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적 시선으로 디자인하는 플락플락 이경민

'퀴어적인 시선’은 정상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 연대하는 것,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까지 퀴어적인 시선이자 태도라고 생각한다.

퀴어적 시선으로 디자인하는 플락플락 이경민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메시지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플락플락의 이경민. 일상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달력부터 각종 장르 소설, 영화제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심미성과 메시지 모두를 겸비한 그의 디자인에는 우리 사회가 배제해왔던 이들을 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퀴어적인 시선’은 정상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 연대하는 것,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까지 퀴어적인 시선이자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경민
퀴어 관련 디자인 작업을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민음사 미술부에서 북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게이 인권 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했는데, 그때 단체가 필요로 하는 작은 규모의 디자인부터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에도 참여하며 공연 포스터 디자인을 담당하기도 했다. 퇴사 후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 ‘플락플락’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퀴어 콘텐츠 디자인을 시작했다. 스튜디오 이름은 깃발을 뜻하는 영어 단어 플래그flag를 변형해 만든 말이다. 퀴어 운동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상징 중 하나가 깃발이지 않나.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퀴어를 위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플락플락으로 진행하는 첫 프로젝트로 2016년 텀블벅에 프라이드 플래그 캘린더를 공개했다.

평소 소수자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시화’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꾸준히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나온 게 달력이었다. 성소수자 관련 기념일이 대체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다. 스톤월 항쟁 기념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하비 밀크의 날, 세계 에이즈의 날
등 각종 성소수자 관련 기념일을 은은하게 빛나는 은별색으로 표시하고 레즈비언 여성주의 깃발, 무지개 깃발, 인터섹스 프라이드 깃발 등 다양한 깃발을 일러스트로 넣었다. 당시 이 프로젝트를 눈여겨본 이들이 많았는지, 이후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이 작업을 보고 연락하곤 했다.

고려대학교 교지 〈고대문화〉, 안전가옥 도서 디자인, 디아스포라 영화제 그래픽 디자인 등 몇 년째 꾸준히 진행하는 클라이언트 프로젝트가 여럿 있다.

프라이드 플래그 캘린더를 비롯해 평소 내가 해온 퀴어 콘텐츠 디자인을 보고 연락한 클라이언트들과 진행한 프로젝트들이다. 모두 나름 ‘퀴어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4년째 참여하는 계간지 〈고대문화〉는 지방 소멸, 여성·청년 정치, 기후 위기, 팬데믹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데, 주로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매체의 관점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각종 이슈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원고를 읽으면서 디자인에 임한다. 안전가옥에서 출판하는 각종 장르 소설도 퀴어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작품이 많았다. 동성 간의 사랑을 특별하게 부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술한 작품도 있었고, 이종 간의 사랑을 소재로 삼는 등 사회적 소수자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소설이 대부분이다.

5년째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난민, 추방, 실향, 이민 등 다양한 형태의 이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수자들의 삶에 주목한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이주 과정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차별에서 영향받는 여러 소수자들의 삶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그 방향성에 공감해 지금까지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처음 포스터를 디자인할 때는 기존 국가들의 상징이나 색을 섞어 만드는 ‘디아스포라 깃발’을 그래픽 모티브로 다양한 정체성이 한데 공존하기를 바라는 영화제의 정체성을 나타냈다. 그 이후로는 디아스포라의 D와 깃발을 해마다 다양하게 변주하고 있다. 올해는 ‘직조(weaving)’를 모티브로 서로 다른 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하길 바라는 메시지를 표현했다.

2020년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평등버스의 래핑 디자인을 맡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전국을 순회하며 기자회견 및 문화제 등의 행사를 할 예정인데, 활동가들이 탑승할 버스의 래핑 디자인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게이 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알고 지내던 이들이 많았던 터라 흔쾌히 승낙했다. 버스 외관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버스가 일종의 포토 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되, 다채로운 색상의 귀여운 캐릭터를 이용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자 했다. 실제로 많은 시민들이 버스 앞에서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발랄한 색채와 빛나는 눈을 가진 캐릭터로 지친 활동가들에게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른 영역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2020년에 진행한 슈아잉 플래그SURE-INN flag 프로젝트가 그중 하나다. 한·중·일의 아티스트 30여 명이 ‘평화’를 주제로 각각 자신만의 깃발을 만들었고, 나는 그 깃발들을 하나의 깃발로 재탄생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오랫동안 제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해온 예술가들의 작품을 하나로 엮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1987년 미국에서 선보인 ‘에이즈 메모리얼 퀼트’ 형식을 참고했다. 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각보를 엮은 것처럼, 30개의 깃발을 마치 바느질로 하나하나 연결하듯 조합해나갔다. 전혀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협업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 덕에 평소에는 시도해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평소 소수자 운동에서 가시화만큼이나 연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국적과 영역을 초월한 협업은 대단히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된 메시지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면서 고민하는 지점이 있나?

내가 만드는 이미지가 차별과 배제를 일으키지는 않을지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시각적으로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면 필연적으로 누락되고 배제되는 존재가 생긴다. 그래서 특정 집단이나 상징으로만 정의될 수 있는 이미지는 되도록 피하는 편이다. 퀴어 콘텐츠를 제작할 때도 구체적인 사람의 형태나 특정한 외형을 갖춘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때는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앞으로 이러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퀴어 콘텐츠 디자이너 동료들이 늘어났으면 한다.

퀴어한 디자인의 정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퀴어 이슈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것과 디자이너가 당사자가 퀴어인 경우 모두를 포함한다. 당사자가 직접 디자이너가 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앨라이Ally라도 퀴어에 대해 말하고, 함께 퀴어적 시선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콘텐츠를 기획하는 동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기서 말하는 ‘퀴어적 시선’은 정상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 연대하는 것,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까지 퀴어적 시선이자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회가 정한 정상성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는 디자이너가 앞으로는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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