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윈도에 ‘마법의 샹글’ 호텔을 지은 잭슨홍

2014년부터 에르메스 코리아의 윈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거대한 공룡, 우주 로켓에 이어 이번에는 마법의 샹글 호텔까지 세운 잭슨홍을 만나 직접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에르메스 윈도에 ‘마법의 샹글’ 호텔을 지은 잭슨홍
잭슨홍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다수의 개인전 및 단체전을 통해 국내외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라마라마딩동> 전시회를 열었고, 2012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최종 3인으로 선정되는 등 에르메스와 인연이 깊다. 2014년부터 동화 같은 스토리텔링과 산뜻한 컬러감으로 에르메스의 윈도 작업을 해오고 있다.

에르메스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윈도에 ‘마법의 샹글’ 호텔이 들어섰다. 6층 규모의 이 호텔에는 조금은 특별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각 층의 버튼을 누를 때마다 문이 열리면서 다양한 에르메스 제품이 살아 움직이는 작은 소동이 펼쳐지는 것이다. 연말 시즌을 맞아 아티스트 잭슨홍이 새롭게 선보인 작업으로 작가 특유의 명랑한 상상력을 인터랙션으로 구현해 경험의 재미까지 더했다. 2014년부터 에르메스 코리아의 윈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거대한 공룡, 우주 로켓에 이어 이번에는 마법의 샹글 호텔까지 세운 잭슨홍을 만나 직접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평소 에르메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에르메스가 윈도 프로젝트를 제안하던 당시의 이야기를들어보고 싶다.

에르메스는 명품 중의 명품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영역인데, 한국의 미술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오랜 시간 후원해왔기 때문에 서서히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 윈도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에르메스가 럭셔리의 정점에서 고고하게 머물러 있는 브랜드가 아니라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함께한 작가들의 행보를 보여주며 그 커다란 궤적 안에서 내가 차지할 위치와 역할 등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해줬는데 당시엔 절반 정도만 이해했던 것 같다.(웃음) 사실 처음에는 윈도 사이즈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이 제작에 참여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하나하나 직접 부딪쳐가며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보통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쇼윈도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윈도 자체는 작지 않지만 디스플레이 진입로는 좁지 않나. 공간을 분할하고 구조를 명확히 하는 설계부터 제작, 운송, 설치까지 차례차례 모든 것을 정확히 절차에 맞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리 멋진 오브제를 만들었다고 해도 들어가지 않고 설치가 불가능하면 소용 없으니까. 계획한 그대로를 구현해야 하는 프로젝트로, 내부 VMD 팀과도 긴밀히 협업해야 한다.

©김상태
기획 단계도 중요할 텐데, 주제에 대한 영감은 어떻게 얻는지 궁금하다

1년을 이끌고 갈 커다란 테마가 정해지면 계절에 따른 시기감, 강조해야 하는 신상품의 특징을 파악하면서 계속 공부한다. 그러면 어떤 연결 고리가 생기는데 이를 바탕으로 전체적인 이야기를 완성하는 식이다. 영감의 대부분은 상품에서 얻는데, 예를 들면 어떤 구두와 넥타이를 봤을 때 그 둘이 갑자기 충돌을 일으키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번 윈도 프로젝트 역시 볼리드 백과 여성용 플라멩코 슈즈, 토끼털 모자 등 5개의 상품에서 시작했다. 공통적으로 가죽 띠, 끈의 요소가 많아 프랑스어로 말의 뱃대끈을 뜻하는 샹글(sangle)을 차용한 ‘마법의 샹글’ 호텔이 탄생한 것이다.

인터랙션이 가능한 윈도 디스플레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인적으로는 ‘인터랙션 윈도’ 자체가 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인 상황에서 쇼윈도는 의미가 없으니까. 일종의 스팀펑크 같기도 하고. 다만 명품에서는 브랜드 경험과 촉각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지점도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처음에는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 구현이 가능한지 나 역시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맡은 영국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홀리션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조율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으로 인터랙션을 구체화했다. 이 외에도 제품을 모티브로 한 애니메이션은 국내 디자인 전문 회사인 스튜디오 4월에서 제작하는 등 다양한 협업자와 함께했기 때문에 도면 설계부터 아주 정밀히 했다.

©김상태
오랜 시간 에르메스의 윈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협업자로서 에르메스는 어떤가? 특별한 요구 사항은 없나?

에르메스는 최고의 클라이언트다. 그만큼 능수능란하게 효율적으로 작가로부터 최상의 결과물을 얻어낸다는 의미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그동안 수많은 아티스트와 협업하며 나름의 노하우가 쌓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획 단계에서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한데 한마디로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고 있는가’를 본다. 그리고 실행 단계에서는 풍경이 아니라 일종의 사건, 어떤 해프닝이 일어나고 있음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3차원적 양감을 강조하는 편이다. 또 한 가지, 특유의 프랑스적인 유머 감각 역시 중요한데 다행히 이건 내가 잘 캐치하는 편이다.(웃음) 엄숙주의를 싫어하고 유머와 위트를 사랑하는 에르메스는 명품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다르다. 고귀하게 떠받들기보다는, 이것은 소비의 대상이며 사람들의 삶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물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잭슨홍은 작가이기도 하다. 예전엔 디자이너로 활동할 땐 본명인 ‘홍승표’를 쓰고 작가로 활동할 때는 ‘잭슨홍’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했는데 어떤가, 지금도 유효한가?

10년 전쯤 아주 엄숙하게 선언한 것 같은데.(웃음) 당시엔 예술로 포장되지 않은 디자인을 계속하려면 어떤 플랫폼을 하나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홍승표의 어떤 영역이 잭슨홍으로 병합된 상태다. 사실 이제는 이러한 구분이 무의미한 것 같다. 미술과 디자인이 각각 경계 설정이 분명하고, 확고하게 영역을 다져나가 강건하게 위치해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둘 다 힘이 빠진 상태여서 소실점도 없이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75호(2018.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