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 리뉴얼
전방위적인 변화를 시도 중인 세종문화회관이 18년 만에 새로운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발표했다.
지난 2월 공개한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CI 역시 변화와 혁신의 비전을 바탕으로 탄생한 결과다.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차대한 임무는 디자인 듀오 신신이 맡았다.
1978년 개관 이래 줄곧 한국 공연 예술 문화의 산실이었던 세종문화회관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기존 연 단위 공연 프로그램을 봄, 여름, 가을·겨울 총 3개 시즌 단위로 개편하고 국악관현악단장, 뮤지컬단장, 오페라단장을 모두 70년대생으로 세대교체하는 등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4년에는 극장 리빌딩을 진행하고 2028년에는 명실상부 서울의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거듭나겠다는 청사진까지 그려놓았다. 지난 2월 공개한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CI 역시 변화와 혁신의 비전을 바탕으로 탄생한 결과다.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정체성을 표현하는 중차대한 임무는 디자인 듀오 신신이 맡았다.
신신이 개발한 세종문화회관 국·영문 로고타이프.
이들은 기관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표현하면서도 항상 유연하게 변화를 수용하고 확장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자 오랜 역사 속에서 세 가지 그래픽 모티프를 발굴하고 디자인에 적용했다. 훈민정음의 제작 원리인 천지인과 악보, 세종문화회관의 파사드가 바로 그것이다. 신신은 천지인의 구성 요소인 점과 세로획, 가로획을 로고에 반영해 한국적인 특징을 명확히 드러냈고 공연 예술을 상징하는 악보의 오선지로 문화·예술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또 세종문화회관의 대표적인 건축적 특징인 6개의 기둥과 수평형의 지붕을 가는 세로선 6개와 굵은 가로선으로 상징화해, 건축가 엄덕문이 남긴 독창적인 형태의 파사드를 새로운 아이덴티티로 계승했다. 이렇게 완성한 결과물은 이후 확장성을 실험하는 과정을 거쳤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가 하나의 공연을 완성하듯 여러 창작자들과 협업해 디자인의 포용력을 시험한 것이다. 실용성과 독창성에 기반한 패션 스튜디오 할로미늄과 함께 공연 스태프를 위한 워크웨어를 디자인하고 일러스트레이터 이나영, 소설가 황정은과 브랜드 북을 만들었다. 또 스튜디오 도시와 사진과 영상 디자인 작업을 하며 다채로운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세종문화회관의 이번 프로젝트는 공공 기관의 디자인도 충분히 실험적이고 감각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트 디렉션을 담당한 세종문화회관의 원승락 디자이너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새 CI에 ‘단단하고 일관된 로직과 시스템’이 생겼다고 평했다. 과거 유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만든 구조 위에 미래를 향한 비전을 더해 어떤 변화에도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수 있는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탄생했다.
기존의 한정적이고 획일화된 디자인 체계를 탈피하고 세종문화회관만의 정돈된 톤 & 매너를 보여줄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는 것이 클라이언트의 요청 사항이었다. 새로운 시각적 정체성을 정립하고, 이를 좀 더 넓은 관객층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는 공공 기관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유행이 지난다고 늙는 것이 아니라, 확장성과 포용력을 지니고 어떤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디자인을 완성한 뒤에는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만든 각종 창작물에 새 CI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점검하기도 했다.
신해옥, 신동혁 디자인 듀오 신신
브랜드 북 〈극장〉. 황정은 작가가 글을 쓰고 이나영 작가가 일러스트를, 신신이 북 디자인을 맡았다.
새로운 CI를 반영한 마스킹 테이프.(좌)
새로운 CI와 아이덴티티 컬러를 반영해 만든 봉투.(우)
세종문화회관의 정체성은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
18년 만에 새로운 CI를 선보였다.
우리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에 따른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현재 세종문화회관은 수많은 문화·예술 사업을 진행하고 산하에는 9개의 예술 단체가 활동한다. 또 공연장 4곳과 전시관,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도 운영한다. 이토록 다양한 시설과 각종 프로그램을 기존 브랜드 체계하에 전부 담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또 많은 사업을 전개하고 있음에도 시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데다 세대가 어려질수록 이러한 경향이 커지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어 브랜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기존 공공 영역에서 보기 어려웠던 젊은 감각의 스타일이 흥미롭다.
세종문화회관이 대면한 중요 과제 중 하나가 젊은 세대를 새 고객군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디자인에도 젊은 층이 선호하는 트렌드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공연 문화가 MZ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공연만의 매력을 잘 전달하려면 젊은 세대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세종문화회관이 전 연령층에게 트렌디한 감각을 지닌 문화·예술 기관으로 인식되길 바란다.
세종문화회관만의 정체성을 잘 담아내는 것도 중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문화회관만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정체성은 시민들의 요구와 의견에서 비롯된다. 과거에는 역사적인 공간, 상징적인 기관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현재는 국내 문화·예술 분야를 선도하고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가 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점에서 세종문화회관의 정체성은 ‘문화·예술 영역에서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세종문화회관이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궁금하다.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리뉴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우선 관람객들이 달라진 브랜드를 인식하고 제대로 경험할수있도록하는데힘쓸 예정이다. 새로운 디자인에 기반한 상품과 프로그램 개발로 고객 경험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도록 노력할 것이다. 현재 공사 중인 광화문광장이 개장하면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오픈형 로비를 조성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처럼 앞으로도 누구나 예술을 영위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