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경험을 설계하는 BX 기획자, 나혜미 에어로케이 브랜드전략팀장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항공기를 타본 적도 없는 이들까지 팬으로 만드는 에어로케이. 팬덤을 만드는 비결을 알아보고자 나혜미 브랜드전략팀장을 만났다.
최근 들어 서비스와 브랜드 경험을 고도화해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는 LCC(Low Cost Carrier, 저비용) 항공사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다. 2020년 젠더리스 유니폼으로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뒤 참신한 협업 프로젝트를 연이어 선보이는 ‘에어로케이’도 그중 하나다. 청주국제공항을 거점으로 2021년 첫 운항 이후 올해 5월에서야 인천국제공항에 취항했지만, 에어로케이를 향한 젊은 세대의 관심은 트렌디한 패션 브랜드 못지않다. 에어로케이의 항공기를 타본 적 없어도 이 ‘브랜드’의 팬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정도. 국내 항공업계에서 보기 드문 시도를 감행하는 에어로케이의 나혜미 브랜드전략팀장에게 남다른 브랜딩의 비결을 물었다.
에어로케이가 항공운항증명(AOC)•을 받기도 전인 2020년 마케팅팀으로 합류했다. 신규 항공사로 이직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다.
에어로케이가 첫 국내선 운항을 시작한 것이 2021년이니, 항공기가 제대로 뜨는 걸 보기도 전에 입사한 셈이다.(웃음) 에어로케이 전에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유럽 대형 항공사 등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대행하는 에이전시에서 일했다. 오랜 세월 쌓아온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브랜드의 가치를 전하는 일을 주로 했다. 글로벌 브랜드와 일하면서 배울 점도 많았지만, 브랜드를 알리는 방법에 제한 사항이 많아 늘 아쉬웠다. 그러던 중 에어로케이라는 항공사가 론칭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항공사 브랜딩을 처음부터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에 지원했다.
•Air Operator Certificate. 항공 당국이 항공사가 안전히 운항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한 후 부여하는 공식 증명서.
에어로케이의 브랜드전략팀은 무슨 일을 하나?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브랜드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일과 브랜드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일. 후자가 바로 에어로케이만의 차별점이다. 항공기에 탑승하는 것 이외에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화제를 모았던 협업과 캠페인 모두 브랜드전략팀에서 기획했다.
입사 후 처음으로 한 일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를 정립하는 것이었다고.
브랜딩 에이전시가 아무리 유능해도 외부자 입장에서 작업한 것인 만큼 기업에서 가이드를 실제로 적용할 때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중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내부에서 직접 만들고 싶었다. 그 결과 도출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는 항공업 전반을 넘어 더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화제를 모았던 젠더리스 유니폼을 포함해 승무원들의 접객 서비스 방식, 심지어 기내 방송 시 표현과 어투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에어로케이는 “레이디스 앤 젠틀멘Ladies and gentlemen” 대신 “헬로 패신저스Hello passengers”라고 방송을 시작하는데, 성차별적 표현을 지양하기 위한 것이다. 접객 서비스는 승객과 승무원이 상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도록 친절하지만 캐주얼한 느낌으로 설계했다. 승무원의 자유로운 두발 규정도 브랜드전략팀의 제안으로 결정됐다. 이런 작업이 가능했던 것은 가이드가 시각적인 영역의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 전체를 포괄해야 한다는 사실을 구성원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창기에는 브랜드를 정의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면, 이후로는 정립된 브랜드 자산을 바탕으로 항공사의 범주를 넘어서는 독특한 활동을 기획했다.
올해 5월에는 패션 브랜드 ‘마뗑킴’과 함께 개발한 한정판 승무원 유니폼 디자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파트너사의 고객에게 항공사를 알리는 한편, 마뗑킴만의 트렌디한 감성을 에어로케이와 공유하고자 했다. 후드 점퍼와 클러치 벨트 백 등을 제작했는데, 승무원을 위해 디자인했지만 예상보다 반응이 훨씬 좋아 판매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포인핸드, 〈비슬라 매거진〉, 카바 라이프, 신이어마켙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여 에어로케이를 다방면으로 알리고 있다.
브랜드전략팀이 협업을 직접 제안한다고 들었다.
팀 회의를 통해 에어로케이와 결이 맞을 것 같은 브랜드들을 선정하고, 각 브랜드에 최적화된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기획해 제안한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공개된 협업은 대부분 브랜드전략팀의 핵심 아이디어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항공사의 비즈니스 구조와 항공기의 특성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조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이 맞는 브랜드’란 어떤 유형의 브랜드를 의미하나?
각자의 업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브랜드. 일례로 스니커즈 브랜드 마더그라운드는 친환경적인 제작 방식을 선보이고 직접 판매 전략으로 유통 비용을 줄이는 등 동종 업계 내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하는 브랜드라고 판단했기에 승무원용 신발 디자인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시니어 세대가 직접 제작한 문구류와 소품을 판매한 비용으로 빈곤 노인을 돕는 신이어마켙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세상을 바꾸는 데 앞장선다고 생각해, 5월 가족의 달 캠페인을 함께 진행했다.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브랜드 슬로건으로 삼은 만큼, 기업의 규모나 영역에 관계없이 해당 업계에서 신선함을 줄 수 있는 브랜드라면 모두 에어로케이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독자적으로 진행한 캠페인도 많다.
먼저 ‘에어로케이 미츠’를 소개하고 싶다. 국내외 여행 시 현지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에어로케이가 취항하는 도시의 작은 가게와 식당의 주인, 창작자들을 인터뷰하는 소셜 미디어용 콘텐츠이다. 유명한 관광지를 소개하는 여행 콘텐츠의 전형을 탈피해 지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지면 형식에 맞게 편집해 기내 매거진에도 게재하고 있다. 지난해 진행한 채용 캠페인도 큰 화제를 모았다. 스포츠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활동적인 분위기의 화보를 기획해 개성을 표현했다.
이처럼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이 가능했던 것은 에어로케이가 항공업을 재정의하는 기업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동의한다. 항공업계의 경직성에 아쉬움을 느낀 창립 멤버들이 업계를 혁신하겠다는 목적으로 이 회사를 설립했다. 또한 초창기부터 사람과 사람을 잇고, 커뮤니티와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것이 항공업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이를 통해 결국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중요한 기업 철학이다. 많은 LCC 항공사가 고객 유치를 위해 저렴한 항공권을 제공하는 등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다. 하지만 대부분의 탑승객은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어떤 항공사를 이용했는지 금방 잊어버린다. 할인 위주의 마케팅 전략으로 저렴하게 목적지에 도착한 것 외에는 달리 누릴 서비스가 없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소비했지만 정작 브랜드를 제대로 경험하지는 못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비행기 안에 머무는 동안 에어로케이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시켜야 했고, 이러한 고민의 결과로 도출한 것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가이드, 캠페인, 협업 등이다. 여행이나 비행 대신 ‘여정’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기존 업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현시점의 에어로케이에 필요한 디자인과 브랜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올해 5월부터 인천국제공항에 취항하면서 고객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에 따라 고객들이 탑승 전에 어렴풋이 짐작하던 브랜드의 분위기와 이용 과정에서의 브랜드 경험이 잘 이어지도록 고도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탑승 경험 전반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들어 반려동물을 동반한 탑승객의 숫자가 늘고 있어 펫 캐리어를 직접 디자인하고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등 가족 형태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근거리일수록 즉흥적인 여행이 많아지면서 이에 맞는 서비스 개선도 불가피해졌다. 또한 기내에서 판매하는 상품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와 쌍화차를 선보였는데, 실적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후속 상품 개발도 진행 중이다. 에어로케이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쌓아온 브랜드 자산을 앞으로도 잘 지속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브랜딩을 활용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