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를 돕는 지루한 디자인? 덤폰 4

지루한 디자인의 매력

최근 MZ세대에게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스마트폰이 아닌 피처폰을 들고 다니는 게 유행일 정도. 지루한 디자인으로 주목 받는 네 개의 덤폰(dumb phone)을 소개한다.

디지털 디톡스를 돕는 지루한 디자인? 덤폰 4

SNS는 인생의 낭비다. 영국 축구계의 레전드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의 말은 오늘날 두고두고 회자된다. 더욱이 최근에는 숏폼 콘텐츠가 일상 깊숙이 침투하면서 여가 시간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라 더욱 와닿는 말이다. 그만큼 현대인은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다. 자연스레 이러한 현상에 위기감을 느끼고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도 생겼는데 바로 ‘디지털 디톡스’다. 중독의 원인인 스마트폰에서 멀어지는 것이 가장 급선무. 그래서일까 미국에서는 Z세대를 중심으로 피처폰, 일명 멍청이 폰이라고 불리는 덤폰(dumb phone)이 다시금 인기를 끌고 있다.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 기능만을 탑재해 물리적으로 SNS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루한 디자인으로 디지털 디톡스를 이끄는 네 개의 덤폰을 소개한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MZ 세대들의 모습’이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해 얻은 이미지 (사진 출처. DALL-E2)


맥주 회사가 만든 핸드폰? 하이네켄 보링폰

네덜란드 맥주회사 하이네켄(Heineken)이 미국의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보데가(Bodega), 핀란드 모바일 기기 브랜드 HMD 글로벌과 함께 지루한 핸드폰, 일명 보링폰(Boring Phone)을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보링폰이라는 이름처럼 전화, 문자, FM 라디오, 스네이크 게임, 30만 화소 카메라 정도만이 탑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술의 집약체인 스마트폰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는데 이는 하이네켄이 의도한 바이다. 브랜드는 자신들의 경쟁 대상을 스마트폰으로 규정했는데 사람들이 SNS에 중독되며 사회적인 교류가 줄었기 때문이다. 교류의 감소는 자연스레 맥주 판매량과도 연결된다. 즉, 온라인 세상에서 벗어나 오프라인 공간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셔라는 것이 바로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한편 보링폰은 디자인도 단출하며 지루하다. 1990년대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투명한 플립폰 형태로 하이네켄 브랜드를 상징하는 녹색을 곳곳에 녹여냈다. 작은 가방이나 주머니에 쉽게 넣을 수 있는 크기도 인상적이다. 전면부 모노크롬 스크린에는 하이네켄 맥주병과 기본 정보만이 표시되어 애플리케이션이 가득한 스마트폰의 스크린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보링폰은 지난 2024 밀란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의 보데가 팝업에서 처음 실물을 공개했다. 한편 보링폰은 한정판으로 5,000대만 출시했다.


기술과 라이프스타일의 균형, 펑크트 MP02

2008년 페터 네비(Petter Neby)가 창립한 스위스 제품 회사 펑크트(Punkt.)의 피처폰 MP02도 최근 젠지(Gen Z)들에게 다시금 각광받고 있다. 디터 람스의 후계자라고 불리는 영국 산업 디자이너 제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이 디자인한 제품으로 평소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선보인 그답게 기능과 디자인을 모두 최소화했다. 특히 통화와 문자 수신 두 가지 기본 커뮤니케이션 기능만 탑재해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제품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펑크트가 만든 피처폰 MP02 (사진 출처. 펑크트 홈페이지)

이처럼 MP02는 아날로그를 적극적으로 지향하지만 동시에 생활에서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민도 엿보인다. 바로 4G LTE 핫스폿 기능이다. 테더링을 통해 노트북이나 태블릿 등 주변 기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SNS로부터 멀어지고 싶으나 멀티태스킹이 필요한 소비자를 겨냥했다. 제스퍼 모리슨은 이를 두고 MP02는 모든 디지털 장비에 앞서는 일종의 문지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MP02는 단순히 디지털 디톡스만을 위한 제품이기 보다 기술과 라이프스타일의 관계를 균형 있게 조절하기 위한 장치임을 강조한다.


흑백의 미학, 라이트 폰 3

2014년 뉴욕 브루클린에 조 홀리어(Joe Hollier), 카이웨이 탕(Kaiwei Tang)이 공동 설립한 모바일 폰 스타트업 더 라이트 폰(The Light Phone, Inc)이 최근 새로운 모델을 공개했다. 2015년, 2018년에 각각 공개한 라이트 폰, 라이트 폰 2를 잇는 5년 만의 신제품이다. 바로 ‘라이트 폰 3The Light Phone III’가 그것이다. 앞선 두 모델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바로 디스플레이 디자인이다. 이전에는 전자 잉크E-Ink를 사용했으나 라이트 폰 3에서는 OLED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아울러 이전 모델에서는 없던 카메라도 전면과 후면에 모두 갖췄으며 NFC 칩을 탑재해 휴대폰 터치 방식으로 결제도 가능하다.

한편 라이트 폰 3는 제품이 기존에 지닌 디지털 디톡스의 방향성은 그대로 유지한다. 특히 이를 위해 소셜 미디어 관련 기능은 여전히 사용할 수 없도록 설계되었고, 전화, 문자, 연락처, 메모, 알람, 캘린더, 음성, 지도, 핫스폿, 음악 앱 등 기본 앱 수준의 기능들만 내장되어 있다. 복잡한 스마트폰 기능에서 벗어나 필수적인 기능들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라이트 폰 3는 IP54 등급의 방진 및 방수가 가능한 알루미늄 프레임을 사용해 하드웨어 내구성이 뛰어난 것도 주목할 점이다. 즉, 자주 제품을 바꿀 필요 없이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데 제품 수명 연장은 물론 자원의 낭비를 줄인다는 측면에서도 오늘날 젠지 세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너 피스를 위한 폰, 무디타 퓨어

폴란드 바르샤바에 자리한 스타트업 무디타Mudita가 개발한 무디타 퓨어Mudita Pure도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덤폰으로 주목받는 제품이다. 스마트폰의 반대 지점을 향하는 다른 피처폰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기능만을 탑재했다. 통화, 문자, 알람, 노트, 음악 플레이어, 캘린더, 계산기, 손전등 등 기본 앱을 갖췄다. 그중에서 눈여겨볼 점은 명상 타이머 기능이다.

뮤디타 퓨어의 명상 타이머는 사용자가 보다 쉽게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이다. 집중력을 높이고, 스트레스를 낮추어 건강한 마음과 정신을 갖추도록 유도한다. 명상 타이머는 사용자의 니즈에 따라 세션 길이를 커스터마이즈 할 수 있는데 명상 입문자부터 숙련자까지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맞춤형으로 사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뮤디타 퓨어의 이너 피스 콘셉트가 두드러지는 기능이 한 가지 더 있다. 캐나다 출신의 뮤지션 닉 루이스(Nick Lewis)가 작곡하고 녹음한 벨 소리와 알람음이다. 기타, 우쿨렐레, 티베트 볼, 코시 벨, 심벌즈, 하프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해 편안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음악을 작곡했다. 디지털 디톡스를 넘어 웰빙으로 이끄는 무디타 퓨어는 덤폰이 사용자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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