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을 돌볼 줄 아는 산업디자이너 이석우
제조업 4.0시대, 산업 디자인 회사가 하는 일의 최전선을 묻기에 이석우만 한 디자이너가 드물다.
사물이 사용자에게 말을 거는 시대, 제품의 정의가 달라졌다. 산업 디자이너는 이제 제품뿐 아니라 공간과 사용자 경험, 나아가 전략적 혁신과 디자인 싱킹 프로세스를 아우르는 역량까지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제조 기업과 거대 IT 기업은 실력 좋은 디자이너를 인하우스로 끌어들여 내부 역량을 강화하고 있고, 국내 1세대 산업 디자인 회사들은 중국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클라이언트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좋은 상품을 직접 만들어보고자 디자인 전문 회사가 유통과 제조까지 챙기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디자인 전문 회사의 역할을 스스로 재정의하며 승승장구 하는 SWNA의 이석우 대표가 반가운 이유다. SWNA는 최근 평창동계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했고, 디즈니의 마블 캐릭터 콘셉트 어패럴 및 제품 디자인과 델(Dell)의 새로운 랩톱 디자인 전략을 세우는 한편 SK화학의 가스 충전 서비스 디자인에 오는 8월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리는 SWNA의 첫 전시 <Art of Process> 준비로 2009년 설립 이래 가장 바쁘다. 제조업 4.0시대, 산업 디자인 회사가 하는 일의 최전선을 묻기에 이석우만 한 디자이너가 드물다.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정리·글: 김은아 기자 인물 사진: 목나정
EK 사실 월간 <디자인> 편집장으로서 이석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우리의 오랜 독자였다는 사실이에요. 고등학교1학년 때부터 월간 <디자인>을 구독한 매우 훌륭한 학생이었다고.(웃음)
SW 1995년부터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노란색 표지의 200호 특집은 아직도 집에 보관하고 있어요.(웃음) 인터넷도 없던 그때 월간 〈디자인〉을 통해 좋은 정보를 많이 접했죠. 특히 해외 디자이너 소식을 많이 찾아 읽었어요. 저는 잡지 정독하는 걸 좋아하는데 디자이너가 된 지금도 업계 소식을 접하기 위한 의무감에서라도 월간 〈디자인〉을 매달 보고 있어요.
EK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대학은 시각디자인과를 지원했지만 특차에서 떨어져 산업디자인과로 진학했다고요.
SW 순수 미술을 좋아하긴 했는데, 잘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재료를 새기고 빚어서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계산해서 딱 떨어지게 각을 맞추는 작업이 더 성격에 맞았어요. 조소과 입시에 떨어진 후 시각디자인과를 목표로 재수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산업디자인과에 붙었는데, 시각 디자인에 미련이 남아서 복수 전공을 했죠. 원래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건 제품이 아니라 그 이미지 자체이기에 시각 디자인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K 어쩐지, 지금까지 이석우의 작업을 보면 제품 자체도 그렇지만 패키지나 사진, 그래픽을 통한 프레젠테이션과 시각적 전달력이 좋다고 느꼈거든요. 시각 디자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산업 디자인의 매력에 빠진 계기는 뭐였나요?
SW 그 당시 제품 디자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컴퓨터, 휴대폰, 비디오 플레이어 같은 제품이 저에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그러다 비트라 가구와 나오토 후카사와가 디자인한 무지의 CD플레이어를 알게 되면서 제품 디자이너가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처음 알게 됐고, 나도 이런 일을 해봐야겠다 마음을 정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래픽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요. 평창 올림픽 메달 디자인에서도 메달 끈의 각도나 프린트 같은 그래픽적 요소에도 신경을 많이 써요. 예를 들면 소주 네이밍과 BI를 디자인하다가 소주 브랜딩으로 영역을 넓히는 선배들의 아이덴티티 회사처럼, 소주병을 디자인하는 산업 디자이너도 브랜드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저는 프로덕트를 기반으로 그래픽, 브랜드, 공간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아요.
이석우는 홍대 앞에서 산업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컨설팅 회사 SWNA(SW & Associates)를 운영한다. 2008년 송봉규와 공동 대표로 설립한 SWBK로 활동하던 이석우는 홀로서기를 결심한 후 2016년 4월 지금의 오피스로 이사 와 SWNA로 회사명을 바꿔 달았다. 내부 변화에 휘청이지 않은 덕에 오히려 클라이언트는 늘었고 프로젝트 종류도 더 다양해졌다. 스튜디오를 방문한 날도 20명의 직원이 12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매우 분주했고, 인터뷰 중간중간 직원들이 다가와 그와 의견을 나눴다. 스타트업과 개발 중인 스마트 글라스, 경기도주식회사와 협업하는 재난 키트 디자인, 디즈니의 2017 F/W 마블 컬렉션 콘셉트 디자인 등 궁금증을 자아내는 프로젝트가 한가득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클라이언트들의 공통된 주문이 있단다. 바로 ‘SWNA의 색깔을 최대한 내달라’는 것. 일을 의뢰할 때 클라이언트가 정확한 요구를 하기보다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SWNA의 방식에 귀 기울이는, 이른바 부티크 회사로 자리매김했다는 의미다.
EK 클라이언트들이 구체적으로 SWNA에 어떤 식으로 의뢰를 하나요?
SW 최근 델(Dell)의 랩톱 디자인 랭기지 개발을 맡았는데 ‘너희 식대로 해석한 델을 보여달라’는 게 주요 과제였어요. LG전자와 했던 모바일 기기 프로젝트의 경우도 그렇고요. 그러면 SWNA는 ‘내년에 이런 디자인의 휴대폰을 출시해보는 게 어떨까’ 답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CMF를 기반으로 재질을 먼저 연구한 다음에 거기에서 영감받은 콘셉트를 방향성으로 갖고 가자’라는 전략을 제시하는 식이죠.
EK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루나(Luna), 아스트로 스튜디오(Astro Studios), 겍코(Gecko) 등 디자인 전문 회사들이 대기업의 인하우스로 인수합병되는 경우가 많아요. 디자인 전문성 만으로 뭔가 새로운 걸 해보려는 회사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은데요.
SW 대기업이 디자인 전문 회사를 인수되면 성격이 많이 바뀌죠. 순수한 프로덕트 디자인 업무는 줄고 금융이나 전략 시스템 컨설팅 쪽 비중이 커져요. 제조 산업에 일대 지각 변동이 일면서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요. 기존 제조와 맞물렸던 회사들이 없어지거나 합병되니까, 디자인 회사들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에 새로운 역량이 추가되어야 하는 거죠. 디자인 & 엔지니어링, 디자인 & 마케팅, 디자인 & 브랜딩처럼 말이에요.
EK 그런 추세가 오히려 SWNA를 돋보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이얼과 레노보 등 중국 기업과도 일하는데, 중국 회사들은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SWNA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나요?
SW 2013년부터 레노보와 전략 컨설팅을, 2014년 말부터 하이얼과 제품 개발과 리서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중국은 스타일링 측면에서는 많이 발전했지만 최종 마감이나 색상 선택 등 CMF(Color, Material, Finish) 면에서는 여전히 한국 제품을 높게 평가해요. 저희가 의뢰받는 것은 당장 양산할 제품 디자인보다 ‘뉴 콘셉트 에어컨의 선행 디자인과 CMF 개발’과 같은 프로젝트죠. 컬러와 재질, 마감 방식에 주력한다는 것은 사실 조형이나 사용성과 같은 부분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는 소리거든요. 그 어느 나라보다, 그 어느 때보다 학습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는 걸 체감합니다.
이석우는 대학 재학 시절 2년간 삼성의 산학 협력 프로그램 ‘디자인 멤버십’을 통해 일찍이 기업 경험을 했고, 해외 지사에 파견되어 삼성 LA모바일랩에서도 근무해봤다. 당시 삼성전자가 미국 IDEA공모전에서 수상해 신문 기사가 난 걸 보고 ‘나도 도전해봐야겠다’ 싶어 2004년 졸업 작품을 출품했고 이듬해인 2005년 IDEA학생 어워드에서 당당히 금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미끈한 흰색의CD 플레이어와 조명을 결합한 제품이었다. 조명이 비추는 곳에 가상의 리모컨 인터페이스가 뜨고 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음악이 재생되는 획기적인 디지털 인터페이스 콘셉트에 심사위원 존 마에다(John Maeda)는 ‘웰 던’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일상적인 공간을 해치지 않고 소박하게 자리하는 조선백자를 연상시키는 CD 플레이어는 그가 추구하는 디지털 기기의 정의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바로 그 시상식에서 퓨즈 프로젝트의 이브 베하(Yves Behar)를 만나 명함을 건네받았다. 졸업 직후 삼성전자에 정식 입사한 게 6월, 교육을 받던 중 회사 측의 배려로 워싱턴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참여한 게 7월이었다. 수많은 준비와 고민의 나날, 수십 통의 이메일이 오간 뒤 이듬해 9월 샌프란시스코의 퓨즈 프로젝트로 직장을 옮겼다.
EK 대기업 입사도 힘든데 그 어렵다는 해외 공모전 수상에 해외 취업까지, 추진력이 대단한데요. 퓨즈 프로젝트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SW 엄청 고생했죠. (웃음) 이브 베하가 저를 직접 픽업한 셈인데 그는 출장 다니느라 오피스에 없고, 아트 디렉터와 다른 동료들의 텃세에 언어장벽도 있었어요. 퓨즈 프로젝트는 겉으로는 이브 베하의 리더십에 크게 좌우되는 부티크 회사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렇게 작은 조직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회사에 가까워요. 당시만 해도 인원이 40명 정도로 꽤 많아서 이브 베하 밑에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프로젝트별로 결과물을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이브 베하가 모든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해서 지휘하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8개월 동안 일하면서 많이 움츠러들어 향수병이 다 걸렸어요.
EK 의외인데요.(웃음) 그래도 돌아오지 않고 미국 산업 디자인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티그 디자인(Teague Design)에서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로 일했잖아요.
SW 분위기가 가족적이고 편안해서 좋았어요. 보잉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디자인 프로세스와 같은 발상법이었어요.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을 보면 스케치를 정교하게 참 잘해요. 반면에 영국이나 프랑스 친구들은 언뜻 보면 성의 없이 대충, 매우 추상적인 것 같지만 저마다 스타일이 있어요. 자신만의 정의를 확실히 내리는 거죠. 티그에서는 아이디어 스케치도 디렉터부터 인턴까지 다 같이 하고 서로의 스케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확실히 당시 한국 회사와 같은 문화는 아니었죠.
EK 그다음에는 당시 레이져와 같은 피처폰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모토로라로 옮겼는데요, 당시 모토로라 서울 스튜디오는 미국 본사에 이어 규모가 가장 컸던 걸로 알아요. 얼리어답터인 국내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서울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한 신제품이 글로벌 모델로 출시되기도 했고요.
SW 제가 98학번인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전자 제품은 미국 아니면 유럽이었고 휴대폰 하면 노키아가 1위, 2위 모토로라, 3위 소니 에릭슨, 그리고 삼성이 아마 그다음이었을 거예요. 그만큼 모토로라, 노키아 디자인을 최고로 치던 시절이었죠. 미국에서 일하면서 유럽으로 이직하고 싶어 알아보던 중 마침 노키아와 함께 1, 2위를 다투던 모토로라가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리드’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 공식적인 기업 경력으로는 사실 과분한 자리였다고 봐요. 당시 모토로라 본사 디자인전략기획팀의 황성걸 센터장님(현 홍익대 교수)이 한국 스튜디오 총괄 상무로 오면서 저에게 적합한 인물을 추천해달라고 하셨죠. 그러다 결국 저더러 한번 지원해보라고 권해서 혹시나 하고 시카고 본사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왔는데, 파격적인 대우로 수석부장 직함을 달게 된 거죠. 모토로라 코리아 소속으로 글로벌 업무를 담당했어요. 제가 디자인에 참여한 모토로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안드로이드폰이었는데, 그때는 꽤 이슈가 됐죠
EK 모토로라로 옮길 때 당시 상사였던 황성걸 상무에게 조건을 하나 붙였다고요.
SW 일과 외에는 개인 작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분은 원체 미국식이랄까, 직원 스스로의 판단을 믿고 맡기시는 분이라 크게 괘념치 않으셨어요. 시간은 알아서 사용하되 프로젝트 품질과 전달 시간은 칼같이 지키라고 하셨어요. 일반 기업들이 개인적인 외부 활동에 민감했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이었죠. 월, 화, 수, 목, 금요일은 모토로라에서 아침8시부터 저녁8시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고,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는 개인 작업과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했어요. 월요병이 아니라 금요병이 있었죠. (웃음) 종래에는 작은 사무실도 빌려가며 회사 다니면서 2년을 그렇게 했어요. SWBK의 전신인 거죠.
EK 일종의 투잡을 가지면서 독립할 기회를 엿본 거군요. 그럼 언제쯤 ‘이제는 됐다, 그만두고 내 사업을 시작하자’ 했나요?
SW 산업 디자인은 바늘부터 우주선까지라고 하잖아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은 게 모든 산업 디자이너의 꿈이겠죠. 보통 그러기 위해서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거나 개인 회사를 차려야 하죠. 이제 와서 말할 수 있는 거지만, 당시에 제가 모토로라 소속인 걸 밝히지 않은 채 개인 디자이너로 처음 일한 클라이언트가 대림이었어요. e편한세상 아파트에 들어갈 스위치 디자인을 했는데 반응이 좋아 추가 프로젝트로 이어지며 일이 늘었죠. 본업과 병행하기 힘든 시기가 왔고, 지금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퇴사를 결심했어요. 대림과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그렇게 퇴사해서 회사 셋업을 시작했고 2달쯤 후에 파트너 송봉규 씨도 다니던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합류해 2009년 1월 본격적으로 SWBK를 시작했죠.
EK 가만 보니 회사에서 좋아하는 직원은 아니었겠어요.(웃음)
SW 초반에는 뜀뛰기 너무 한다는 소리도 들었죠. 진득하게 좀 있으라는 충고도 많았고요. 다음 스텝에 대해 자신감과 열정이 넘쳐서라기보다는, 대학생 때부터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일해보는 것과 제 회사를 갖는 게 꿈이여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여러 직장을 일찍 포기했다기보다는 각각의 시스템이 어떤 건지 경험해야만 했다고 봐요. 작게는 견적서 쓰는 법, 비용 계산법부터 발상법까지 많이 배웠거든요. 한편으로는 저도 그렇게 성장했기 때문에 저와 SWNA에서 일하다 해외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친구들에게도 같은 마음이에요.
이석우가 여느 산업 디자이너와 달랐던 가장 큰 부분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 이상으로 제품을 돌볼 줄 알았다는 거다. 제품 양산에 그치지 않고 동봉하는 브로슈어의 서체와 종이 재질부터 미디어에 보내는 보도자료 속 사진 한 장까지 섬세하게 챙겼다. 프로모션에 능한 기질은 자발적인 전시 경험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2005년에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참여해, 훗날 IDEA에 출품해 수상한 CD 플레이어를 들고 나와 열심히 소개했고, 2006년 4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 가서 영감을 받아 다녀오자마자 동료 디자이너 변동진과 BMH갤러리에서 그동안 만든 CD플레이어와 조명, 테이블 등을 전시했다. 산업 디자인 제품을 전시하는 것이 분명 흔치 않은 때였다. 2011년에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아직 정식 론칭하지 않은 매터앤매터의 의자 샘플을 들고 나와 부스를 지켰다. 수많은 전시, 수많은 부스 중에도 돋보일 수 있도록 차별화된 색을 입히는 연습을 하며 제품이 놓인 공간과 관람객 전체를 바라보는 입체적인 눈을 길렀다.
EK 2011년에는 가구 브랜드 매터앤매터를 론칭했어요.
SW 가구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원래 산업 디자이너들에게 조명이나 의자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잖아요. 휴대폰 같은 대량생산을 위한 디자인에는 반영할 수 없는 디자인 철학이나 조형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나 봐요. 처음에는 저의 스케치를 실물로 구현해줄 파트너를 찾다가 마땅한 제조업체를 찾지 못해서 우리가 직접 생산까지 해보자 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EK 매터앤매터는 당시 금호미술관 <뉴웨이브>전에서 다른 5명의 젊은 가구 디자이너와 함께 전시도 했죠. 인도네시아 폐목재를 활용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담겼지만, 당시 유행하던 ‘업사이클링’이라기보다 산업 디자인의 프로세스로 접근한 관점이 핵심이었어요.
SW 특이하긴 했죠. 가구를 휴대폰이나 컴퓨터 만들 듯 산업 디자인의 프로세스로 접근했으니까요.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2D 드로잉을 하고 3D로 렌더링한 다음 다시 종이로 출력해서 입체적으로 만들어보고 또다시 조정하기를 반복했어요. 그래서 조형 자체는 단순한데 느낌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가구 디자이너 눈으로 봤을 때 말이 안 되는 곡면이 많거든요. 심플해 보이는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지오메트리가 되게 복잡하죠. 흔히 나무의 특성이나 짜임, 구조를 생각해서 가구를 만드는 데 반해 저희는 면적을 3D모델링으로 치환해서 산업 디자인 프로세스를 적용했어요. 개발 프로세스는 이랬지만 실제 제작은 인도네시아 장인들이 했기에 오히려 거꾸로 모델링한 것을 2D도면으로 만들어서 장인들에게 줬어요. 지금도 이렇게 디자인하는 곳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어요.
EK 매터앤매터를 계기로 공간, 설치, 브랜딩에 이르기까지 활동 영역이 확장되기도 했죠?
SW 사실 자본금이 부족해서 직영 매장을 내기 전에 종종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어요. 홍대 앞편집매장 플랫폼 플레이스나 에이랜드, 상수동의 창고형 카페 앤트러사이트 등 브랜드와 어울리는 핫 플레이스와 인연이 닿아 게릴라식으로 선보이면서 자연스레 입소문을 탔죠. 카페 코나퀸즈의 경우에도 처음엔 매터앤매터 가구 구매 건으로 연락해왔는데, 저희가 저희 가구가 놓일 공간 인테리어까지 전체적으로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인테리어 디자인도 하는지 몰랐다’며 인테리어는 물론 익스테리어, 브랜딩까지 필요한데 입찰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으셔서 경쟁 PT에 참여했고, 프로젝트를 따냈죠. 공간과 브랜드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브랜드 네이밍부터 가구 디자인, 비주얼 아트 디렉션까지 이석우가 직접 관여한 브랜드다.
EK 그러다 2012년 아모레퍼시픽 설화수의 <설화문화전> 아트 디렉터를 맡았습니다. 전시야 말로 모든 디자인 영역의 복합체잖아요. 이 경험은 어땠어요?
SW 〈설화문화전〉은 설화수가 시도하는 새로운 한국 문화 후원의 장이었는데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조심스러운 과제였어요. 사실 주제가 ‘옹기’라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전시장은 학고재였는데, 학고재에 옹기 갖다 놓으면 민속촌이잖아요?(웃음). 장인 5명과 현대 작가 5명으로 라인업이 짜여 있는 상황에서 전시 방향부터 재정의했어요. 한복을 입은 전통 장인의 이미지 대신 전문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당장 패션 화보에 나와도 손색없도록 사진 촬영을 했어요. 크리에이터로서 장인을 재조명한 거죠. 반면 전시작은 최대한 단순하게 설치하고 대신 간결한 인터랙션 장치를 설치했어요. 관람객이 다가오면 센서가 인식해 스크린에 장인의 주특기를 소개하는 정보가 이미지와 소리로 나타나는 거예요. 특기가 불로 옹기를 굽는 장인이면 자작자작 불 때는소리와 불꽃의 이미지가 뜨는 거죠. 전통적인 요소에 기술적인 인터랙션을 가미해 콘트라스트를 줬어요. 이 영상을 전시 티저로 SNS 홍보도 하며 굉장히 총체적인 경험을 한 거죠. 매우 재미있었어요.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1세대 산업 디자인 회사들은 실력만큼이나 시대적 운도 따랐다. 전자 회사와 이동통신 대기업은 1년에 60개에 가까운 휴대폰을 출시했고, 내부에 디자인 팀을 꾸리기보다 디자인 전문 회사를 찾았다. 1년에 LG나 삼성 같은 대기업이 서너 개 정도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고 내부에 수백 명 규모의 디자인 센터를 꾸리는 지금과는 판이 달랐다. 제조업이 통합화, 단순화, 전문화되면서 디자이너의 일감이 줄어든 반면, 제품뿐 아니라 인테리어와 서비스와 브랜드를 이해하는 디자이너에 대한 수요는 높아졌고 오히려 이를 충족시키는 디자이너가 귀해졌다. 이석우는 그 과도기가 빚어낸 ‘젊은 디자이너’의 본보기 같았다. “2차 산업에 머물러 있던 디자이너들이 네이버, KT, SKT, 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처럼 3차 산업 회사의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죠. 이제는 네이버나 LG유플러스에서도 가구를 디자인해달라고 의뢰하니까요. 그런데 이들이 요구하는 제품은 기존 제품과 조금 달라요. 좀 더 인테리어와 통합되고 서비스와 브랜드를 알아야 하는 제품이랄까요. 제가 보기에는 프로젝트 수가 줄어든 게 아니라 업이 변한 거예요.” 누구보다 새로운 흐름에 빨리 적응하고 많이 시도해야 했던 혹독한 시대적 숙명이 어느새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신축성 있는 라이크라 소재와 CNC로 정밀 가공한 목재를 이용했다.
(우) Leg Chair, 2011
매터앤매터의 대표 의자로, 둥글게 처리한 다리, 시트, 등받이 부분과 직사각형과 원형을 조합한 형태는 3D 모델링 기법으로 접근했기에 가능했다.
EK SWBK를 함께 시작한 송봉규 디자이너와 결별한 이야기를 좀 들어볼게요. 공식적으로는 2016년 4월을 기점으로 이석우의 SWNA, 송봉규의 BKID로 분리해서 각각 산업과 리빙 부문에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요.
SW 송봉규 씨는 어떤 파트너와 협업하면 시너지가 있을지를 집어내는 데 매우 능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잘하는 디자이너예요. 초기에는 그러한 능력을 바탕으로 한 작업 방식이 잘 맞았는데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트러블이 생겼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시점에 제가 먼저 분리를 제안했어요. 비전과 영역이 맞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투자를 받아 법인으로 분리했던 매터앤매터는 앞으로 제가 3년 동안 단독 대표를 맡기로 주주들과 협의한 상황이라 쇼룸도 재정비하는 중이고요.
EK 그랬군요. 가뜩이나 산업 디자인 전문 회사가 줄어드는 마당에 최고의 듀오를 못 보나 싶어 놀랍고 아쉬웠던 게 사실이에요. 사실 국내 1세대 산업 디자인 회사를 이끌던 디자이너들이 회사를 떠나거나 중국 진출로 탈출구를 찾는 경우가 많지만 여전히 전반적으로 정체 상황인 것 같아요. SWNA는 내부적으로 재정비를 거친 상황에서 이 시기를 어떻게 돌파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SW 산업 디자인 전문 회사가 드물긴 해요. 제 또래의 우수한 디자이너들은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에 다니죠. 저와 경쟁할 수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 다 큰 회사에 있어요. 개인 회사를 할 수 있는 역량은 충분히 있다고 봐요. 다만 그들이 졸업하던 2000년대 중반이 딱히 산업 디자인의 호황기는 아니었던 터라 그때 기업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거죠. 기업만큼 산업 디자이너를 대우해주는 곳도 없고요.
펜의 색과 질감에 따라 다른 종류를 새를 상상하게 되는 펜 정리함. 메이플 수종을 CNC로 가공해 만들었다.
EK 산업 디자인이라는 분야의 복합적인 특성도 한몫했겠죠?
SW 프로젝트가 더 전문적이면서 절대적인 수가 적죠. 예를 들면 기업의 브로슈어나 기업 아이덴티티, 애뉴얼 리포트 등은 개인 디자이너도 능력만 있다면 맡을 수 있잖아요. 행여나 결과물이 좋지 않더라도 기업이 폭삭 망할 위험 부담도 없고요. 근데 제품 디자인은 기업의 사활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고 잘못 만들면 설비 투자로 몇십억이 날아갈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경력이 적은 디자이너에게 선뜻 일을 맡기지 않아요. 대기업과 일할 만한 회사는 포트폴리오가 받쳐줘야 하는데, 그런 포트폴리오를 채울 만한 레퍼런스 프로젝트를 의뢰해오는 중소기업도 별로 없죠. 저 같은 경우는 다행히 해외에서 경력이 있었고, 바로 회사를 시작한 게 아니라 기업과 스튜디오를 2년 정도 병행하며 검증 과정을 거쳤기에 그나마 쉽게 시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EK e-북이라든가 전기 자동차 충전식 시스템 등 아무래도 산업 디자인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할 텐데 어떤 식으로 준비하나요?
SW 기술과 산업 디자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저희 클라이언트 중 가구나 조명 회사도 있지만, LG, 삼성, 델, 모토로라 같은 IT 제조 기업이 특히 많아요. 매출액으로 따지면 아마 70~80%가 테크 부문에서 나올 거예요. 그래픽 디자인이 출판·인쇄업계와 긴밀한 것처럼요. 사실 테크놀로지에 민감한 사람들이 산업 디자인을 잘할 수 있어요. 엔지니어나 기술자들과 협업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저는 거부감 자체가 없고 좋아해요. 〈더 기어〉 나 〈씨넷〉 같은 미디어를 잡지나 앱으로 늘 달고 살고요.
EK 자, 그럼 오늘날 산업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나요?
SW 오브제, 즉 입체물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시대에 따라 제품에 공간, 라이프스타일 등의 개념이 더해져 본질을 아우르는 범위가 넓어지겠지만 여전히 제품은 쌀을 정제하고 남은 낱알 같은 거예요. 예전에는 본질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지만 이젠 아니에요. 예를 들면 냉장고, 휴대폰 디자인 같은 것이 싹 자취를 감췄죠. 그러더니 ioT라는 게 제품에 한 겹 덧씌워져 ‘ioT제품’이 됐어요. 그리고 자연스레 서비스에 대한 사용자의 이해가 바뀌었죠. 역설적이지만 테크나 공간, 브랜딩 등 통합적인 접근법으로 다가서는 이유도 결국 본질을 정말 잘하기 위해서인 셈이에요.
전체적으로 미니멀하면서도 디지털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아트 디렉션을 선보였다. 옹기 뒤편에 설치한 인터랙티브 영상은 관람객이 다가가면 제주 앞바다, 1250℃의 가마 불꽃 등을 이미지와 소리로 전달해 공감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로서는 역시 산업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옹기를 재해석했는데, 흙을 빚어 쌓아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옹기토를 틀에 넣어 작은 조각 오브제를 양산해 기왓장과 같은 건물 외장 마감재로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EK (이석우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전화 온 것 같은데요, 받아보세요.
SW 아니요, 저녁 8시를 알리는 알람이에요. 그만하고 퇴근하라고 설정해두었어요.(웃음)
EK 그런 걸 보면 참 성실한 워커홀릭 같은데, 평소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SW 별일 없으면 오전 8시에서 8시 반에는 출근해요. 웬만하면 저녁 8시에는 퇴근하려고 하고요. 요즘 제일 중요한 게 ‘어떻게 오전 시간을 확보하느냐’예요. 되도록이면 미팅 시간도 오전으로 안 잡고 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오전 시간을 확보해 단 30분만이라도 제 시간을 갖고 스케치를 하려고 하죠. 언젠가 문득 이걸 놓치는 순간 어설픈 비즈니스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못하다간 디자인은 못 하고 비즈니스만 하는 거죠. 물론 경영자이기도 하니 비즈니스도 제 일은 맞는데, 저는 아무리 봐도 그쪽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하루 중 제일 좋은 시간은 작업할 때죠. 다음 날 일정이 회사에서 일만 하는 거라면 그날이 제일 좋은 날이에요. 외부 미팅 스케줄이 많거나 하면 그 전날부터 스트레스 받고요.
EK 산업 디자이너로 롱런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SW 제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자면, 바로 제 루틴을 찾는 거예요. 저는 별일 없으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강아지랑 산책하고 사무실에 와서 화초에 물 주고 정리하고 스케치하고 저녁 8시면 퇴근하는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해요. 밤11~12시에는 무조건 자요. 한국 사회에서 이 시간에 잔다는 건 엄청난 럭셔리거든요.(웃음) 이 루틴이 지켜지면 정말 신기하게도 작업이 잘돼요.
패키지, 커뮤니케이션 툴 등의 시각적 요소터 서비스 직원이 사용하는 도구의 UX까지 통합된 브랜드를 구축했다. 디자인 이석우, 최영우, 송봉규
(우) KT 폰브렐라, 2015
비 오는 날 모바일 사용성을 배려한 손목에 거는 원형 손잡이가 특징이다. 2015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제품과 패션 2개 부문을 수상. 디자인 이석우, 김성진, 윤성웅
EK 루틴을 지키기 위한 자신만의 비법이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SW 2년부터 날마다 일기를 써요. 하루에 제 기호가 6개가 있어요.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지, 산책을 했는지, 스케치를 했는지, 글을 썼는지, 물을 마셨는지, 영감을 받은 뭔가를 했는지를 O, X로 기록해요. 신기한 건, 일이 잘 안 풀리는 날 일기장을 열어보면 X가 많아요. 일이 잘 풀리는 날 보면 당연히 O가 많고요. 사실 컨설팅 업무는 나 자신을 불사르는 거예요. 내가 물이 찰랑찰랑 넘실대야 여기도 조금, 저기도 조금 나누어주는데, 물을 차오르게 하는 건 여행도 아니고, 좋은 전시도 아니고, 결국 루틴이더라고요. 밀라노 박람회 가면 뭐해요, 마음이 무거우면 영감이고 뭐고 하나도 안 들어오는데. 이걸 지난 2년 사이 깨달았어요. 아, 저는 이번 4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 스텝들과 일주일간 갔다 와요. 그간 회사에 많은 변화가 있는 상황에서 저를 믿고 따라온 친구들, 그리고 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이렇게 완전히 놀러 가는 건 10년 넘도록 처음이라 설레네요.
그러고 보니 지난해 11월 월간 〈디자인〉이 중국 디자인 특집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조언을 구하려고 전화번호 목록을 뒤져 연락한 디자이너도 이석우였다. 컨피덴셜상의 문제로 SWNA가 진행한 프로젝트를 지면에 소개할 수 없는데도 중국에 있는 취재원을 연결해주고 선뜻 시간을 내 얼굴을 맞대고 다양한 업계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식통 역할을 자처했다. 자신을 프로모션하는 게 아니라 업계 자체에, 주변에 애착이 많은 디자이너라고 느꼈다. 이번 기사를 위해 포트폴리오 이미지를 전달받는 과정에서 그는 프로젝트별로 참여한 직원들 이름을 꼭 표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산업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품의 주변까지 꼼꼼히 챙기는 그의 핵심 역량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됐는지, 기사를 마감할 즈음 새삼 고개가 끄덕여졌다.
산업 디자이너 이석우가 말하는 ‘내가 애용하는 제품 5’
1. 싱거(Singer) 자동 미싱기
단순하고 간편한 싱거 미싱 한대만 있으면 패브릭을 이용하는 소프트 목업도 금방 만들 수 있다.
2. 제네바 사운드(Geneva Sound) 스피커
동그라미와 사각형만으로 구성된 범접하기 힘든 단순성의 조합으로, 침실에서 ‘이제 그만 잠이나 자자’ 마인드와 함께하는 나의 FM 93.1용 서브 스피커. 가끔 오작동을 일으키는 인간적인 인터랙션까지 무척 마음에든다.
3. AKG 헤드폰
작업을 할 때 90%는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 내게 오래 들어도 물리지 않는 정직한 소리를 들려준다.
4. 오픈크리에이터즈(Opencreators) 3D 프린터
가성비 좋은 3D 프린터로 몇 년 전 구매 했지만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다. 여느 3D프린터와 달리 나무 소재로 된 검은색 전면 커버가 마음에 든다.
5. 애플 아이워치2
나에게 아이워치는 메신저나 전화를 놓치지 않게 해주는 기기, 하루에도 2~3번씩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건망증에 큰 도움을 주는 필수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