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소재를 발굴하는 탐험가, 스튜디오 스와인(Studio Swine)
첫 번째로 소개할 올해의 세미나 연사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스와인’이다. 지난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패션 브랜드 코스와의 협업으로 관람객으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지난해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 세미나는 네빌 브로디, 조 나가사카, 네리앤후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연사로 참여하면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올해 역시 그에 못지않은 라인업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첫 번째로 소개할 올해의 세미나 연사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스와인’이다. 지난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패션 브랜드 코스와의 협업으로 관람객으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화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낯설고도 독특하다. 어떤 소재와 과정으로 만들었는지 곱씹고 체감하게 만드는 결과물은 ‘디자인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 임을 깨닫게 한다.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탐험가’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이들은 기존 개념의 확장을 넘어 전혀 다른 디자인 카테고리를 만드는 중이다. 이들의 발길은 조만간 우주로까지 나아갈 것 같은 예측 불허 그 자체다. 그 탐험기를 미리 듣기 위해 스튜디오 스와인의 공동대표 알렉산더 그로브스Alexander Groves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눴다.
SH 스튜디오 스와인 공동대표이자 부부이기도 한 두 사람 모두 영국 왕립예술학교 출신이다.
AG 우리는 제품 디자인 석사과정에서 만났다. 그때만 해도 함께 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학문적 배경도 스타일도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의 프로젝트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순수 예술을 공부했기 때문에 디자인 수업에 익숙지 않았는데, 아즈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부부이자 공동대표로서 거의 하루 종일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성향이 달라 일하는 과정은 늘 흥미롭다.
SH 각자의 성향이 어떤 식으로 다르고 또 그것이 어떤 시너지를 만드는지 궁금하다.
AG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이상은 공유하되 이를 실현하는 아이디어가 다르다는 것이 큰 시너지 아닐까? 나는 예술을 공부했고, 연구와 소재 개발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강하다. 아즈사의 말로는 나는 ‘소재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반면 건축을 전공한 그녀는 거시적인 접근을 한다. 소재부터 디자인 프로세스 모두가 일관되게 목표에 잘 들어맞고, 또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두 가지 모두 프로젝트에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그 때문에 오히려 의사 결정이 빨리 이뤄진다.
SH 브라질 상파울루의 재활용 캔에서 영감받은 ‘캔 시티 Can City’ 프로젝트는 작업할 공간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작품을 만들고 전시했다고 했다. ‘기회가 생기길 기다리지 않고 기회를 만들었다’는 아즈사의 인터뷰를 본 적도 있다.
AG 모든 프로젝트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로 시 체어를 만들 때도, 머리카락으로 헤어 하이웨이Hair Highway를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레퍼런스가 없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일단 해본다.
SH 그런 과감한 실행력은 어디서 나오나?
AG 무엇보다 우리는 각자의 장점이 명확하고 서로의 생각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자유롭고 유연하게 의견이 오가고, 오래 고민하느라 실행을 지체하지도 않는다. 프로젝트에 따라 팀을 꾸려 일하기도 하지만, 스튜디오를 연 지 7년째인 지금도 직원을 두지 않고 우리끼리 일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원한다면 소재 발견을 위해 몇 달이고 여행을 갈 수도 있다.
SH 스튜디오 스와인은 예상치 못한 소재를 발견해 이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활용한다.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하나?
AG 소재가 먼저 떠오르기도 하고, 콘셉트가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소재를 통해 어떻게 전혀 다른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그것이 특정 장소나 풍경에 어떻게 자리할지를 생각한다. 때로는 소재 그 자체로도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SH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AG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바다로 흘러가버리는 합성 플라스틱이 그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세상 어딘가에서 새로운 오브제로 탄생하는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술과 디자인이 이를 위한 일종의 에이전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별로 쓸모없는 소재, 또는 식상하다고 여겨지던 물건 또한 예술과 디자인을 통해 쓸모 있는 무언가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의 실제 머리카락으로 오브제를 만든 ‘헤어 하이웨이’의 경우 약간은 불쾌한 기분이 들 수도 있는 소재지만 투명 레진에 주입한 머리카락의 결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보인다. 이는 고갈되어가는 목재의 대체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곤충에서 실크를 얻고, 양털로 울을 만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의 머리카락으로 무언가는 만드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이는 결과물을 보면서 느끼는 신선함뿐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 환기를 가져온다.
(우) ‘자이어 크래프트’Gyre Craft. 플라스틱 쓰레기와 별로 쓸모없다고 느끼는 소재들을 활용한 공예 작품. 바다에서 건져올린 플라스틱, 조개껍데기 속의 진주층, 알루미늄, 스틸, 브라스 등을 사용한 ‘인디언 오션 자이어Indian Ocean Gyre’(2015).
SH 포드란디아Fordlandia는 헨리 포드가 1920년대에 무분별하게 조성했다가 방치된 고무 농장에서 모티프를 얻은 프로젝트다. 그곳의 고무와 지역 소재를 활용해 사회적으로 버려진 도시로 여겨졌던 지역을 상기시켰다. 그런가 하면 ‘캔 시티’를 통해 상파울루에서 재활용품을 수집해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경제활동을 위한 제품 개발 방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AG 상파울루에 몇 달간 머물면서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었고 동시에 에보나이트나 생선 비늘과 같은 소재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이런 복합적 경험을 통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콘셉트가 떠오르기도 한다. 결과물이 제품이나 가구, 조명과 같이 형태적으로 분명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개념이나 테마를 탐구하는 정신,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가 우리의 주된 색깔이다. 결과물이 사람들의 실리적 편리함을 넘어 어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란다. 이를 통해 우리가 미처 몰랐고, 그래서 더욱 알아야 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포드란디아를 통해 무분별한 개발이 우리에게 가져온 폐해를 느끼고, 캔 시티를 통해 빈곤하게 살아가는 거리의 캔 수집가들이 좀 더 나은 경제활동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이 말이다.
SH 스튜디오 스와인의 디자인은 업사이클링, 리사이클링의 개념을 넘어 지구상의 모든 소재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여기에는 특정 지역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스튜디오 스와인의 주된 이슈로도 보인다. 그것이 스스로를 ‘탐험가’라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AG 우리는 지역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발견하는 일을 사랑한다. 이는 빌딩을 통해 느낄 수도 있고, 지역의 수공예품이나 디자인 혹은 장식적인 요소에서 오기도 한다. 세계화가 어쩔 수 없이 가져온 비슷한 취향과 문화의 시대에 특정 지역의 소스는 늘 새로운 영감의 대상이 된다.
SH 스튜디오 스와인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대중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영상을 빼놓을 수 없다.
AG 헤어 하이웨이는 단편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중국 산둥 지방에 머리카락이 거래되는 대규모 시장이 있다. 직접 그곳에 가서 촬영하고, 실제 배를 타고 가서 플라스틱을 수집하고, 거기서 스툴 만드는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 필름은 상을 받은 첫 번째 영상 프로젝트이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소개된 첫 번째 프로젝트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 소개되자 뷰어가 10만 단위에서 100만 단위로 뛰었다. 캔 시티 프로젝트의 경우는 브라질 글로보 TV에도 소개되었다.
SH 이제 영상은 디자이너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이기도 하고, 또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AG 이런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실제 영상 제작이 쉬워졌고, 유튜브나 비메오 같은 채널이 많아진 덕분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접하지 못했던 세상을 발견하고 느끼기를 바란다. 하지만 스튜디오 스와인에게 필름 제작은 단순히 제품 홍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결과물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고, 이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영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SH 2015년 스와로브스키가 선정한 미래 디자이너 세 팀 중 한 팀의 자격으로 단편 필름 <테라포밍Terraforming>을 만들기도 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2011>을 오마주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AG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크리스털로 만든 행성을 발견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유리로 구현한 단단한 부싯돌이 실리카로 만든 크리스털로 변하고, 이내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바뀐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11>에서 뼈다귀가 우주선으로 변하는 상징적인 장면을 오마주했다. 시 체어 다큐멘터리를 함께 만든 영화감독 주리앙 부이Juriaan Booij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그는 현재 리들리 스콧 어소시에이츠에서 일하고 있다.
SH 당신은 한 인터뷰에서 ‘기업은 이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디자인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디자이너의 역할 변화이기도 하고, 영상 메이킹도 디자이너가 주도한다는 점 역시 이와 연결되는 맥락이기도 하다.
AG 결국 디자인은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다. 디자이너의 역할을 더욱 넓게 봐야 한다. 세상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물질적으로는 이미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거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대응과 더 나은 시스템이 필요한 때다. 그 방식이 꼭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디자인일 필요도 없다.
SH 지난해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코스와의 협업으로 선보인 ‘새봄New Spring’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재활용 메탈 비계를 활용한 6m 높이의 나무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5초에 한 번씩 30개의 나뭇가지를 통해 공기 방울이 나오고, 공기 방울은 공기 중을 자유롭게 떠다녔다. 어떤 모티프를 가지고 진행했나?
AG 우리는 자연과 산업적 요소를 연결하는 일에 정말 관심이 많다. 행사는 봄에 열렸고, 우리는 마치 벚꽃이 떨어지듯 공기 방울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특히 가구 박람회는 일주일만 진행한다. 제품이나 가구 등의 전시는 행사가 끝나면 구매하지 않는 한 쉽게 잊힌다. 그래서 우리는 제품이 아닌 체험을 위한 전시를 하고 싶었다. 공기 방울은 표면에 닿으면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만 관객의 손에 닿아 자유롭게 노니는 도구가 된다. 공기 방울 안에는 특수 장치를 통해 봄을 느낄 수 있는 향기를 담았다. 방울이 터지면 몽환적인 연기와 함께 향이 퍼지도록 한 것이다. 생명력이 짧은 공기 방울을 오래도록 사람들 뇌리에 남길 수 있게 하는 흥미로운 방식이라 생각했다. 이 설치작은 지난 밀라노 전시에 이어 일본에서도 전시했고, 12월에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새봄2New Spring2’를 선보였다. 앞으로 이 프로젝트를 더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은 생각도 있다.
SH 설치물 ‘새봄’에서 공기 방울 안에 연기를 넣는 메커니즘도 그렇지만, 스튜디오 스와인의 프로젝트는 아주 새로운 소재로 오브제를 구현하기 때문에 기술적 측면의 연구도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AG 우리는 소재 연구에 관해서만큼은 조급해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구현시키기 위한 연구를 정말 많이 한다. 코스와의 협업 설치물은 기술 개발과 프로토타이핑만 6개월이 걸렸다.
SH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AG 점점 단순한 디자인 프로젝트보다 설치물이나 공공 예술 프로젝트 쪽으로 관심이 기울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모든 프로젝트를 정할 때의 기준은 단 한 가지다. 우리가 진심으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프로젝트인지 여부다.
SH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한다. 기존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안다. 그러면 디자이너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까?
AG 크리에이티브를 이야기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소재와 원리를 찾고 결합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소재에 집중하는 동시에 지역이나 문화 혹은 시대, 역사 등 좀 더 거시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우리의 방향성도 여기에 있다. 어떤 방식과 내용이건 그 방향성이 중요하다.
SH 최근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AG 영국 콘월 지역에서 진행하는 에덴 프로젝트Eden Project라는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간의 삶과 지구 환경을 고민하고, 그 사이에서 지구의 생명력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고찰하는 실험적인 에코 시스템 프로젝트다. 영국의 공간 개발 에이전시 퓨처시티Futurecity와 함께 ‘보이지 않는 세계’라는 8m 높이의 세라믹 설치물을 만들고 있다. 지구에서 산소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 유기체인 광합성 세균을 소재로 삼았다. 이를 통해 에덴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지구를 유지하는 생태 시스템,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근원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