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휴가의 계절, 서울 밖 로컬 미술관 5

대전부터 제주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로컬 미술관들

다가올 여름 휴가철. 서울 밖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로컬 미술관을 소개한다. 대전, 양주, 아산, 마산, 제주까지. 예술적 휴가를 원한다면 지금 주목하자.

여행과 휴가의 계절, 서울 밖 로컬 미술관 5

다가오는 휴가철, 서울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특색 있는 로컬 미술관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대전의 헤레디움, 경기도 양주의 장욱진&민복진시립미술관, 마산 앞바다가 보이는 조각가 문신의 미술관, 일상 속 소박한 유물을 수집해온 아산의 온양민속박물관, 바람의 건축가를 기억하는 제주 유동룡미술관 등 국내 곳곳에 자리한 미술관을 소개한다. 관람을 위한 팁도 곁들였으니 놓치지 말자.


미술관이 된 근대건축유산, 헤레디움

대전광역시 동구 대전로 735

헤레디움 외관 전경 (사진 제공. 헤레디움)

지난 2023년 개관한 헤레디움은 대전에 들른다면 꼭 가봐야 하는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라틴어로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라는 뜻을 지닌 헤레디움은 1922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 지점으로 사용되어 온 건물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성공적인 사례다. 그뿐만 아니라 미술관 건물은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 제98로도 지정된 바 있다. 그만큼 공간에 얽힌 역사성과 상징성이 남다른 셈이다.

헤레디움은 라틴어로 ‘유산으로 물려받은 땅’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사진 제공. 헤레디움)

공간 이면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린 건 다름 아닌 CNCITY마음에너지재단의 황인규 이사장이다. 24년간 검사로 근무한 그는 예술과 역사에도 조예가 깊었다. 1905년 개통한 대전역과 함께 성장하기 시작한 도시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판단했고 민간 소유로 건축자재상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설득 끝에 매입했다. 대전 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회사를 기반하는 재단인 만큼 대전 시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보수를 거쳐 미술관 헤레디움을 설립했다. 특히 지난해 개최한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의 개인전은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규모의 전시로도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전시였고 근대 역사의 아픈 흔적을 지닌 공간에서 만나는 작가의 작품은 더할 나위 없었다고.

<레이코 이케무라: 수평선 위의 빛(Leiko Ikemura: Light on the Horizon)> 전시 전경 (사진 제공. 헤레디움)

헤레디움은 대전역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자리한다. 오는 8월 4일까지는 일본 작가 레이코 이케무라(Leiko Ikemura)의 국내 최초 개인전 <레이코 이케무라: 수평선 위의 빛(Leiko Ikemura: Light on the Horizon)>을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에서 피어난 미술관에 일본 출신 작가의 전시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한편 헤레디움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하며,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작품을 닮은 미술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집, 까치, 나무, 소, 해, 가족 등 소박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담아온 장욱진 작가의 작품을 꼭 닮은 미술관은 경기도 양주에서 만날 수 있다. 양주시 장흥면에 자리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언덕 위 새하얀 자태를 뽐낸다. 눈길을 사로잡는 건축물은 최성희와 로렌트 페레이라의 ‘최페레이라 건축’에서 설계를 맡아 지난 2014년 개관했다. 흥미로운 건 장욱진 작가의 그림 ‘호작도(虎鵲圖)’를 모티프로 했다는 점이다.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졌지만 세밀한 조형적 구도가 돋보이는 점이 장욱진의 그림을 쏙 빼닮았다. 특히 작가는 스스로를 두고 ‘나는 심플하다’라고 말했다. 작가의 인생관이자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말인데 이를 반영해 하얗고 가벼운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외장재 건축에 활용해 눈길을 끈다. 이러한 건축적 특징 덕분에 장욱진미술관은 2014년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술관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 구조를 지닌다. 지상 1층은 장욱진 작품을 특정 주제 아래 소개하는 기획 전시를, 2층에서는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가 열린다. 오는 7월 9일까지 상설전시 <새벽의 표정>이 열리며, 7월 28일까지는 기획 전시 <장욱진의 황금방주>를 살펴볼 수 있다.

한편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장흥조각공원을 거닐어 보는 것도 권한다. 양주 태생의 현대조각가 민복진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마침 공원을 가운데 두고 장욱진미술관 맞은편에 민복진미술관이 지난 2022년 개관했으니 그의 예술 세계가 궁금하다면 함께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두 미술관 사이로는 장흥계곡도 흐르는데 여름철 물놀이하기에도 좋으니 서울 근교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추천한다.


추산동 언덕 위,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신길 147

마산 합포구 추산동에 자리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은 조각가 문신의 예술혼이 깃든 곳이다. 추산동 언덕에 자리해 마산 시내 전경은 물론 마산 합포만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1922년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을 마산에서 보냈는데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마산을 자신의 고향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본 유학 후 프랑스 파리로 떠나 한국을 오가며 활동해오던 그가 1980년 영구 귀국해 미술관을 건립하기 위해 마산으로 내려온 것도 바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신은 약 15년 동안 직접 자신의 손으로 미술관을 지어 왔다. 작품을 팔아서 하나씩 토지를 매입하고, 경사지 벽면의 돌을 직접 깎아 내리는 등 모든 미술관의 건축 도면과 설계 구상을 직접 했다. 이는 여전히 기록으로도 남아 있어 확인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문신은 미술관 건립에 공을 들였다. 1994년 미술관이 개관했고, 이듬해 작가 문신은 타계했다. 그는 자신의 미술관을 사랑하는 고향에 받치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고, 그의 뜻대로 마산 시민들 누구나 문신의 조각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시립미술관이 됐다. 2010년에는 국내에서는 최초로 원형미술관이 추가로 건립되어 1, 2 전시실과 야외조각 전시장과 더불어 작가의 3,900여 점의 작품과 유품을 소개한다. 오는 10월 27일까지 제1전시관과 원형전시관 1전시실에서는 <문신이 사랑한 마산> 전시가 진행된다. 아울러 원형전시관 2전시실에서는 <문신미술관 30년의 기록>이 2025년 3월 30일까지 열린다. 무엇보다 문신이 직접 머물렀던 자택도 살펴볼 수 있는데 작가의 작품과 함께 작가의 일상을 살펴보는 것도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 될 터.


일상의 유산을 만나다, 온양민속박물관

충남 아산시 충무로 123 온양민속박물관

충남 아산에 자리한 온양민속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사립 민속 박물관이다. 아동 서적 전문 출판사 계몽사를 이끈 구정(龜亭) 김원대 회장이 1978년 설립했다. 박물관은 상설전시가 열리는 본관, 기획 전시를 선보이는 구정 아트센터, 카페 온양, 아산 공예창작센터, 야외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바로 우리의 의식주 일상 속에서 왔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삶, 한국인의 일터, 한국 문화와 제도를 주제로 한 세 개의 전시실을 갖춘 상설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그릇, 수저, 주방 도구, 모자, 신발, 장신구 등 대부분이 과거에 사용되어 온 생활용품들로 오늘날에는 쉽게 보기 힘든 것들이다.

일상 속 유산들을 만날 수 있는 온양민속박물관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건축이다. 특히 기획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는 구정 아트센터는 재일 교포 건축가 이타미준(유동룡)이 설계한 국내 최초의 건물로도 유명하다. 처음에는 온양 미술관으로 불린 구정 아트센터 건축물은 충무공 이순신의 거북선을 형상화했다. 구체적으로는 건물 지붕을 거북선처럼 설계했고, 내부는 충청도 ‘ㅁ’자형 가옥구조를 바탕으로 디자인했으며, 돌이 풍부한 온양의 지역 특징을 살려 돌담을 조성했다. 충무공의 고향, 땅, 그리고 충남 아산만이 지닌 지역색을 건축에 녹여냈다.

한편 전시 관람을 마쳤다면 카페 온양에 들려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것도 이곳을 더욱 재밌게 즐기는 방법이다. 카페 온양에서는 박물관 텃밭에서 기르고 가꾼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아울러 뮤지엄숍에는 온양민속박물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오브제 온양’이라는 굿즈 상품도 있다. 기념품으로도, 선물용으로도 손색이 없으니 함께 둘러보기를 권한다.


바람의 건축가가 깃든 곳, 제주 유동룡미술관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906-10

유동룡미술관 외관 모습 (사진 및 제공. 건축사진가 김용관, 유동룡미술관)
유동룡미술관 외관 모습 (사진 및 제공. 건축사진가 김용관, 유동룡미술관)

여름 휴가철이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곳이 바로 제주도다. 제주도를 즐기는 방식이야 제각기 다르겠지만 건축과 예술에 관심이 있다면 유동룡미술관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다. 2022년 12월에 개관한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의 건축 세계를 오롯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타미 준의 딸이자 건축가, 그리고 동시에 건축주이기도 한 유이화 관장이 지난 2011년 영면에 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마련했다.

‘먹의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1층 라이브러리 공간 (사진 및 제공. 건축사진가 김용관, 유동룡미술관)
‘바람의 노래’라고 부르는 1층 티 라운지 공간 유동룡미술관 외관 모습 (사진 및 제공. 건축사진가 김용관, 유동룡미술관)

지상 2층 규모의 미술관은 자연을 존중하고, 지역 고유의 풍토를 반영해 온 이타미 준(유동룡)의 건축 철학을 반영했다. 3개의 전시실, 라이브러리, 교육실, 아트숍, 티 라운지로 구성된 미술관 곳곳에서는 1970년부터 2011년까지 그가 남긴 건축 작품부터 회화, 서예, 도자, 조각 등의 수집품 그리고 직접 쓴 저서와 영감을 얻어 온 도서들까지 만날 수 있다. 1층 라이브러리는 ‘먹의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티 라운지는 ‘바람의 노래’라고 명명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특히 티 라운지는 평소 차를 즐겨 마시고 손님들에게 대접하기를 즐긴 그의 일상을 반영했다. 이러한 모든 공간 경험들은 유이화 관장의 아이디어다. 단순히 한 건축가를 기리는 기념관의 개념을 넘어 그의 삶의 태도와 자세, 일을 대하는 철학을 동시대의 관점에서 이어가고자 한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편 지난 7월 4일부터 오는 11월 30일까지 이타미 준, 시게루 반, 박선기, 한원석, 강승철, 조소연, 태싯그룹이 참여한 두 번째 기획전 <손이 따뜻한 예술가들: 그 온기를 이어가다>를 살펴볼 수 있다. 건축부터 설치, 미디어,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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