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서 채우는 리테일 전략가, 조 나가사카 (Jo Nagasaka)
건축을 시작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가장 젊고 열정적인 청춘을 보내고 있는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물론 올해 12월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글로벌 세미나에서는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다


단케 겐조, 구로가와 기쇼, 안도 다다오, 구마 겐고, 반 시게루…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은 세계적인 건축가를 배출한 일본. ‘국가 최고의 자산 중 하나’라는 이들의 건축가 계보에 든든한 맥을 이어가고 있는 건축가가 바로 조 나가사카(Jo Nagasaka)다. 그는 주거부터 리테일, 호텔에 이르는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가구와 제품까지 전방위에서 독특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특히 건물과 공간의 물성을 잘 살리면서도 모듈과 유닛 등을 통해 미학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평을 받으며,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가장 재능 있는 건축가로 손꼽힌다. 건축을 시작하고 20년이 지난 지금 가장 젊고 열정적인 청춘을 보내고 있는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물론 올해 12월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글로벌 세미나에서는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다.

1998년 도쿄 국립대학 졸업 후 바로 건축 사무소를 연 것으로 알고 있다. 건축가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었나?
‘자연스럽게 이 길로 들어온 것 같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사립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는데, 다시 사립학교에 들어가는 건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국립대학을 들어갔고 거기서 건축을 공부했다. 건축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해보지 않았는데, 공부하면서 점차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건축 사무소를 낸 후 몇 년간 많은 좌절을 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커리어를 충분히 쌓지 않은 상태에서 일찍 독립한 것에 대한 불안감이었다고. 그럼에도 지금까지 잘 운영해오고 있는데, 그 비결이 무엇일까?
보통 유명 건축 사무소에서 몇 년은 일하며 경험이나 인맥을 쌓은 후 독립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건축가들만의 세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작은 규모로 시작하더라도 바로 사회에 뛰어들어 부딪쳐보고 싶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유명 건축 회사에 취직하고 건축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니 불안하긴 하더라. 그야말로 맨손으로 사무소를 연 것이 잘한 짓인지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내 일을 해나갔다. 처음부터 혼자 해나가야 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무척 강해져야 했다.

보통 건축 사무소를 혼자 운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당신도 처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공동 운영을 한 것으로 안다.
내가 공동 운영이나 파트너와 함께 일하는 데는 소질이 없다는 걸 알았다. 비슷한 경험과 지식을 쌓았지만, 성향이 서로 다르지 않나. 그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세대는 의견 조율이나 협업, 공동 운영에 좀 더 열려 있는 것 같다.
대형 건축 사무소나 유명 건축가 밑에서 일하다 보면 일하는 방식이나 스타일을 따라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스스로 나는 특정한 스타일이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영감을 받거나 영향을 받는 무엇이 있나?
프로젝트마다 다르다. 특별한 영감보다는 각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면모를 찾아내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 중요하다. 별도의 설명 없이도 사람들이 ‘지식의 재발견’을 가능케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이를 위한 특별한 접근 방식이 있나?
일일이 디자인하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공간에 들어가는 데 부담을 느낀다. 많은 콘텐츠를 보여주기 위해 공간을 채우는 일은 오히려 사람들이 공간에서 무언가를 하거나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공간을 방문한 사람이 소외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2011년 이솝 아오야마점을 시작으로 리테일 디자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버려진 재료를 활용하거나 내부의 부식된 흔적까지 살려낸 점도 그렇고. 합판이나 레진 같은 평범한 소재로 디테일까지 완성도 높게 마감한 공간이었다.
매장이 들어선 건물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다 무너져가는 집에서 사용했던 100년 된 나무를 가져다 쓰기도 했다. 특히 심플한 유리 파티션으로 매장과 스태프 공간을 나눈 것이 관심을 받았다. 별것 아닌 장치로 많은 사람들이 그 너머의 공간을 궁금해하도록 만들었다. 공간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작은 주거 공간 디자인을 많이 했는데, 이솝 매장 이후 다른 클라이언트들에게서 연락이 와 점차 리테일 프로젝트도 많아졌다.
당신이 진행해온 리테일 디자인을 보면 보통은 감추기 마련인 창고나 직원 공간 같은 곳을 노출하거나, 공간 안팎의 프레임도 과감히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공간을 바꾸거나 특정 요소를 일부러 드러내기보다 원래 있던 것을 손대지 않고 그냥 놓아둔 느낌도 든다.
리테일 공간은 상업적 목적을 띠고 있고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야 한다. 하지만 가능한 한 공간에는 이를 드러내는 장치를 쓰지 않는다. 디스플레이 방식도 일부러 눈에 띄게 하기보다 박스나 케이블에 무심히 걸어두는 식으로 연출한다. 공간이 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느낌도 드는데, 나는 그 미완성을 제품과 사람이 채우도록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힘들 때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힘든 점은 주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다. 하지만 대부분은 문제의 원인이 커뮤니케이션 때문이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건축가는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프로젝트 진행 중에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때 희열을 느낀다. 나는 그 순간을 ‘지식의 재발견’이라고 부른다. 늘 새로운 소재를 시도하는 편인데, 이 역시 재료를 통해 건축, 공간에서 다른 면모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올해 7월 네덜란드의 프레임 출판사에서 펴낸 <조 나가사카/스키마타 건축>을 통해서도 이야기했다. 책에는 그동안의 건축 프로젝트와 공간, 가구 같은 작품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 대해 쓴 에세이 등이 실려 있다.
2008년 사야마(Sayama) 아파트 레노베이션이 건축가로서의 전환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이후 건축이나 공간에 대한 당신의 철학을 변화시킨 프로젝트가 또 있나?
사야마 아파트는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 대한 나의 공간 철학을 완성시킨 프로젝트였다. 진정한 순수함은 그저 하얗게 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수정이나 덧대기도 하지 않는 것이다. 2011년 하나레 프로젝트 또한 전환점이었다. 사야마 아파트는 레노베이션 프로젝트였지만 하나레는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한 건축 프로젝트였다. 해발고도 22m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를 위해 경사진 산에 길을 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목재 소재의 하이브리드 구조물로, 물이나 전기, 가스 공급을 위한 장치도 새로 마련해야 했다. 조율과 관리가 무척 중요했으며 이를 통해 건축의 처음부터 제대로 조율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일반적이지 않은 공간에 지은 건축물이지만 클라이언트와 각 진행 과정을 꼼꼼하게 공유했고, 덕분에 클라이언트 역시 건축물을 이해하고 보다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당신은 공간, 가구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특히 가구는 당신의 중요한 오브제로 보인다.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폴로이드(Floyd) 기테 마루노우치점의 독특하게 코팅된 컬러 아크릴 선반이나, 우드 패널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스펀지를 끼운 스펀지 테이블 등 특히 가구에서 독특한 시도를 많이 한다.
건축은 대부분 클라이언트의 요구나 조건이 있지만 가구는 온전히 나의 개인적인 의도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내 마음껏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가구가 공간을 꾸미는 오브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가구 자체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키마타 건축 사무소의 프로젝트를 자세히 설명해놓은 홈페이지를 보면, 올해 완성한 후쿠시마야 테이스팅 마켓 아키하바라점을 소개하면서 “10년 전만 해도 슈퍼마켓에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과거의 공간이 이처럼 새로운 개념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끼나?
경제의 흐름은 돈을 쓸 수 있는가 아닌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슈퍼마켓의 변화는 이런 흐름의 반영이다. 사람들에게 음식은 생명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먹는 행위뿐만 아니라 음식 재료를 고르는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행위에서부터 디자인이 중요해진다. 이는 다른 영역의 공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본의 행위에 집중하는 것.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공간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고 변화가 수용되는 곳이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공간에는 일종의 시간적 연대가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 외에 다른 직업을 생각한 적이 있는지?
나는 건축가로서의 내 일을 즐긴다.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만큼. 하지만 만약 건축가가 되지 않았다면 소설을 쓰거나 이발사가 되거나 커리를 요리하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닐 것 같다. 여행하면서 서로 이질적인 문화와 특성을 섞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 같다.
건축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건축에서 가능성을 탐색하는 감각, 참을성과 유머.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글로벌 세미나에 연사로 참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언제고 한국을 꼭 방문해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바쁜 일정 때문에 1박 2일밖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기대하고 있다.
세미나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예정인가?
미래의 건축, 특히 미래에 건축가가 어떤 자세와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건축가는 사람,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는 이제 건축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지구 온난화와 같은 환경 변화는 주택이나 거주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