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회화, 사진으로 만든 현대판 십장생도의 모습은?

<Good Luck: 십장생>전

사진, 회화, 조각을 아울러 탄생한 십장생도는 어떤 모습일까? 유현미 작가가 해석한 새로운 십장생도를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조각, 회화, 사진으로 만든 현대판 십장생도의 모습은?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에서 유현미 작가가 재해석한 2024년의 십장생(十長生)도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Good Luck: 십장생>으로 예로부터 불로장생을 표상하는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 등 열 가지 상징물을 작가만의 시선과 방식으로 표현했다. 특히 조각, 회화, 사진 세 가지 매체를 오가며 한 작품을 완성하는 유현미 작가의 독특한 작업 과정과 그 안에 담긴 고민을 살펴볼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 7월 19일부터 오는 10월 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업에 사용하는 오브제이자 조각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점도 눈길을 끈다.

《Good Luck: 십장생》 전시장 전경, 김희선 촬영, 뮤지엄한미 제공
《Good Luck: 십장생》 전시장 전경, 김희선 촬영, 뮤지엄한미 제공


전통과 현대의 조우

〈달 밝은 밤〉, 2024, Oil paint and inkjet print on canvas, 162×112cm, ⓒ유현미

‘그림 같은 사진’, ‘사진 같은 그림’. 두 매체가 서로를 흠모하는 듯한 말은 유현미 작가가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작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그림, 사진에 조각이라는 매체를 더했다. 세 가지 매체를 오가며 한 작품이 완성되는데 먼저 여러 형상의 오브제를 만든다. 이를 무대미술처럼 쌓아 올려 조각을 만들고, 이를 설치한 공간에 채색을 더해 빛과 그림자를 부여한다. 입체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공간을 작가는 사진으로 담아낸다. 캔버스 위에 사진을 프린트하고서 다시 유화 물감을 그 위에 더해 칠한다. 이처럼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작동한 뒤에야 비로소 한 작품이 완성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십장생> 연작의 신작 15점과 함께 작품에 담긴 조각을 공간에 함께 설치했다. 작품 속에 숨겨진 제작 과정의 일부를 드러낸 것. 그간 작가만이 알 수 있던 조각, 설치, 사진, 회화를 오가는 특유의 제작 방식을 관객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No.1〉, 2024, Oil paint and inkjet print on canvas, 194×130cm ⓒ유현미

한편, 이번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행운과 안녕(安寧)을 상징하는 십장생을 오브제로 표현했다. 주목할 점은 전통적인 도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브제들이 현시대에 걸맞게 작가의 재해석을 통해 달리 치환된다는 점이다. 종이학으로 대체된 학과 물을 대신해 표현한 물병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모래시계, 지구본 등 전통적인 십장생의 상징물을 대체하는 오브제도 눈길을 끈다. 작품 안에서 작가는 이를 펼쳐 보이기보다는 쌓아두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불로장생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상징물들을 위태롭게 쌓아둔 이유는 무엇일까? ‘쌓기’라는 불안정한 조형적 선택을 한 이유는 작가가 불로장생에 대한 희망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시선과도 맞닿아 있다.

반면 유현미 작가가 전통적인 십장생 소재의 특징을 일관되게 유지한 부분도 있다. 바로 색상이다. 화려한 장식적 색채를 적용한 전통적인 십장생도처럼 작가는 오브제를 다채로운 색으로 채색했다. 이처럼 과거와 현대를 조우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을 파악하고 작품을 살펴보며 전시를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쫓아서

《Good Luck: 십장생》 전시장 전경, 김희선 촬영, 뮤지엄한미 제공

유현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 <십장생> 연작을 위해 전시장 일부를 조각 작품 설치를 위한 무대로 사용해 눈길을 끈다. 마치 하나의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공간은 조각과 사진 그리고 회화로 흘러가는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에 일시 정지(Pause)를 걸어둔 듯한 모습이다. 입체의 조각 더미 옆으로 설치된 작품들은 일시 정지된 모습을 작가가 사진으로 찍고 프린트해 다시 유화로 입체감을 더한 결과물이다. 이처럼 복합적인 장르의 결합은 궁극적인 ‘아름다움’에 다가가기 위한 작가의 실험적 태도를 보여준다.

한편 조각, 사진, 회화 이외에도 유현미 작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 소설, 콘티, 시나리오 작성도 해왔는데 이후 문학 장르가 작업의 태동이 되거나 혹은 작업 과정에 반영된 작품도 다수 제작해 왔다. 2022년 출간한 소설 <적(敵)>을 기반해 제작한 동명의 연작 <적(敵>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2009년 작 ‘그림이 된 남자’처럼 작가는 자신의 작품 제작 과정을 매개로 또 다른 영상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퍼포먼스를 결합해 새로운 회화 작품을 만드는 등 장르와 작업 순서에 국한되어 있지 않은 작품 행보는 유현미 작가의 다음 작품이 무엇일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마침, 이번 전시 기간에는 작가의 작업 방식을 탐구하고 재해석해 각자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관객 참여형 워크숍 프로그램이 8월 24일과 9월 7일 이틀간 진행된다. 작가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아름다움’이 궁금하다면 함께 살펴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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