노), 최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