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김현희의 A to Z: K-가구의 매력부터 지속 가능한 공예까지
김현희 아트 퍼니처 아티스트
반닫이, 궤, 갑게수리, 머릿장 등 규방 가구를 재해석 해 온 김현희 작가. 최근에는 전통 보자기에도 관심을 가지며 '지속 가능한 공예'에 대한 신작을 제작 중이다. 한국 문화의 글로벌 인지도가 높아진 오늘날, K-가구의 확장을 꾀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키워드로 살펴본다.
조선시대 규방(閨房) 가구를 재해석한 아트 퍼니처 작품으로 최근 글로벌 브랜드에게 러브콜을 받아 온 김현희 작가. 그녀가 만든 가구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트, 디자인, 공예를 오가는 다차원적 감각, 시대를 읽는 눈, 자신만의 스토리텔링 기법 등 아트 퍼니처 아티스트 김현희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키워드를 A부터 Z까지 살펴봅니다.
프로젝트 A to Z
Bojagi |
B |
김현희 작가의 최근 관심사 중 하나는 한국 전통 보자기다. 보자기는 전통 규방 문화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지속 가능한 공예품이다. 올해 공개한 신작 ‘BO’는 버려진 천 조각을 활용한 보자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업실에서 발생하는 비닐을 모아 해체와 결합을 반복해 현대식 보자기로 해석한 점이 눈길을 끈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을 활용해 새로운 작업을 탄생시키기에 ‘지속 가능한 공예’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13일부터 8월 4일까지 아트 포 랩에서 열린 전시에서 처음 선보였다.
CMF |
C |
색상(Color), 재료(Material), 마감(Finishing)의 약자로 디자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손꼽힌다. 김현희 작가는 대학교 졸업 시기 취업을 준비하면서 자동차 CMF 디자인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국내에서는 자동차의 색상이 한정적인 것에 의문이 있었는데 보다 다채로운 색상의 자동차를 도로에서 보고 싶었다고 한다.
“회색의 도시인 서울에서는 흰색과 검은색 차 밖에는 볼 수 없었는데 색다른 색상과 재료가 느껴지는 자동차를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아름다운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싶진 않았고요. 남들과 다른 색을 고른다는 건 결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인식이 달라져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죠. 비록 자동차 CMF 디자이너의 길을 가진 않았지만, 이때 고민했던 부분은 지금의 가구 작업에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Duiju |
D |
김현희 작가의 말에 따르면 뒤주는 한국 전통 가구 중에서도 가장 서사적으로 읽히는 가구라고 한다. 조선시대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 있기 때문. 본래 뒤주는 쌀과 잡곡 등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죽음과 애환 그리고 자기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밖에 없던 영조의 슬픔이 얽힌 사연 있는 가구로 쉽게 인식된다. 이는 가구에 서사를 담고자 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와 철학에도 맞닿아 있다. 한편 ‘뒤주’ 작품은 ‘화이트 노스텔지어’ 연작 중 최초의 작업이다.
Green Recipe Lab |
G |
그린 레시피 랩(Green Recipe Lab)은 지속 가능한 예술을 위한 친환경 실천과 연구를 위한 모임이다. 여성 예술가 커뮤니티 ‘루이즈더우먼’에 참여 중인 멤버들로 구성되었는데 김현희 작가도 함께 활동 중이다. 보자기를 활용한 신작을 소개한 전시 <RE: Materials>도 바로 그린 레시피 랩의 멤버 송윤지 기획자, 김한비, 정원, 한이경 작가와 함께 만들었다. 이들은 친환경적인 창작 과정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한다. 낭비되는 재료, 유해한 물질 등을 지양하고, 친환경 재료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 전시 이외에도 자재 라이브러리 콩크(CONC)에서 폐지를 재활용해 새싹을 틔우는 씨드 오브제 워크숍부터 아카이빙 북 제작, 심포지엄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Hamburg |
H |
함부르크 교환학생은 김현희 작가에게 큰 반환점이 되었다. 그래픽, 공간, 패션, 산업 디자인 중심의 학교 ‘AMD Akademie Mode & Design’에서 한 학기를 보냈는데 그녀는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작가는 당시 함부르크 근교 도시로 여행을 자주 떠나곤 했는데 가는 미술관마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보였던 것도 인상 깊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어떻게 글로벌 신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라는 고민은 당시 막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창작자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됐다.
“학교 근처에 알스터(Alster)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었거든요. 호수를 따라 걷다 보면 평일임에도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어요. 이전까지의 저는 치열하게만 살았는데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저렇게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술관에서 본 풍경들도 마찬가지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자연스럽게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이전까지 국내에서는 못 본 풍경이라 신기했죠. 예술과 디자인이 일상에 스며들어 있고, 자연스럽게 즐기는 삶의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이외에도 작가는 당시 함부르크 근교 도시로 여행을 자주 떠나곤 했는데 가는 미술관마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보였던 것도 인상 깊었다고 기억했다. ‘백남준 작가는 어떻게 글로벌 신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라는 고민은 당시 막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창작자에게 큰 동기 부여가 됐다.
Literature |
L |
‘화이트 노스텔지어’, ‘오래된 미래’, ‘호접몽’ 등 김현희 작가의 작품명은 문학적이다. 작가는 은유적인 단어와 표현 사용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내러티브를 연구하고 사물에 스토리텔링을 적용하는 작가만의 작품 제작 방식이 반영된 모습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화이트 노스탤지어 : 밤 시리즈’는 소설가 한강의 작품 <흰>을 읽고 떠올린 희미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인상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Material |
M |
김현희 작가는 전통 규방 가구를 재해석하는 과정에 있어서 재료 선택은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나무 대신 철, 아크릴 등 현대 공업용 재료들을 사용한다. 철류는 파주 공장에서, 아크릴은 포천에서 가져온다. 도매가 아닌 소매 방식으로도 판매하는 업체를 찾는 일에만 수개월이 걸렸다고. 어렵게 찾은 만큼 업체 사장님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작가는 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이해심 갖기’라고 말한다.
“업체 사장님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다 있으세요. 제가 MBTI가 ‘I’로 시작하는 내향적인 사람인데 다행히 직장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사회화가 되었거든요. 또 저도 제작자이기 때문에 제조업 계열의 사장님들 고충도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업체 사장님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실수할 때도 분명 있을 거고요. 그런 부분들은 서로가 대화하면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더라고요. 창작자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인성도 성숙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고 봐요.”
Q-Bang |
Q |
2016년에 제작한 규방(Q-Bang) 연작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군이다. 과거 조선시대 여성만이 사용한 공간 ‘규방’의 존재를 발견하고서 작가는 이곳에 놓인 가구의 형태를 차용해 새롭게 재해석했다. 의아하게도 규방에서 사용한 가구에는 이를 사용하는 여성의 의지는 깃들어 있지 않다. 유교 사회 속 철저한 남녀의 역할 구별로 여성의 취향에는 제약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을 포착했다. 가구에 벽을 덜어냈고, 이를 통해 사회가 만든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
White Nostalgia |
W |
연작 <화이트 노스탤지어>는 사회적 인식이나 시선보다는 개인의 경험을 조명한 작업이다. 이전의 규방 연작이 벽을 제거하고 뼈대만 남긴 채 화려한 장식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반투명 아크릴을 사용해 사방이 막힌 형태를 만들었다. 작가가 반투명 아크릴을 사용한 건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을 때의 흐릿한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한편, 김현희 작가의 작품은 늘 제목도 눈여겨봐야 한다. 제목에서부터 노스탤지어를 강조한 건 작가의 감정과도 관계가 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지내온 작가는 정착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 이방인의 감정을 느끼곤 했다고. 이는 곧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작품화를 시도했다. 노스탤지어, 그러니까 향수(鄕愁)는 우리에게 내재 과거지향적인 본능인 셈인데 작가는 그 앞에 ‘흰색’을 더해 순기능을 부여했다. 작가는 이러한 ‘화이트 노스탤지어’가 전통 가구에 접목되었을 때 어떤 시적 이미지가 연출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고.
[Creator+]는 Design+의 스페셜 시리즈입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에 크리에이터의 일과 삶의 경로, 태도와 방식을 더해 소개합니다. 인물을 조명하는 1편과 프로젝트를 A to Z로 풀어내는 2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주로 발행됩니다. [Creator+]는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한 ‘오!크리에이터’를 잇는 두 번째 크리에이터 기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