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되찾은 흑인 문화의 자부심, 블랙 엘리베이션 지도
팬데믹으로 해외 여행이 불가능해진 2022년, 미국의 흑인 전용 여행사 '블랙 & 어브로드'는 '블랙 엘리베이션 지도'를 선보이며 무사히 위기를 극복했다.
2015년 미국에서 등장해 여행업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킨 ‘블랙 & 어브로드Black & Abroad’는 사명에서 추측할 수 있듯 흑인 전용 여행사이다. 백인 중심으로 편향된 여행 산업을 바꾸겠다고 결심한 켄트 존슨Kent Johnson과 에릭 마틴Eric Martin은 흑인을 위한 럭셔리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조상들의 출신 국가를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고객을 위해 탄자니아, 가나, 세네갈, 케냐 등을 여행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는 것을 넘어 전 세계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연결하는 일까지 앞장섰다.
팬데믹을 겪으며 존폐의 위기 상황까지 몰렸지만 블랙 & 어브로드는 2022년 디지털 지도 ‘블랙 엘리베이션 지도(Black Elevation Map)’를 론칭하며 위기를 영리하게 극복했다. 21세기 〈그린 북〉*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도는 미국 내 흑인과 관련된 문화유산, 흑인이 소유한 식당과 와이너리, 기업, 예술 시설 등을 표시해 사용자가 여행 중 흑인과 관련된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출국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내 여행으로 인식을 전환한 것이다.
디자인 과정에서는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인터페이스를 구성하는 데 주력했다.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3D로 된 검은색 미 대륙을 확인할 수 있는데, 흑인 인구와 관련 시설이 밀집된 지역은 봉우리가 솟아오른 것처럼 표현해 대략적인 현황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역사적 장소, 흑인이 소유한 기업 등 항목에 따라 사용자가 원하는 영역을 선택해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디테일한 영역의 디자인까지 흑인 문화에 대한 존경을 표한 점도 인상적이다. 지도에 사용한 서체는 독립 폰트 파운드리 ‘보컬타입Vocaltype’에서 만든 ‘마틴Martin’인데, 1968년 미국 멤피스 흑인 청소 노동자 파업 당시 사용하던 포스터의 서체를 오마주한 것이다(같은 해 마틴 루서 킹 2세가 이 파업을 격려하기 위해 멤피스를 방문했다가 암살당했다). 지도에 사용한 아이콘들은 가나, 코트디부아르 등을 포괄하는 서아프리카의 ‘아딘크라Adinkra’ 문양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이처럼 세심하게 설계한 ‘블랙 엘리베이션 지도’는 공개 후 전 세계 흑인 커뮤니티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더욱 많은 영역을 포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다.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발행한 흑인 운전자를 위한 여행 가이드북.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시절에 흑인이 이용할 수 있는 호텔, 민박, 레스토랑, 주유소 등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블랙 & 어브로드는 혁신적인 여행 경험을 통해 전 세계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응원하고 고양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블랙 엘리베이션 지도’의 개발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팬데믹 기간 중 미국의 흑인 사업자들이 정부 지원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국내 여행을 유도하는 서비스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현재는 지도의 도달 범위와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지역사회, 교육 기관, 문화 단체 등과의 협업을 검토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지도가 흑인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켄트 존슨
블랙 & 어브로드 공동 창업자 & 최고 전략 책임자
“지도 디자인 과정에서는 많은 사용자가 이동 중에 사용할 것으로 간주해 모바일 환경의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했다. 중요한 정보에 쉽게 접근하도록 부가적 요소는 최소화하는 깔끔한 레이아웃을 구현하고자 했다. 또한 사용자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장소마다 리뷰와 추천을 남길 수 있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지도에 옮기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흑인 문화의 다양성을 제대로 표현하는 디자인이 중요했다.”
에릭 마틴
블랙 & 어브로드 공동 창업자 &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