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 디 카라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틸라 베레스
아틸라 베레스에게 오늘날 소재의 중요성과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에 관해 물었다.
루체 디 카라라Luce di Carrar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아틸라 베레스Attila Veress의 부산글로벌디자인포럼 강연을 들으며 문득 미켈란젤로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대리석 속에 갇힌 천사를 보았고 그가 차가운 돌 속에서 자유롭게 풀려날 때까지 돌을 깎았다.” 본질과 마주하고자 하는 창작자의 열정을 이만큼 잘 드러내는 말이 또 있을까? 3M, BMW에서 재직한 이력이 있는 아틸라 베레스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아르테미테, 카시나 등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와 협업했고, 2021년 토스카니 지방의 이 유서 깊은 대리석 브랜드에 합류했다. 그는 소재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과 본질을 포착하고자 부단히 애쓰고 있다. 아틸라 베레스에게 오늘날 소재의 중요성과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에 관해 물었다.
올해 부산글로벌디자인포럼에서 ‘Tangible in Tangible’을 주제로 강연했다. 어떤 의미가 담긴 제목인가?
디지털 경험에 둘러싸인 현재 우리의 상황에 대한 은유였다. 동시에 사물이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생산되었고, 어떻게 인식될 수 있는지 영감을 주고, 행동을 촉구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현재 몸담고 있는 루체 디 카라라에 관해 소개해달라.
루체 디 카라라는 소재와 스토리, 개성을 결합해 독창적인 환경을 연출하는 대리석 브랜드다. 대리석은 우리의 영혼이고 이탈리아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루체 디 카라라는 이러한 대리석 원료를 다른 (시각적) 언어로 번역해 전 세계에 특별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클라이언트들의 개성과 비전이 모두 다른 것처럼 우리가 조심스럽게 고른 대리석 조각들도 저마다 독특한 질감, 크기, 그것만의 역사가 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공간 디자이너들과 건축가들은 (물리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라는) 두 세계를 결합해 상징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작품을 만든다. 우리는 다양한 요구를 수렴해 외장재부터 욕실, 거실, 실외 및 가정 장식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인 ‘토털 룩’ 연출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한 게 인상적이다.
우리는 다년간 많은 건축가 및 디자이너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협업 방식 역시 수년에 걸쳐 진화했다. 우리는 크리에이터들과 비스포크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도 있었기 때문에 루체 디 카라라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데 돌을 다루는 그들의 지혜를 ‘초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강연에선 주로 브랜드의 카탈로그 제작 과정을 소개했다. 그 외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카탈로그 기획, 개발, 실행을 주로 맡고 있다. 내부 프로젝트를 연계하고 감독 및 관리하는 역할도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마케팅 팀과 협력해 회사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있으며, 신제품 발굴의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연구, 개발하고 제조 팀과도 협력하고 있다. 전 세계에 회사를 소개하고, 건축가와 공간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도 나의 역할이다. 따라서 유연하고 인간 중심적이어야 하며, 일련의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동시에 조정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유연함은 당신의 성장 배경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아랍에미리트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밀라노 IED를 졸업한 이래 줄곧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다.
헝가리에 살던 어린 시절에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공방에서 직접 물건을 만들거나, 만드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도시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목도했다. 이는 각각의 방식으로 나의 창조성에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도시와 삶의 방식을 창조해나가는 인간의 상상력과 잠재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풍부한 역사와 더불어 혁신과 창의성이 내재된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내게 큰 행운이었다.
소재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볼까 한다. 오늘날 소재가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산업 디자이너에게 소재는 이전에도 늘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디자인 과정에서 재료가 중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물질 자체가 갖는 기능적 특성, 즉 유용함이다. 둘째는 감정을 전달하는 미학성이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성을 들 수 있다. 지속 가능성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소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채석이 필수 불가결한 루체 디 카라라는 어떻게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나?
우리는 천연 물질을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했다.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석재를 설계, 엔지니어링, 변형하는 각 과정마다 이러한 방법론이 깃들어 있다. 채석한 블록으로 가능한 한 많은 물체와 솔루션을 생성하도록 최적화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자연석을 업사이클링하거나 재활용해 다른 분야에서 부산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독특한 소재를 세대에 걸쳐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