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라이프스타일 페어링하기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 심준섭
F&B와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해 독창적인 공간을 기획하는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의 CEO 심준섭을 만나 인터뷰 했다.
트렌드와 럭셔리의 상징인 서울 논현동. 이곳의 한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서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셜 미디어상에서 급부상한 힙한 공간들을 만날 수 있다. 한 건물 1층과 지하 1층에 사이좋게 들어선 그로서리 스토어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와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와인 바 ‘오프닝’은 모두 F&B와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해 독창적인 공간을 기획하는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의 작품이다. 심준섭 대표는 두 곳 모두 오픈 직후 강남의 핫 플레이스로 등극시키며 창업 1년 만에 뛰어난 기획력을 보여주고 있다.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에서는 누구나 간편하게 와인을 구입할 수 있도록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오프닝은 고급스러운 공간 디자인과 빈티지 조명 및 가구, 음향 장비 등을 앞세워 와인 애호가는 물론 많은 트렌드세터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곳에서 와인과 미술품, 공간 디자인, 가구, 음식 등을 보고 있자면 절묘한 페어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13년가량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F&B업계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패션업계에서 오래 일했지만 평소 음식과 주류 분야에 관심이 많아 사업을 하게 된다면 F&B업계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는 프리마돈나 머츄어 치즈나 푸실리·오레키에테 같은 파스타 면처럼 일반 슈퍼나 마트에서 구하기 어려운 해외 식료품을 국내에 소개하겠다는 의도에서 기획했다. 오프닝은 목적이 달랐다. 평소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것을 보며 와인 바에 미술관 기능을 더한다면 차별화될 것이라 판단했다. 오프닝은 ‘작품을 감상하며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와인 바’라는 콘셉트로 출발했다.
무신사에서 일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브랜드 기획 과정에 반영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
퇴사 직전까지 한 일이 IT 서비스 기획 업무였기 때문에 두 공간을 준비할 때도 IT 서비스를 활용했다. 와인은 한국에서는 아직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은 영역이라 원하는 와인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 서비스를 개발했다.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에서는 ‘와인 파인더’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와인 쇼카드의 QR코드를 스캔하면 와인 파인더가 가격과 품종, 산도, 당도, 탄닌 등에 관한 정보를 보여준다. 맛도 미리 짐작할 수 있도록 짧게 설명해놓았다. 오프닝에서는 필요한 와인을 빠르게 찾을 수 있는 ‘오프닝 와인 메뉴판’을 사용한다. 기능은 와인 파인더와 유사한데, 고객이 품종과 보디감, 당도, 가격 등을 설정하면 그에 맞는 와인을 골라준다.
와인 파인더와 오프닝 와인 메뉴판 모두 온라인 쇼핑몰의 기능을 차용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용자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 적합한 제품을 추천하는 것은 온라인 쇼핑몰의 기본이자 핵심 기능이다. 이 시스템을 F&B 분야에 도입하면 매장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와인 파인더가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도 원하는 품목을 쉽게 확인해 구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라면, 와인 필터는 전문 소믈리에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였다. 오프닝에는 와인 필터 외에도 직원들의 불필요한 이동을 최소화하고자 주문 내역이 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주방으로 접수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효율적으로 일하며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와 오프닝은 같은 곳에서 기획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콘셉트가 극명하게 다르다.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는 편하게 찾아와 식료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매장 디자인에는 시선을 끌 수 있도록 레드 컬러를 사용했다. 매장 내 모든 집기는 이케아 가구를 사용했다. 범용성이 높은 이케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의 콘셉트와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프닝은 정반대다. 와인 애호가라면 더욱 만족할 만한 프리미엄 와인 바를 지향한다. 가구부터 조명, 음향 장비에 이르기까지 고급 빈티지 제품으로 엄선해 배치했다.
두 곳의 콘셉트가 명확히 다른 만큼 와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 보인다.
오프닝이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에 비해 더 학구적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실제로 와인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지만, 와인 바의 특성상 어느 정도 자신만의 취향과 식견이 있는 고객들이 주로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문 소믈리에와도 와인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 그에 비해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는 누구든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와인도 쉽게 마실 수 있는 술로 판매하길 바랐다. 와인은 깊이 공부한 뒤 마셔야만 가치가 있는 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와인은 편하게 마시든, 알아가면서 마시든 상관없이 좋은 술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태도가 두 공간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오프닝은 갤러리 역할도 수행하는 만큼 공간 디자인상에서도 이를 위한 고민이 있었을 듯하다.
공간 디자인을 담당한 바이석비석에 채도 높은 자재나 독특한 디자인은 피해달라고 요청했다. 전시한 미술 작품이 돋보이게 하려면 공간이 컨셉추얼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마감재를 사용해 디테일에 집중했다. 완성된 공간에는 작품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 고민했다. 작품 배치로 전시의 흐름을 만들고 싶었다. 예를 들어 정문에는 강렬한 인상을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걸고, 복도에는 고객이 지나가는 중에도 지루하지 않도록 통일된 디자인의 두 작품을 나란히 배치하는 등 동선에 따라 적절한 분위기를 연출할 작품을 골랐다. 이런 고민을 거쳐 도윤희, 김종학, 박서보 등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 중이다.
올해 3월에는 〈스프링 패러독스Spring Paradox〉라는 전시도 열었다.
좋은 그림을 벽에 건다고 해서 모두 전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 세부 공간의 활용도에 맞춰 세심하게 작품을 선정했지만, 전 작품을 하나의 통일된 주제로 큐레이션해 동선을 구성한 것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었다. 박서보의 ‘묘법’, 도상봉의 ‘라일락’, 김종학의 ‘진달래’ 등 봄을 연상시키는 작품 14점을 모아 전시했는데, 봄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해서 작가가 산뜻한 계절감을 의도한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이번 전시명을 떠올리게 되었다.
오프닝과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에서 디자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상 브랜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오프닝의 와인과 테이스트앤드테이스트의 식료품 모두 다른 매장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제품을 고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제품 큐레이션과 콘셉트 기획, 사용자 경험 설계와 시각화 전략 등을 거쳐 브랜드를 선보임으로써 오래도록 고객의 기억에 남을 수 있고, 그것이 다른 F&B 브랜드나 와인 바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