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하우스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설의 아이코닉 컬렉션 7
지금 패션계의 이목은 패션 하우스 샤넬에 집중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의 사임 소식 후 과연 누가 샤넬의 새로운 수장이 될 지가 요즘 최대 화두다. 자수 파트 인턴으로 입사해 칼 라거펠트의 오른팔 자리를 거친 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기까지, 버지니 비아르는 30년 넘게 샤넬에 몸담았다. 샤넬 하우스는 브랜드의 방향성을 새롭게 다지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그와의 이별을 공식화했다.
샤넬을 비롯해 100년 안팎의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들이 늘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세대교체는 어느새 숙명의 과제가 되었다. 사람 하나 잘 들여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도 하고, 반대로 사람 하나 때문에 예상치 못한 하락세로 접어들기도 하는 등 21세기 럭셔리 패션 비즈니스의 흥망성쇠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우스의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동시에 시대에 걸맞은 디자인과 마케팅, 매출까지 총괄해야 하는 왕관의 무게만큼이나 그 권한과 영향력도 날로 커지는 추세다.
이런 흐름은 패션계의 인사이동 구조도 바꿔 놓았다. 하우스는 변화를 꾀할 때 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교체카드를 꺼내 드는데, 이는 거대한 인사이동으로 이어지며 패션계 전반의 분위기를 뒤흔든다. 무명의 디자이너를 발굴하지 않는 이상 한 명이 자리를 옮기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식의 이동은 필연의 법칙이므로. 그 교체주기가 너무 짧고 잦은 데다 서로 돌고도는 구조를 빗대어 ‘회전문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성과에 따라 입지가 달라지는 냉혹한 패션계의 생리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더불어 오늘도 빠르게 도는 그 회전문을 타고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다시 돌아온다.
때로는 그 예측불가한 인사이동이 패션 신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톰 포드와 알레산드로 미켈레 덕분에 두번이나 기사회생한 구찌처럼, 오래된 하우스는 새로운 수장 영입으로 반등을 노린다. 다음 챕터를 준비하는 샤넬 하우스에도 분분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과연 비아르라는 든든한 안전망을 잃은 것일까 혹은 잔잔한 호수 위의 파문이 드디어 시작된 것일까? 기대와 우려는 늘 함께하기 마련이다.
과거에도 아쉬운 헤어짐은 무수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영원한 건 없으니까. 당대를 호령했던 패션 하우스와 디자이너의 근사한 조합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천재적 예술품 같았던 존 갈리아노의 디올, 관능으로 물들었던 톰 포드의 구찌, 웅장하고 재기 발랄했던 칼 라거펠트의 샤넬, 쿨하기 그지없던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 런웨이에 드라마를 써 내려간 마크 제이콥스의 루이비통 등등. 함께했기에 위대했던 그들의 컬렉션은 패션사에 소중한 업적을 남겼고, 아직도 뜨거운 영감을 안긴다. 샤넬의 새출발이 쏘아 올린 작은 그리움 덕분에 다시 꺼내 보았다. 잊지 못할 아이코닉 컬렉션, 그 화양연화 패션 신.
그 패션 하우스, 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올 X 존 갈리아노, 1998 SS 오트 쿠튀르
천재 혹은 악동으로 불렸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는 1996년 디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후 15년간 애칭에 걸맞은 행보를 이어갔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럭셔리 하우스인 디올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최초의 영국 디자이너라는 메시지처럼 디올의 유산인 뉴룩 실루엣을 누구보다 혁신적이고 모던하게 계승한 인물이었다. 2011년 반유대주의적 발언으로 해임되는 불명예를 얻었지만 그의 천재적인 컬렉션만큼은 디올의 부흥기를 반짝반짝 빛냈다.
특히 그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지금까지도 많은 찬사를 받는다. 아름다움에 치중했던 20세기 복식사와 의복의 개념에 더 충실한 21세기 복식사를 잇는 아슬한 경계에서 그는 늘 예술적 경지를 펼쳐냈다. 그 중에서도 1998 봄, 여름 컬렉션은 쿠튀르 쇼에 길이남을 장면과 감동을 안겼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계단을 타고 펼쳐진 환상적인 무도회 테마 컬렉션은 디올의 레이디라이크 무드를 존 갈리아노만의 아방가르드 실루엣과 빛으로 녹인 최고의 순간으로 꼽힌다.
구찌 X 톰 포드, 1996 FW 컬렉션
1921년 피렌체에서 시작된 구찌 하우스의 운명은 톰 포드를 만나지 않았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구찌 가문이 아닌 첫 번째 외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톰 포드는 몰락의 구찌를 살려낸 미다스의 손이었다. 1994년 구찌에 영입된 후 변방에 있던 이탈리아 브랜드를 패션 중심부로 단숨에 옮겨 놓았고, 막대한 재정적 이익까지 창출하며 구찌의 황금기를 열었다. 단순한 디자이너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창의성을 발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책도 톰 포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톰 포드의 세 번째 구찌 쇼였던 1996 가을, 겨울 컬렉션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가장 힙했던 클럽 ‘스튜디오 54’를 드나들며 영감 받았던 그는 관능적인 디자인으로 90년대 섹슈얼의 포문을 열었다. 군더더기 없는 매끈한 실루엣과 과감한 커팅, 번쩍이는 소재와 완벽한 테일러링이 낳은 톰 포드식 미감은 현대적인 동시에 미래적인 관능미로 추앙받았다.
셀린느 X 피비 파일로, 2010 SS 컬렉션
올드 셀린느 시절을 장미빛으로 물들인 피비 파일로. 현대 여성상을 새롭게 제시한 셀린느만의 미학으로 전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전설의 이름이다. 간결함을 기반으로 한 황금비율, 뉴트럴 톤의 차분하고 우아한 톤 앤 매너, 극도로 절제된 세련미까지! 셀린느를 워너비 브랜드 1위로 등극시킨 그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셀린느는 물론 패션 신에도 다시없을 말간 고혹미를 흩뿌렸다.
특히 그의 첫 셀린느 컬렉션이었던 2010 봄, 여름 컬렉션은 지금 봐도 경탄을 부른다. 15년 전 컬렉션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세련된 착장들은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절제미의 기준점으로 손꼽힌다. 첫 쇼부터 소위 대박을 터트린 피비는 그후로도 러기지백, 튜닉셔츠, 더블칼라 트렌치코트, 퍼 버켄스탁, 플리츠 스커트 등등 히트 아이템을 끊임없이 양산하며 미니멀 시크의 본좌로 군림했다. 동시에 올드 셀린느 시절 아이템들은 지금까지도 리세일 마켓에서 최고가의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질 샌더 X 라프 시몬스, 2011 SS 컬렉션
쇼가 시작되고 흰색 무지 티셔츠에 봉긋한 페플럼 실루엣의 맥시스커트를 입은 모델들이 좁은 런웨이를 총총 걸었다. 갤러리에 꾸민 작은 쇼장 곳곳에서 거짓말 같은 환성이 터져 나왔다. 그 현장에 있었던 건 패션 에디터로서 정말이지 영광이었다. 평범한 티셔츠를 예술품으로 탈바꿈하며 새롭고 강렬한 미니멀리즘 룩을 제시한 라프 시몬스의 질 샌더 컬렉션은 패션위크 내내 국내외 패션기사 1면을 도배할 만큼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라프 시몬스도 그날 이후 톱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서게 되었다(이후 2012년 디올, 2016년 캘빈 클라인, 2020년 프라다의 수장으로 발탁되며 승승장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루이비통 X 마크 제이콥스, 2011 SS 컬렉션
화제성, 창의성, 상업성, 예술성, 이 모든 걸 다 갖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부터 2014년까지 루이비통을 총괄한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그걸 해냈다. 본분인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은 물론 잇백의 계보를 탄생시킨 협업의 귀재이자 셀러브리티들의 연인, 무대 위 스토리텔러까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다재다능함으로 루이비통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그 중에서 제일은 그가 선보인 쇼였다. 회전목마, 기차, 시계탑, 에스컬레이터, 분수 등 매 시즌 꿈과 환상의 나라로 안내한 루이비통 런웨이는 21세기 패션사에 인상깊은 드라마를 남겼다. 거대한 무대장치를 비롯해 세심하게 공들인 헤어와 메이크업 연출, 의상에 어우러진 주얼리와 가방, 신발까지 그 시절 마크 제이콥스 덕분에 쇼의 위상도 덩달아 높아졌다. 특히 아시안 무드를 세련되게 재해석한 2011 봄, 여름 루이비통 컬렉션은 완벽한 조화로움으로 아름다움을 떨쳤다.
지방시 X 리카르도 티시, 2011 FW 컬렉션
1995년 하우스의 본주인 위베르 드 지방시가 은퇴한 후 지방시의 정체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줄리앙 맥도날드까지 새롭게 영입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성과 없이 줄줄이 퇴장하면서 지방시 하우스는 한때 위태로운 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2005년 혜성처럼 나타난 리카르도 티시 덕분에 재기에 성공했다. 당시 무명의 디자이너였던 그는 오직 실력으로 승부하며 자신은 물론 지방시의 위상을 한껏 드높였다.
리카르도 티시는 이름만큼이나 참신한 디자인으로 당대 트렌드를 호령했다. 고딕 무드를 시그니처로 활용한 컬렉션들은 구조적인 실루엣과 위트 넘치는 디테일의 이상적인 균형을 보여주었다. 그 중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2011 가을, 겨울 컬렉션이다. 리카르도 티시의 장기인 아트워크를 살린 기하학적인 프린트들과 시스루 소재, 쿨한 실루엣이 버무려진 컬렉션은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을 잇는 좋은 본보기로 아직까지도 회자된다.
샤넬 X 칼 라거펠트, 2019 SS 컬렉션
21세기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단 한 명만 꼽으라면 칼 라거펠트를 선택하겠다. 1984년 샤넬에 영입된 후 2019년 숨을 거두기까지 무려 35년 동안 샤넬을 진두지휘했다. 샤넬 하우스가 지금까지도 최고의 명성을 누릴 수 있는 건 칼 라거펠트의 영민함 덕분이다. 웅장한 쇼로 하우스의 권위를 드러내고, 타임리스 아이콘을 앰버서더로 활용해 연령층을 넓혀갔다. 그러면서도 컬렉션만큼은 고전미를 잃지 않았다. 트위드, 진주, 꽃, 블랙, 롱앤린 실루엣 등등 가브리엘 샤넬이 남긴 독보적인 유산을 잘 사수한 그는 누구보다 충실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수많은 멋진 컬렉션 중에서도 2019 봄, 여름 컬렉션을 다시 보고 싶었던 이유는 딱 하나, 너무 예쁜 쇼 피스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해변으로 변신한 파리 그랑팔레를 유유자적 걷던 모델들은 확 젊어진 의상들로 샤넬의 변화를 환기했다. 트위드 재킷에 매치된 바이크 쇼츠, 블랙 앤 화이트를 녹인 민트, 레몬, 핑크의 셔벗 컬러 팔레트, 크롭 실루엣과 로고 플레이 등등 이 컬렉션을 시점으로 샤넬은 놀라울 만큼 힙해졌다. 샤넬은 안주하지 않았다. 단단함과 유연함을 다 가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와 함께 늘 앞으로 나아갔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가 남긴 희망적인 메시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