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와 구홍의 〈구홍과 윤기〉전
음악가이자 화가인 김윤기와 언어를 기반으로 편집과 디자인, 프로그래밍의 경계를 넘나드는 민구홍이 만났다. ‘윤기와 구홍’은 음악을 공통분모로 모인 두 사람이 2023년 결성한 웹 기반 음악 듀오다. 규칙과 질서를 조직하는 데 능한 이와 일말의 변주를 꿈꾸는 예술가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의 첫 전시가 7월 3일부터 8월 3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린다.
음악가이자 화가인 김윤기와 언어를 기반으로 편집과 디자인, 프로그래밍의 경계를 넘나드는 민구홍이 만났다. ‘윤기와 구홍’은 음악을 공통분모로 모인 두 사람이 2023년 결성한 웹 기반 음악 듀오다. 규칙과 질서를 조직하는 데 능한 이와 일말의 변주를 꿈꾸는 예술가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들의 첫 전시가 7월 3일부터 8월 3일까지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린다.
두 사람이 듀오를 결성한 배경이 궁금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김윤기가 민구홍의 전시 오프닝을 장식하거나 민구홍이 김윤기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하는 등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보니 뭔가 함께 하고 싶어진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음악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음악가인 김윤기에게는 물론이고, 특히 어린 시절부터 김윤기의 음악을 들으며 자란 민구홍은 자신이 아끼는 곡으로 ‘골든 민 맨(Golden Mean Man)’과 ‘포터블 지저스(Portable Jesus)’를 꼽는다. 김윤기가 참여한 잡지 〈MDM〉의 오랜 구독자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의 팬이었다.
윤기와 구홍이 벌이려는 일은 그간 두 사람이 전개해온 활동과 어떻게 만나고 어긋나는가?
윤기와 구홍은 서로가 혼자인 상태에서 발견한 어떤 틈에 관한 이야기다. 김윤기와 민구홍의 ‘혼자’ 사이의 틈, 윤기와 구홍은 그 틈을 메우기 위해 서로를 빌린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20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민구홍이 제시한 스무 가지 규칙 가운데 김윤기가 다섯 가지 규칙을 선택해 회화로 그려내는 방식이었다.
얼마 전 김윤기가 민구홍에게 앨범 재킷 디자인을 부탁했다. 일찍이 인공지능 기술에 심취한 민구홍은 직접 디자인을 시도하는 대신 김윤기에게 디자인을 위한 프롬프트를 제공했고, 김윤기는 그에 따라 재킷을 디자인했다. 마침 지난 6월 10일 세계개발자회의(WWDC)가 열렸는데, 조만간 챗GPT가 iOS에 산뜻하게 탑재되며 인공지능은 현실과 더 가까워질 예정이라고 한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 예술가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질까? 프롬프트를 통해 컴퓨터에 지시를 내리는 프롬프트 엔지니어처럼 예술가 또한 어떤 규칙과 조건을 설계하고 그에 따라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변모할까? 민구홍이 기계적으로 생성해낸 규칙과 조건을 김윤기가 인간적으로 바구니에 담은 이번 전시는 그런 미래를 바라보는 사전 실험이다. 물론 이는 개념미술가 솔 르윗(Sol Lewitt)이 이미 꿈꾸고 실천한 오래된 미래일지 모른다.
‘캔버스에 임의의 색과 굵기로 수평선을 하나 그릴 것’, ‘지금 떠오르는 한글 단어를 쓸 것’ 등 스무 가지 규칙은 어떻게 도출했나?
민구홍은 김윤기의 기존 작품을 분석한 뒤 각 작품에 적용된 기법을 언어화해 스무 가지 규칙으로 정리했다. 이 규칙을 다시 조합해 작품을 제작하면 어떤 결과물이 도출될지 궁금했다.
규칙을 적용하는 데 기준이 있었다면?
김윤기는 다섯 가지 규칙을 적용하거나 한 가지 규칙만 적용하기도 했다. 민구홍이 제시한 스무 가지 규칙은 김윤기로 하여금 무한한 자유 속에서 자신만의 해석과 스타일을 발휘하게 했다. 모든 규칙을 따르기보다 그 가운데 다섯 가지를 선택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주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예술은 모름지기 제약 속에서 꽃피는 법이다. 주어진 한계를 인식하고 독창성을 발휘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진정한 재능 아닐까. 또한 다섯 가지 규칙을 바탕으로 20개의 작품을 창작한 것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변주와도 같다. 한 곡의 멜로디를 가지고 다양한 편곡과 연주를 선보이듯 김윤기는 같은 규칙 안에서도 저마다 다른 느낌과 해석을 담아냈다. 예술이란 결국 같은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김윤기의 20개 작품은 규칙이라는 악보 위에 그려진 즉흥적인 멜로디, 한 알고리즘이 빚어낸 20개의 변수다.
두 사람의 합작은 언어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윤기와 구홍에게 회화는 어떤 의미인가?
회화는 인간의 감성을 대변해온 고전적인 예술 형태다. 김윤기에게 회화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명상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은유적 언어다. 민구홍은 디지털 시대의 언어인 코딩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윤기와 구홍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엇보다 회화를 택한 이유는 그것이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본질적인 표현 방식인 까닭이다. 김윤기는 말한다. “그림을 그리는 게 간단하고 좋다.” 캔버스 위에 펼쳐진 이미지와 색채는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이때 김윤기의 작품이 음악처럼 느껴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김윤기의 작품에는 리듬과 멜로디, 화음과 디스코드가 공존한다.
민구홍은 합작 규칙 텍스트를 모아 웹 기반의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영상과 회화 사이의 어떤 상호작용을 의도했나?
회화는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동시에 고정적이다. 하지만 개념적으로는 비물리적인 동시에 유동적이다. 웹 기반 텍스트 영상은 기본적으로 비물리적인 동시에 유동적이다. 하지만 개념적으로는 물리적인 동시에 고정적이다. 이렇듯 어떤 대상이든 양가성을 품고 있다. 윤기와 구홍이 추구하는 ‘질서와 혼돈’이다. 민구홍의 영상 작품은 김윤기의 회화를 또 다른 차원으로 해석하고 변주하는 시도다. 정적인 이미지인 회화가 움직이는 이미지인 영상을 만났을 때 그 언저리에서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날까. 관객은 회화 작품을 감상하면서 영상을, 영상을 보면서 회화를 떠올릴 것이다. 거울에 비친 듯 서로를 반영하는 둘은 관객의 인식 속에서 하나로 융합된다. 이는 예술이 매체의 경계를 초월해 자유롭게 흐르고 소통하는 과정임을 드러낸다. 한 작품이 다른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렇게 빚어진 새로운 작품이 다시 원작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서로 다른 혀를 가진 연인들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듯 윤기와 구홍의 작품은 각자의 언어로 사랑을 속삭인다. 김윤기의 캔버스가 민구홍의 언어를 만나는 순간, 둘의 로맨스는 비로소 완성된다.
지우헌의 공간적 특성이 전시와 작품에 영향을 준 지점이 있다면?
한옥 구조 자체가 전시 기획이나 작품 제작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사실 우리가 주목한 건 지우헌이 본래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의 개인 별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일반에 공개된 누군가의 은밀한 취향. 이는 그 자체로 전시의 속성과 맞닿아 있다. 전시는 결국 개인의 은밀한 취향을 내보이는 행위다. 작가의 영혼을 벌거벗긴 채 관객의 시선에 노출시키는 용기 말이다.
윤기와 구홍의 모토 ‘Let Us Play!’는 이번 전시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Let Us Play!’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우리를 놀게 하라!’, 다른 하나는 ‘놀자!’. 두 해석 모두 들판을 뛰노는 강아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놀이는 생산을 추동하는 중요한 힘이다. 그리고 스스로 노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다른 이가 노는 걸 바라보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이번 전시는 우리를 놀게 해준 전시이면서 동시에 관객을 놀이로 초대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윤기와 구홍 웹사이트에는 현재 세 곡이 업로드되어 있다.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작업을 보게 될까?
그동안은 사실 베타 테스팅 기간이었다. ‘웹 기반 음악 듀오’라는 소개에 어울리는 활동을 이어가려 한다. 김윤기식으로 이야기하면 앞으로 우리는 바구니에 포장된 비누를 진열하게 될지 모른다.
김윤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국제경영학을 공부했다. 1995년 헤비 메탈 밴드를 결성했으며 동네 음반 상점 ‘석기시대소리방’에서 판매를 시작으로 일본, 영국 등에서 음반을 발매하고 각종 공연과 전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관심이 가는 여러 가지를 이용해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일을 한다. 리갤러리(2023), 원앤제이 갤러리(2018), 그리고 갤러리(2016) 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linktr.ee/yoonkeekim
민구홍 중앙대학교에서 시와 언어를,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다. 안그라픽스와 워크룸에서 편집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했으며, 1인 회사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운영한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를 표방하는 ‘새로운 질서’에서 ‘실용적인 동시에 개념적인 글쓰기’의 관점으로 코딩을 이야기하고 가르친다. 서울시립미술관(2023), 프라이머리 프랙티스(2023), 아트선재센터(2020), 대안공간 루프(2021), 국립현대미술관(2018) 등에서 전시를 열었다. 2024년 현재 안그라픽스 랩 디렉터로 일하며 ‘하이퍼링크’를 만든다. minguhong.fy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