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스 프로그램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센터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스 프로그램'은 구성원 개인의 창의성과 동기 부여를 유지시키는 선행 디자인 프로그램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아모레퍼시픽이 크리에이티브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을 알아본다.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성장시키는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스 프로그램
조직 혁신 이론 전문가인 테리사 애머빌Teresa Amabile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에 따르면, 창의성은 전문 지식과 창의적 사고 능력, 동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동기는 승진, 상여금 등의 외적 동기와 개인의 열정과 흥미에 해당하는 내적 동기로 나뉘는데, 그중 내적 동기가 창의성에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조직에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직원이 많아도 개인의 흥미와 창의성이 꾸준히 유지되지 않는다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이는 경직된 기업 문화를 지닌 한국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2018년부터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센터에서 시행 중인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스 프로그램(이하 CP 프로그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관련된 것이라면 센터 구성원 중 누구라도, 무엇이든,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발의하고 진행하는 선행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식 또한 자율에 맡긴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허용하는 것을 넘어 회사 차원에서 적극 장려하는 것은 분명 특기할 만한 일. CP 프로그램은 팀원이 스스로 주제를 발제해 진행하는 방식과 타 부서에서 요청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진행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후자의 경우, 부서 간 협업을 통해 센터 구성원들의 역량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자의 경우 화장품 개발 관련 업무를 넘어 다방면으로 프로젝트가 전개되는데, 이는 개인의 창작 욕구를 해소하는 동시에 신사업을 위한 베타 테스트이자 디자이너들의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CP 프로그램 차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는 업사이클링 디자인 사례가 적지 않은데,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 구성원으로서 제품의 수명 주기 전반을 관리하며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려는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접점 중 하나로 캐릭터 IP를 발전시켜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나서는 등 자사의 브랜드 헤리티지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또한 나타나고 있다. 허정원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센터장은 앞으로 “CP 프로그램을 브랜드와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가치를 뚜렷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터널 브랜딩과 사이드 프로젝트가 훌륭하게 융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센터에는 감각이 뛰어난 구성원이 많고, 그들은 제각기 다른 취향과 개성,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회사가 부여한 역할과 업무만으로 각자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여기서 발단이 되어 CP 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센터 구성원들이 디자인 개발뿐 아니라 제로 베이스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본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허정원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센터장
아모레퍼시픽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CP 프로젝트 6
팝업 전시 〈네버 스탑 플랜팅〉
지난해 식목일을 맞이해 아모레성수에서 진행한 전시. ‘Never Stop Planting, Live with City Plants’를 주제로 식물 애호가들과 함께 아가베, 코덱스 등 희귀 식물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식물의 매력을 강조하고자 전시장 곳곳에 대형 거울을 배치했다. 디자이너는 아모레성수의 공간 콘셉트에 부합하는 전시 집기를 디자인하기 위해 비계 파이프를 활용했으며, 전시를 위한 가드닝 굿즈도 개발했다.
‘오아시스’ 아이덴티티 디자인 시스템 구축
아모레퍼시픽 본사 6층에 위치한 오아시스를 위한 시각 시스템 리뉴얼 프로젝트. 상품 개발을 위한 다양한 참고 자료와 샘플을 아카이빙한 공간으로, 아이덴티티 가이드라인을 재설정하고 캐릭터 디자인을 리뉴얼해 직원들이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아카이빙 자료를 찾는 과정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행위에 비유해 심벌은 선인장꽃을 본떠 디자인했으며, 그래픽 패턴은 반짝이는 사막의 모래 알갱이와 선인장의 형태를 조합해 개발했다.
‘퍼즐우드’ F&B 굿즈 디자인 제안
아모레성수의 정원을 표현한 향 브랜드 ‘퍼즐우드’를 위한 굿즈 패키지 시안을 제안했다. 고객에게 브랜드를 직관적으로 경험시키는 방법으로 퍼즐우드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적용한 패키지 디자인의 초콜릿을 배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블랙, 다크 그린, 베이지 다크 브라운 등 자연을 상징하는 컬러들을 적용해 간접적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달하는 시안과 흰 배경에 로고를 삽입해 직접적으로 브랜드를 알리는 시안을 제작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인스타그래머블한 패키지 디자인을 구현하는데 주력했다.
생성형 AI를 활용한 〈유행화장〉 속 시대별 룩 재현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뷰티 메이크업 관련 자료를 아카이빙한 단행본 〈유행화장〉을 기반으로 과거의 뷰티 화보를 생성형 AI로 재현했다. 미드저니로 의상 디자인, 헤어 스타일링, 메이크업 등을 세세하게 프롬프트로 작성해 1차적으로 이미지를 생성한 뒤, 포토샵의 생성형 AI 기능인 ‘생성형 모양 채우기’로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조정하고 합성했다.
단편영화 〈출근하면 건네는 말, 안녕하세요〉
지난해 크리에이티브센터 소속 디자이너들이 직접 시나리오 작성부터 오디션 및 촬영, 프로덕션 디자인, 편집 등 제작 과정 전반에 참여해 약 15분 분량의 영화를 완성했다. 대기업 디자이너들의 애환과 고충을 다룬 이야기로, 실사 촬영 과정에서는 외주 제작사 ‘커즌스’와 협업했다. 또한 디자이너들이 손수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더해 인물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했다. 2023년 10월까지 총 9개의 영화제에 출품했고, 그중 근로복지공단이 주최하는 제44회 근로자문화예술제에서 영상 분야 은상을 수상했다.
플레이트 A를 활용한 친환경 디자인 개발 프로젝트
수거된 화장품 공병에 열과 압력을 가해 압축시켜 만든 업사이클링 판재 ‘플레이트 A’를 활용하기 위한 제품 개발 프로젝트. 화분 받침대를 비롯해 체스판, 젠가, 북엔드, 인센스 홀더 등 일상적인 생활 소품이자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지닌 친환경 디자인 제품을 개발했다. 실용성을 충족하면서도 업사이클링 과정에서 생기는 특유의 무늬가 유니크함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