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표
로컬 신을 바꾸는 기획자
‘서울을 따라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인천 구도심의 마성의 기획자 이야기
10년 전 일본의 한 리크루트사 광고가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어딘가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는 세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길도, 결승점도 결코 하나가 아니라고 외치던 그 광고가 떠올랐다. ‘서울을 따라 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 속에는 검증되고 안전한(하지만 실상 더 위험한) 루트를 밟는 대신 자신만의 길을 따르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다. 납으로 된 옷을 입은 듯 무겁게 내려앉은 인천의 한 구도심을 마법처럼 바꿔낸 이 기획자는 유행보다 ‘덕질’, 데이터보다 직관, 화려한 미감보다 고유한 서사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제주도의 가능성을 알아본 건축 덕후
〈로컬의 신神〉을 읽었어요. 도발적인 제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웃음)
변명부터 하자면 제가 정한 제목이 아니었어요.(웃음) 출판사 입장에서 강렬한 제목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제목은 부제인 ‘서울을 따라 하지 않는다’였고요. 주변에서 책을 쓰라는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들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로컬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느낀 게 집필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특히 젊은 사업가들이 로컬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일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더군요. 로컬이라는 말이 부상하기 전부터 이 시장에 뛰어든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말, 해줘야 할 말이 많았습니다. 로컬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고, 무엇을 살펴봐야 하는지 실질적인 도움을 담고 싶었어요. 크게 보자면 브랜딩과 태도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고요.
로컬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언제부터 가졌나요?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영국으로 간 게 결정적이었어요. 영국인 친구들을 보며 놀랐던 게, 오래된 건물에 얽힌 역사를 술술 읊더군요. 도시의 랜드마크뿐 아니라 지방의 이름 없는 건물까지도 말이죠.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무조건 오래된 것은 배척하고 새것만 좋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평생 그런 교육만 받고 자란 저에게 이런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때부터 일명 ‘건축 덕후’가 됐습니다. 건축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TV 프로그램도 샅샅이 찾아봤죠. 건축과 로컬, 두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런 관심이 귀국 후에 발현된 부분이 있을까요?
유학 시절 아버지가 은퇴 후 제주도 서귀포에 정착하셨어요. 지금처럼 제주도가 주목받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그곳에서 낡은 집과 귤 창고를 구입하셨는데 사람이 살기에 썩 좋은 곳은 아니었어요. 한여름에도 화목 난로를 때지 않으면 곰팡이가 스는 집이었으니까. 견디다 못한 아버지가 집을 부수고 새로 집을 짓겠다고 하셨는데 ‘귀국할 때까지만 제발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귀국 후 디자이너 친구와 함께 손수 집을 뜯어고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주변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은 ‘육지 것들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했죠.(웃음) 그런데 막상 집을 완성하고 나니 주민들도 다 좋아해주더군요. 여기서 힘을 얻어 시작한 게 토리코티지입니다. 제주도에 독채 펜션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기에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단순한 독채 펜션이 아니었어요. 가구 브랜드 카레클린트,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크리스토프초이, 사진작가 하시시박 등의 크리에이터와 협업했죠.
토리코티지를 단순히 숙박업으로 정의하지 않았거든요. 숙박 이상의 경험을 준다는 의미로 슬로건도 ‘모어 댄 스테이More Than Stay’로 정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카레클린트는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브랜드였습니다. 사실 소비자가 직접 가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잖아요.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은 가구 브랜드는 더더욱 어렵죠. 그래서 그들과 협업하면 시너지가 날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유명한 브랜드나 창작자보다 잠재력 있는 이들과 협업하는 것을 즐겨요. 스테이폴리오 이상묵 대표나 지랩, 포머티브건축 등도 아주 초창기에 협업한 팀이고요. 특히 포머티브건축은 첫 프로젝트가 토리코티지였습니다.
명성에 기대지 않으려면 그만큼 훌륭한 안목이 필요합니다. 결과물이 예측 불허한 상황에서 좋은 디자이너를 식별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진짜 훌륭한 디자이너는 본질을 꿰뚫고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하다 보면 그게 드러나요. 말이든, 글이든, 이미지든, 행동이든. 반면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는 비본질적인 형식만 늘어놔요. 제가 오랫동안 협업을 하면서 깨달은 노하우입니다.
스스로 건축 덕후라고 했지만, 솔직히 실무자만큼 건축을 이해하기는 어렵죠. 이런 상황에서 클라이언트로서, 파트너로서 어떤 장점이 있나요?
저는 각자의 전문 영역과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 좋은 프로젝트가 완성되죠. 상대방을 내 구미와 의향에 맞게 바꾸려고 할 때 협업 관계가 어그러집니다. 일단은 제 감정과 지향점의 최대치를 발현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는 상대방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고 합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만 의견을 제시하면 그만이죠.
그렇다면 기획자 이창길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인가요?
사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토리코티지 초창기 시절에는 건축가든 디자이너이든 다 저희 부모님 댁에서 묵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했거든요. 그런데 가만 보니 아침만 되면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거예요. 어머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파트너들이 “어머니, 설거지는 저희가 할게요”라고 하면 어머니는 “내가 할 테니 그냥 둬라” 하시고. 그러면 자리에 돌아와서도 좌불안석이죠. 어떤 상황인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죠? 그걸 보면서 펜션 싱크대 면적을 넓히고 수도를 2개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또 다른 예로 독채 펜션의 침실 조명을 들 수 있습니다. 펜션 침실에서 하는 행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이 말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조명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을 읽고 프로젝트에 반영하는 게 바로 제 역할입니다.
개항로프로젝트의 시작
제주도 다음 행보가 서울이 아닌 인천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워요. 단순한 애향심 때문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나름대로 계산된 움직임이었습니다. 인천은 유독 많은 오해를 받는 지역입니다. 거칠고 범죄율이 높다는 인식이 강하죠. 그런데 제가 실제 데이터를 보니 전혀 사실이 아니더군요. 과거 몇 가지 강렬한 사건이 깊이 각인되고, 인터넷에서 지역 비하를 놀이 문화로 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생긴 선입견 같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이 사실과 다르다면 분명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인천은 인구가 300만 명입니다. 단 한 번도 인구가 줄어든 적이 없죠. 요즘 같은 지방 인구 소멸 시대에 이건 축복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저렴한 건물 매매 비용을 떠올렸습니다. 서울에서 공간을 임대해서 건물 가치를 높여주면 많은 경우 건물주로부터 나가라는 고지를 받습니다. 정작 건물의 가치를 높여주는 창작자들의 지속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것이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건물을 구입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생각했어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도 동료들에게 한 이야기가 ‘우리 쫓겨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지속 가능성을 우리 손으로 성취하자는 건데 서울에서는 쉽지 않죠.
글쎄요. 일리가 있지만 상권 등 전통적인 입지 조건을 무시할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사람이 몰리지 않으면 운영이 어렵잖아요.
물론 그런 부분에 대해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매장을 워크인으로 들어갔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매력적인 공간은 구글 맵을 찍고 찾아가잖아요. 저는 이걸 불편함을 즐길 줄 아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석했어요. 불편해도 재미있으면 충분히 감내하는 세대가 주요 소비층이 됐다는 것입니다. 흔히 오해하는데 사실 공간 비즈니스는 무조건 사람이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닙니다. 개항로프로젝트가 만약 공산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면 다다익선이었겠지만, 공간 비즈니스는 영업시간에 공간을 다 채우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숙박업을 할 때 업의 본질이 시간을 파는 것이라는 지혜를 얻었는데 공간 비즈니스의 속성도 비슷합니다. 더 많이 몰려도 어차피 다 수용할 수가 없어요. 결국 나만 잘하면 적당한 공간의 밀도를 유지하면서 비즈니스를 이어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죠.
시대의 흐름을 읽고 있는 셈이네요.
국과 우리나라 지도를 겹치면 재미있는 걸 하나 발견할 수 있어요. 실제로 두 나라가 엇비슷하게 포개어지거든요. 이때 리버풀은 인천, 런던은 부산, 버밍엄은 대전과 만나요. 더 흥미로운 건 지리적 특성뿐 아니라 도시의 기능도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런던이 동쪽 바다를 통해 유럽과 교역했고 버밍엄은 철도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리버풀이 서쪽 바다를 통해 미국과 교류했듯이 인천도 개항장이 있었죠. 미국으로 치면 뉴욕, 일본으로 치면 요코하마가 유사한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경험한 도시들의 현재를 보면 우리의 미래가 보입니다. 실제로 여타 도시와 마찬가지로 인천 항구에는 각종 국가 시설과 산업 시설이 밀집되어 있었죠. 인천이 바다를 면하고 있음에도 바다를 잘 느낄 수 없는 건 이런 시설들 때문에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어느 국가이든 산업 구조가 바뀌면 기존 시설의 쓸모가 없어집니다. 그대로 방치되기 일쑤죠. 해외 사례를 보면 이런 건물과 시설이 호텔,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으로 변모했습니다. 저는 인천이라는 지역도 이러한 선례를 따라갈 거라고 봐요. 우리나라에서 인더스트리얼 빈티지가 가능한 도시는 결국 인천과 부산 두 곳이라고 생각하는데 인천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이 있죠. 제가 처음 제주도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 지인 한 명이 ‘제주도는 화산이 터진 이래 땅값이 오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땅이 평당 30만 원밖에 하지 않던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재미있는 건 제가 개항로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주변 반응이 거의 비슷했다는 거예요.
마계인천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브랜딩을 시도하는 것도 흥미로워요.
각 도시는 보통 긍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도시 슬로건을 만들죠. 평화의 도시, 웰빙 도시…. 나쁜 건 아닌데 재미가 없어요. 반면 포틀랜드의 슬로건은 ‘Keep Portland Weird’, 즉 ‘포틀랜드의 독특함(이상함)을 유지하자’입니다. 행정 차원의 슬로건은 ‘Keep Portland Alive’이지만 전자가 더 매력적이죠.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리서치를 한 적이 있는데 인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마계인천’이었다고 해요. 물론 이게 실제 범죄율이 높아 생긴 별칭이면 문제가 되겠지만 앞서 말했듯 그렇지 않기에 강력한 브랜딩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지난해에는 윤디자인그룹과 개항로 서체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로컬 비즈니스에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로컬 비즈니스의 디자인은 접근 방식 자체가 달라야 합니다. 그저 미학적인 부분만 충족해서는 안 되죠. 비즈니스 자체가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디자인 역시 좀 더 입체적이고 섬세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활용하던 자원을 동시대에 맞게 변용해 소통을 완성하는 것이 로컬 비즈니스의 디자인이 갖춰야 할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미감만으로 승부할 수 없다는 뜻이군요.
솔직히 저는 요새 예쁜 게 지겨워요. 예쁜 카페, 예쁜 제품…. 상향 평준화된 시대의 역설 같습니다. 무엇을 만들었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왜 만들었느냐가 훨씬 중요해지는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달리 말해 서사가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디자이너는 그 서사를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전문가이죠.
개항로 통닭 등 여러 비즈니스도 전개 중입니다.
현재 운영하는 브랜드가 20개 정도 되는데, 개항로 통닭은 그중에서도 각별한 브랜드입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여러 공간을 운영하다가 문득 50대 이상이 프로젝트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세대가 공감하고 아우를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지금 상태로는 반쪽짜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민하다가 나온 콘셉트가 ‘운동회’였습니다. 유년 시절, 나도 엄마도 할머니도 즐거웠던 운동회.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강렬한 경험이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고 본 것이죠. 매장 곳곳에 인천 지역에서 찍은 소풍 사진을 배치했어요. 예컨대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나 월미도에서 찍은 사진 같은 것을 말이죠. 인천 지역 사람들은 60대나 20대나 한 번쯤 가는 곳이거든요. 정문도 일부러 대로변이 아닌 좁은 골목길을 향해 냈어요. 좁고 낡은 골목길을 통과하면서 특유의 정서를 느끼도록 설계한 거죠. 지인 디자이너 한 명이 매장에 와서 좌절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해도 사람이 오는구나”라면서요. 핵심은 아름다움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개항로 통닭은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했습니다. 로컬에서 시작해 내셔널이 되고 있다는 게 의미가 있죠.
로컬리티의 미래
비즈니스를 전개할 때 꼭 슬로건을 정한다고 알고 있어요.
디자인이나 기획을 할 때 자기가 하는 일을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으로 명료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안 되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건 곧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이에요. 말주변이 없다는 건 보통 변명이죠.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도 없어요. 레고는 ‘Play’, 볼보는 ‘Safe’, 샤넬은 ‘Fantasy Sharing’. 명확한 슬로건을 정해두면 회의할 때도 유용해요. 사업이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합의가 된 채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이때 슬로건이 기준이 되어줘요. 제가 가끔 다른 회사 회의를 지켜보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어요. 팀장이 처음에는 직원들한테 자유롭게 의견을 내보라고 해요. 그런데 막상 자유롭게 의견을 내면 구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분명 상사가 머릿속에 어렴풋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있을 텐데 그걸 충분히 공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하려고 하니까 직원들만 억울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더 웃긴 건 그 공란을 메우기 위해 보통 회사는 열심히 계획을 짠다는 것입니다. 합의된 큰 그림을 향해야 하는데 디테일한 계획에 집착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죠.
그렇다면 현재 마계인천의 슬로건은 뭔가요?
해마다 슬로건을 정하는데 올해는 ‘노 레퍼런스, 글로벌 스탠더드 인천’으로 정했습니다. 요새 영역을 불문하고 레퍼런스를 찾느라 애쓰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레퍼런스를 깔고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저희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레퍼런스가 될 거예요. 인천에 꽤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데 올해 개항로는 이들을 모으는 구심점이 될 겁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고 글로컬라이제이션을 만드는 게 숙제입니다. 특히 흔히 말하는 제3세계에서 온 외국인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이들을 위한 포럼도 기획 중이고요.
‘노 레퍼런스, 글로벌 스탠더드 인천’이라는 슬로건은 ‘지역다움’, 더 나아가 ‘자기다움’이라는 표현과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많은 인터뷰이들이 자기다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죠. 그런데 결국 자기다움을 사업으로 연결하려면 상대방을 설득하는 전략도 필요하지 않나요?
저는 그런 생각 또한 지극히 전통적인 전문가의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브랜딩 전문가는 남 좋은 걸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2024년의 브랜딩 전문가는 나의 ‘덕질’, 나만의 고유함을 동시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1977년생 싸이의 콘서트는 매년 매진이 될까요? 그가 올해 데뷔한 지 24년이 된 걸로 아는데 그가 만약 24년 전 트렌드에 맞는 음악을 했다면 진작에 사라졌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자기 마음대로 음악을 해요. 1979년생 노홍철은 어떻게 나이가 어린 사람과도, 많은 사람과도 그렇게 잘 어울릴까요?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순수하게 덕질을 하기 때문입니다. 기안84는 또 어떻고요. 그가 한 20년 전쯤 방송에 나왔다면 항의 전화를 엄청 받았을 거예요. 그런데 요샌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이 시청률 1위를 찍잖아요. 덕질을 대중이 수용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죠. 어쩌면 점점 더 어려운 게임이 된 걸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과거보다 자기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분별해야 해요. 워낙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이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타인이 정리한 정보와 생각을 자기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네 사람이 한 팀이 되어 프로젝트를 준비한다고 칩시다. 그럼 4명 모두 똑같이 구글링하고, 유튜브 보고, 핀터레스트 보고, 책을 봐요. 심지어 이 과정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이 정보가 내 생각인 양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 결과도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죠. 정보는 범람하는데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새 교육에 꽂혀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마계대학 같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 배경이군요.
맞습니다. 데이터와 정보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정보는 운동화 같은 것입니다. 운동화를 신지 않은 누군가와 경주한다면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운동화가 주어진 상황에서는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죠. 여기서 필요한 건 이 상황과 조건을 어떻게 활용하냐입니다. 여기서 덕질이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할 것이고요. 이걸 표현한 게 마계대학의 슬로건 ‘로직 & 매직’입니다. 매직이 강력해지면 로직 이상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결론은 다시 자기다움이네요.
분명한 건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젊은 친구들을 중심으로 서울을 벗어나기 시작한 게 한 예입니다. 양양 서핑 비치가 뜬 이유도 아주 단순해요. 강남과 분당에 거주하는 서핑 마니아들이 양양고속도로가 뚫리니 모두 그쪽으로 향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주말 이틀, 나중에는 사나흘, 그러다 아예 정착까지 하게 된 것이죠.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취향, 생각, 관점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일종의 부족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부족이 전국구 단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컬 비즈니스를 꿈꾸는 디자이너와 창업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서울을 따라 하면 안 돼요. 대한민국에 카페가 3개였던 시절이 있어요. 전국에 필요한 카페 수는 100개인데 말이죠. 이때 사업가가 취해야 하는 방식은 가장 적절한 형태의 카페를 가장 신속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가 끝났어요. 필요한 카페 수는 100개인데 지금은 2000개가 존재합니다. 서울에서 잘나간다는 카페를 그럴싸하게 따라 하는 건 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냥 서울로 향하겠죠. 이마트로 장을 보러 가는데 대전까지 내려가지 않잖아요. 친구들끼리 강릉에 가서 “야, 오랜만에 강릉에 왔으니 다 같이 김밥천국에 가자”라고 하지도 않죠. 핵심은 서울과 다른 걸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 자원을 활용해야 하고요. 더 나아가 그 비즈니스에 자기 자신을 투영해야 해요. 그래야 고유의 서사가 생기니까요. 온전한 나의 이야기는 카피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