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디자인은 없다, 폴 바셋 매장 인테리어의 비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폴 바셋은 전국에 200여 개의 매장이 있다. 이 매장들의 특징은 상권이나 주요 고객층, 공간 컨디션에 모두 개별적으로 디자인되었다는 점이다.
최근 경주에서 인상적인 한옥 카페를 발견했다. 차가 건물을 돌아 나가는 드라이브스루 매장임에도, 안에서는 차의 동선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간 디자인은 익숙하면서도 조금 낯설었다. 지난 4월에 오픈한 폴 바셋 경주 교동 DT점이다. 폴 바셋은 2009년 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00여 개의 매장을 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이다. ‘품질과 타협하지 않는다’를 브랜드 모토로, 전 세계 상위 7%의 스페셜티 등급의 생두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커피에 대한 이러한 철학은 브랜드의 운영과도 이어진다. 모든 매장은 직영 체제로 이루어지며 인테리어 또한 상권과 지역의 분위기를 반영해 디자인한다. 항상 새로운 공간 디자인으로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 나가는 이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엠즈씨드 디자인팀의 박은희 팀장을 만나 폴 바셋의 공간 디자인, 매장 인테리어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Interview
박은희 엠즈씨드 디자인팀 팀장
폴 바셋은 매일홀딩스(매일유업 지주사)의 자회사인 엠즈씨드가 전개하는 브랜드이다. 엠즈씨드 디자인팀은 폴 바셋 브랜드 비주얼 전반에 관한 업무를 담당한다. 온오프라인 홍보물 중심의 그래픽 디자인, VMD, 매장 인테리어, 크게 세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박은희 팀장은 건축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다 폴 바셋 3호점이 공사 중이던 2011년 입사했다. 브랜딩과 마케팅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잠시 떠났던 중간의 공백 기간을 제외하고도 약 140여 개의 폴 바셋 매장 인테리어 현장을 함께했다.
정성스럽게 내린 한 잔의 커피처럼
‘폴 바셋’하면 떠오르는 컬러가 있어요. 블랙, 다크브라운, 그리고 심볼인 왕관(Crown)의 컬러이기도 한 빨간색이죠.
브랜드 컬러인 블랙을 다양한 수법으로 매장 인테리어에 표현해 왔어요. 단순히 마감재를 블랙 도장으로 하기보다는 구로 철판처럼 본연의 색상이 블랙인 질감 있는 마감재를 사용하는 식이죠. 브랜드 초창기에는 블랙 벽체와 프레임, 붉은 벽돌, 목재가 주요 마감재였고, 그중 블랙을 중심으로 디자인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후에는 시장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컬러를 사용하거나 액자나 오브제 등을 활용하여 벽면의 디자인을 만들어가는 형태로 발전되어 왔어요.
매장 인테리어는 1호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함께해온 해외 파트너사가 있다고 들었어요. 공간 디자인에 대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있나요?
가이드라인이나 디자인 매뉴얼은 없어요.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어느 하나 같은 디자인이 없죠. 모든 매장은 개별 디자인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상권이나 주요 고객층에 따라, 매장의 공간 컨디션에 따라 달라요. 사실 모든 매장을 개별디자인으로 진행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폴 바셋 브랜드의 차별성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커피를 진지하게 마주해 온 브랜드인 만큼, 공간에도 그러한 고집을 두고 있어요. 바리스타가 한 잔 한 잔 정성스럽게 내리는 커피처럼, 한 점포 한 점포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나가는 것을 지향하고 있어요.
드라이브스루를 품은 경주 한옥 카페
지난 4월 ‘경주 교동 DT점’이 오픈했어요. 경주에 오픈한 첫 매장이고, 한옥 드라이브스루(Drive-Thru) 매장입니다. 지역과 브랜드의 특색을 어떻게 공간에 담았나요?
경주 교동 DT점은 한옥을 구성하는 주요 마감재인 목재와 회반죽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컬러 스킴에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마감재를 더해 한옥과 어우러지면서도 브랜드의 고유한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디스플레이 선반, 벤치 시트 등 가구 디테일에는 전통 문양인 팔각을 폴 바셋답게, 모던하게 풀어냈어요. 주변의 녹음을 안으로 들이기 위해 ‘ㄷ’자 구조로 중정을 구성하고 테라스 공간에 좌석을 배치했어요. 전체적으로 한국적인 감성이 저해되지 않는 선에서 절제하며 디자인하고자 해외파트너사와 많은 이야기 나눴어요. 다 덜어내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자,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했죠. 경주에서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물은 경관심의 대상이에요. 색채 및 재료 등이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준 안에서 하나하나 맞춰 나갔어요.
전통을 더하는 설정으로 팔각을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국의 전통적인 디자인 요소를 고민하다가 팔각정이 떠올랐어요. 우리 주변엔 팔각과 관련된 문화 흔적이 많아요. 이 팔각 문양을 모티프로 전체적인 구성을 짰고, 주출입구 웰컴 라운지의 달항아리가 놓인 팔각형 디스플레이 공간에서부터 외부 중정의 팔각형 벤치와 내부의 팔각형 좌석에 이르기까지, 팔각이 크레센도로 확장되는 구조예요. 웰컴 라운지와 중정, 내부 객석 공간을 팔각이라는 디자인 요소로 연결하는 것이 포인트였어요.
툇마루 같은 좌식 공간도 독특해요.
공간을 구성하다 보니 카운터 옆 공간이 애매하게 남더군요. 카운터 옆 공간을 색다르게 만들어볼까 고민하다가 나온 구성이에요. 사실 좌식 테이블은 운영 면에서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관리가 쉽지 않고 신발을 벗고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죠. 하지만 좌식 형태로 구성하면 좋겠다고 강력하게 요청했어요. (웃음) 한옥의 툇마루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거든요. 여기가 생각보다 인기가 많아요. 창문 밖으로 왕릉과 꽃밭이 시원스럽게 보여서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도 많아요.
사실 경주 교동 DT점 때문에 폴 바셋의 공간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요. 이곳은 드라이브스루 매장이지만 일반 매장 같아요.
DT점을 오픈할 때는 디자인팀이 건축주(임대인)와 건축 단계부터 의견을 주고받아요. 물론 그 의견이 100% 수용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웃음) 보통 드라이브스루 같은 경우 차량의 이동 동선이 보이게 되어 있죠. 폴 바셋 경주 교동 DT점은 주변에 왕릉과 경주시에서 사계절 꽃밭으로 조성한 넓은 부지가 있어요. 그 뷰를 확보하고, 고객의 시선을 배려하고 싶어서 드라이브스루 레인을 슬로프로 구성했고 차량의 이동 동선을 밑으로 내려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어요. 그런 부분이 DT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로드 숍처럼 보이게 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전면을 통창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디자인할 때 외부 고객과 내부 고객의 소통 면에서 창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외부 고객은 밖에서 내부 환경을 볼 수 있고, 내부 고객은 안에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내외부를 연결하는 소재로 유리를 활용한 것이죠. 한옥임에도 층고가 높은 편인데, 층고가 낮으면 답답할 수 있거든요. 높은 층고에 시원스러운 통창으로 개방감을 높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매장마다 넘버 사인이 있네요. 어떤 의미인가요?
맞아요. 개인적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매장마다 해당 매장의 오픈 순서를 알 수 있는 넘버 사인이 있어요. 매장 컨셉에 따라 디자인도 다 달라요. 폴 바셋 브랜드 매장 디자인의 자랑 중 하나입니다. (웃음) 숨기는 요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노출하지도 않는, 숨은그림찾기처럼 발견하면 즐거운 것들이죠. 방문하시는 매장마다 몇 호점인지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이곳에서 팀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좌석과 시간대가 궁금해요.
저는 사실 슬로프로 확보한 이 창가 자리를 좋아해요. 이곳에 앉으면 바깥에 있는 왕릉 주변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모습, 사람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보이거든요. 행복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처럼 그런 감정들이 안에 있는 저에게도 전달돼요. 시간대는 오전이요. 9시에서 10시 정도일 것 같아요. 햇볕이 직접 내부를 비추지 않아 덥지 않으면서도 내리쬐는 햇살의 신선한 느낌이 있어서 여유로운 오전 시간대가 좋아요.
취향에 맞춰 찾아가는 200여 개의 선택지
200호인 ‘부산 금곡 강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2009년 1호점을 시작해 15년이 지나 맞이한 200호는 조금 특별한 숫자 같거든요.
다른 프랜차이즈에 비하면 느린 편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매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인다는 면에서는 꽤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해요.
부산 금곡 강변점은 DI(Drive-In)점으로 1층은 전용 주차장이고, 2층에 매장이 있어요. 여기는 넓게 펼쳐진 낙동강의 멋진 뷰를 공간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이 미션이었어요. 입지의 최대 장점인 낙동강을 주역으로, 자연이 주는 스케일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 밸런스를 잡았어요. 카운터 벽 쪽을 제외하고 삼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죠. 벽면은 낙동강을 바라보며 상쾌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밝은 톤의 스트라이프 타일 패턴으로 디자인했고, 천장은 어두운 컬러로 시선이 분산되지 않게 했어요. 외부 경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내부 디자인은 최대한 힘을 뺐어요. 이곳의 특징 중 하나는 테라스 공간이에요. 폴딩 도어를 열면 내부와 외부가 개방감 있게 연결되거든요. 커피 한잔하며 ‘물멍’하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DT점과 일반 매장은 디자인의 접근이 다를까요?
DT점은 100평 이상의 대형 점포이고 대부분 교외에 위치해 있어요.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보다 역동적인 공간 구성을 시도할 수 있어요. 1층의 경우 드라이브스루로 이용하시는 분들의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 별도의 DT 픽업 존과 메인 카운터를 구성하고 있고, 2층은 여유롭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편안한 가구들로 공간을 연출하고 있어요.
팀장님이 공간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단지 디자인이 멋있기만 한 것이 아닌 고객이 요구하는 ‘아, 좋다’라고 생각되는 장소가 되는 것. 공간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두 매장 외에 인테리어와 관련해 소개하고 싶은 매장이 있다면요?
한남 커피스테이션점이요.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5층 규모로 2015년도에 오픈한 폴 바셋 59호점입니다. 한남점이 오픈한지도 10년이 되어 가네요. 한남점은 폴 바셋의 철학과 가치, 모든 것을 담기 위해 노력했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15년 6월에 오픈했어요. 매장을 오픈한 그날은 마치 축제 같았어요. 서로 격려하고 축하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죠. 10년 여의 시간이 지나며 각 층의 용도나 디자인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여전히 2층에는 브랜드의 핵심인 커피를 다루는 로스팅 팩토리가 있고, 브랜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디자인 요소들이 많아요. 브랜드의 에센스가 담긴 장소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마음을 많이 쏟은 매장이라 소개하고 싶어요.
경주 교동 DT점이나 부산 금곡 강변점 같은 새로운 매장도 계속 생길 것이고, 기존 오래된 매장은 또 새롭게 리뉴얼 될 텐데요. 폴 바셋 매장을 찾는 분들이 그곳에서 어떤 것들을 느꼈으면 하나요?
지역과 매장에 따라 다른 디자인과 공간의 차이를 즐기면서 마음에 드는 장소를 꼭 발견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으로 더 다양한 지역으로 확산하기를 기대하고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