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양분은 언제나 이야기, 씨드그린 브랜딩 프로젝트
현대적인 감성의 베이커리 카페 '씨드그린'이 올해 봄 문을 열었다. 씨드그린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과정을 브랜딩과 디자인 과정에서 살펴보았다.
소비자가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는 사실 의외로 단순하다. 깊은 공감을 일으키는 메시지와 ‘픽’ 하고 웃음이 나는 위트. 브랜드가 고도화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이 두 가지는 변함없는 진리다. 디자인 모멘텀의 씨드그린 브랜딩 프로젝트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이다. 현대적 감성의 베이커리 카페 씨드그린은 경기도 광주시의 수목원 ‘화담숲’ 내에 자리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화담채 개관에 맞춰 기존 푸드 코트를 탈바꿈해 문을 열었다.
이 변화의 뿌리에는 화담숲의 기존 고객층인 4060세대의 니즈를 충족시키면서도, 화담채로 새롭게 유입되는 젊은 세대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브랜딩을 총괄한 디자인 모멘텀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한 일은 브랜드 스토리를 설계하는 것이었다. 디자인 모멘텀은 이 과정을 정원사가 씨앗을 심기 전 땅을 고르는 작업에 비유했다. 이는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라’는 화담숲 설립자의 정신,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공간의 철학, ‘예술품의 새 근거지’라는 미래 비전을 엮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최신 카페 트렌드를 살피기보다 나무와 숲에 관한 도서·영화·전시·아트워크 등의 정보를 다양하게 습득했고, 적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소설가 김경민과도 협업했다.
황지아 디자인 모멘텀 대표는 “내부용 공유 자료도 한 문장, 한 문장을 고객에게 직접 전달한다는 마음으로 편집했다. 그럴수록 프로젝트의 이정표 또한 분명해졌다”라며 지난 과정을 반추했다. 디자인을 ‘의외의 요소들을 조화롭게 플레이팅하는 것’이라 말하는 이들의 철학은 공들여 정립한 메시지를 다양한 시각 요소로 풀어가는 데에서 빛을 발했다. “숲은 나무로부터 시작되고, 나무는 씨앗에서 시작됩니다”라는 공유 자료 속 첫 문장은 생태계의 순환을 떠올리게 하는 ‘씨드그린’이란 네이밍과, 포장 애플리케이션과 굿즈의 디자인 DNA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더불어 플라스틱 사용 최소화, 제작 종수 단순화 등 운영에 따른 매뉴얼에도 적용되었다. 한편 폭넓은 사용자층의 흥미를 아우르는 데에는 우화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이 제격이라 생각한 디자인 모멘텀은 숲의 정체성을 캐릭터화하기도 했다. 그 결과 탄생한 바게트를 든 다람쥐, 커피콩을 든 소나무 캐릭터는 씨드그린의 톤앤매너에 위트를 부여했다.
브랜딩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창작하고 이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관되게 전달하는 능력이 앞으로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을 의식한다면, 씨드그린 브랜딩 프로젝트의 접근법은 앞으로도 면밀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Interview with
황지아 디자인 모멘텀 대표
“우리는 고객 페르소나를 특정하지 않는다.”
소설가와 협업해 브랜드 스토리를 작성할 정도로 이 과제를 중요하게 다뤘다.
평소 클라이언트에게 브랜딩의 이유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고 강조한다. 브랜드 스토리는 단순한 마케팅 도구가 아니라 브랜드의 나침반이라고 본다. 시간이 가고 내부 구성원들이 바뀌어도 변함없는 브랜드의 초점이 된다. 이 과정이 굳건히 뿌리내리면 고객과의 소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디자인 모멘텀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일러스트레이션이 자주 등장한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떤 역할을 하나?
일러스트레이션은 브랜드 스토리를 굳이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마치 음악처럼 고객에게 들리게 한다. 말하다 보니 문득 깨달았는데, 이토록 일러스트레이션을 즐겨 활용하는 건 나의 아버지 황영성 화백의 영향인 것 같다. 아버지의 작품에는 추상화되었다고 해도 늘 우리네 풍경과 희로애락의 정서가 분명하게 존재했다. 일상성과 우리의 감정이 선과 색으로 표현되었고, 그 힘이 자연스럽게 느껴져 좋았다. 덕분에 나 역시 자연스럽게 회화적 요소를 브랜딩에 접목하게 된 것 같다.
‘감도 높은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의 나열’을 핵심 업무로 정의하는 디자인 모멘텀이 고객의 요구 사항을 파악하는 노하우가 궁금하다.
우리 자신이 고객이 되어보는 거다. 일을 진행하다 보면 클라이언트의 시선과 의견에 주목하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그럴수록 고객 관점으로 사고하는 시간을 꼭 가져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자주 고객이 되어봐야 한다. 많이 가보고, 사고, 먹고, 또 들어본다. 그렇게 하면 정답을 미리 정하고 그 근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중심에 둔 채로 질문하는 힘이 생긴다. 이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뭐가 빠져 있을까? 어떤 가치가 지속적으로 필요할까? 이렇게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면 고객이 원하는 걸 예상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질문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고객 페르소나를 특정하지 않는다. 나도 날마다 하고 싶은 게 바뀌는데, 페르소나가 원하는 것을 특정할 수 있다니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머릿속에 저장해 그들을 이렇게도 모아보고 저렇게도 모아보며 생각한다. 그 와중에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시대정신을 알고 지키는 것이다. 이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면밀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 우리의 디자인 방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