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내리실 역은 스타트업의 미래 스테이션 F

스테이션 F는 이러한 프랑스의 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파리 13구 센강 변에 위치한 이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캠퍼스는 정보통신업체 프리Free의 CEO이자 프랑스 스타트업의 대부로 알려진 자비에르 니엘Xavier Niel이 설립했다. 1920년대에 지은 철도 차량 기지를 개조해 만든 이곳은 3만 4000㎡ 규모의 스케일을 자랑하며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스타트업의 미래 스테이션 F
스테이션 F 외관. 20세기 초 프랑스 엔지니어 외젠 프레시네Eugène Freyssinet가 디자인한 건물이다. ©Patrick Tourneboeuf.

흔히 스타트업의 메카라고 하면 실리콘밸리부터 떠올린다. 실제로 이곳은 1980년대 이래 가장 치열한 지식 노동자들의 전장이었고 동시에 미국 IT 산업을 이끄는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의 요람이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곳이 있었으니 바로 프랑스다. 2013년부터 IT 스타트업 육성 정책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를 펼쳐온 프랑스는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이 25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프랑스를 유니콘의 나라로 만들겠다”라고 선언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스테이션 F는 이러한 프랑스의 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파리 13구 센강 변에 위치한 이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캠퍼스는 정보통신업체 프리Free의 CEO이자 프랑스 스타트업의 대부로 알려진 자비에르 니엘Xavier Niel이 설립했다. 1920년대에 지은 철도 차량 기지를 개조해 만든 이곳은 3만 4000㎡ 규모의 스케일을 자랑하며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스테이션 F의 대변인은 이곳을 부지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한 지붕 아래 모으는 스테이션 F의 모토와 관련이 있다고 답했다. “철도 차량 기지였던 이곳은 기본적으로 면적이 매우 넓은 데다 개방적이다. 입주사들의 업무 공간인 크리에이트 존create zone의 경우 벽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멤버들 사이의 원활한 교류를 유도한 것이다.” 공간의 격을 한층 높인 것은 인천국제공항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건축가 장미셸 빌모트Jean-Michel Wilmotte다. 그는 2012년 이래 방치되어 있던 이 차량 철도 기지를 레노베이션했는데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공간의 기능성 못지않게 역사적 의미도 함께 고려해야 했다. 건물의 중앙 축 높이는 에펠탑에 준할 만큼 높았는데 이 같은 스케일을 빈틈없이 채우는 것 또한 그에게 던져진 숙제였다. 이러한 조건을 빌모트와 그의 팀은 하나하나 충족시켜나갔다. 주변과의 연결성을 복합적으로 고려했고 기능에 맞게 공간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건물의 시간성을 보존한 점 또한 눈에 띈다. 이 건물은 현대건축에서도 사용하는 프레스트레스트 콘크리트prestressed concrete 기법을 적용한 최초의 건물 중 하나다. 빌모트는 이러한 역사성을 감안해 구조적 특징을 그대로 살렸다. 또한 스테이션 F의 공간에 맞춰 유연하고 연결이 가능하며 변형과 운반이 용이한 가구들을 특별 제작하기도 했다. 이렇게 완성한 스테이션 F는 스타트업뿐 아니라 파리 시민들에게도 사랑받는 공간이 됐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칠 존Chill Zone 덕분인데 여기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레스토랑인 라 펠리시타La Felicità가 들어서 있다. 일종의 구내식당이기도 하지만, 입주사뿐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오픈 후 금세 파리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스테이션 F는 칠 존과 입주사 전용 공간인 크리에이트 존 외에도 이벤트와 미팅, 프로토타입 제작을 위한 메이커 스페이스가 포함된 셰어 존Share Zone도 운영하고 있다. 스테이션 F의 지원 사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2018년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동 주거 공간을 마련했다. 입주사들이 생활에 불편함 없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또한 디렉터 록산 바르자Roxanne Varza가 이끄는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 ‘파운더스 프로그램’, 형편이 어려운 스타트업을 위한 ‘파이터스 프로그램’ 등도 마련되어 있어 스타트업 정신을 기르는 데에도 안성맞춤이다. 스테이션 F를 소개하는 말 중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다양성’과 ‘관용’이다. 이는 무한 경쟁을 미덕으로 삼는 미국식 스타트업과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프랑스, 더 나아가 유럽의 스타트업 허브로 자리매김해 실리콘밸리의 아성에 도전하려는 스테이션 F의 야심은 과연 이루어질까? 조금 더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크리에이트 존. ©Patrick Tourneboeuf

“두 가지 창조적 에너지를 한 공간 안에 통합시켰다.”

장미셸 빌모트
건축가
스테이션 F 캠퍼스는 진정한 건축적 기폭제다. 이것은 20세기 초 엔지니어의 독창성과 대담함을 무제한적이고 흥분되는 상상력과 결합한 것이었다. 두 가지 위대한 창조적 에너지를 하나의 혁신적이고 활기찬 공간에서 수용하고 통합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혁신은 모든 지평에서 일어난다.”

스테이션 F

스테이션 F의 설립 취지가 궁금하다.

스테이션 F의 미션은 창업 생태계를 한 지붕 아래 모으는 것이다. 1000개의 스타트업이 일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을 마련해 놓았으며 실용적인 워크숍과 다양한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이 밖에 각종 행정 시설과 멘토십 오피스, 메이커 스페이스, 벤처 투자사까지 들어서 있어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자원이 집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입주사들을 위한 주거 공간까지 갖춰놓았다.

프랑스에 온 해외 기업가 상당수가 살 곳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는다. 파리의 주택 시장은 몹시 유동적이어서 아파트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국민도 아니고 CDI(정규직)도 아닌 데다 보증인까지 없으면 더더욱 힘든데 이들에게 최대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자 했다. 주거 공간 외에도 이들은 이미 (기업 운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마련한 아파트는 총 100호이며 600명이 살 수 있다.

언급했듯이 스테이션 F에는 프랑스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도 많이 입주해 있다.

스테이션 F의 최대 강점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네이버 글로벌 스타트업 육성 캠퍼스 ‘스페이스 그린’을 비롯해 현재 입주사 중 3분의 1 정도가 해외에서 왔다. 나라별로 따지면 미국, 영국, 중국, 인도 순인데 점점 그 수가 늘어나기를 바란다. 출신 성분이 똑같은 사람들만으로 캠퍼스가 채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혁신은 모든 지평에서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캠퍼스에 다양성이 커질수록 관점도 다채로워지고 지식 기반이 풍요로워진다. 캠퍼스 안에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면, 사업 측면에서 의사 결정의 질이 높아지기도 한다.

다양성에 대한 신념이 파이터스 프로그램에도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그렇다. 파이터스 프로그램은 외부로부터 별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 기업가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1년짜리 프로그램이다. 기업가의 세계는 MBA 출신 백인 남성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기업가의 세계는 모든 지평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목표는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다.

왜 오늘날 기업들이 스테이션 F로 몰려든다고 생각하나?

최고의 자원을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서 두었다는 점, 수많은 인재가 모여 만든 커뮤니티가 존재한다는 점 등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스테이션 F는 엄격한 선발 과정을 통과한 스타트업만이 입주할 수 있다. 이들이 캠퍼스 안에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며 더 나아가 새로운 연대도 이룰 수 있다. 사실 기업가가 겪는 문제의 90%는 같은 문제를 겪어본 다른 사람이 해결해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커뮤니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의 매력도 있는 것 같다. 현재 프랑스는 사업을 시작하기에 매우 매력적인 나라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고 정부 역시 해외 창업가를 위한 별도의 비자 발행 절차를 만들 정도로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은 결국 포스트 실리콘밸리가 되기 위한 전략인가?

글쎄, 굳이 우리를 미국과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 미국식 모델을 지향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이미 유럽에도 뛰어난 인재와 훌륭한 프로젝트가 많다. 프랑스는 유럽의 기술 인력, 초기 투자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이제 최고의 기업을 키우는 데 필요한 스타트업 프로그램과 모든 제반 시설까지 갖췄다. 실리콘밸리보다 훨씬 쉽고 저렴하게 스타트업을 길러낼 수 있게 되었다. 글 최명환(디자인 칼럼니스트)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00호(2020.02)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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