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역사를 중개하는 초현실부동산

‘부동산’, 움직이지 않는 재산을 무궁무진한 탐구와 사유의 세계로 확장하기 위해 초현실부동산은 오늘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기억과 역사를 중개하는 초현실부동산

‘초현실’과 ‘부동산’만큼 생소한 단어 조합이 또 있을까? 지극히 세속적인 필요와 욕망으로 점철된 부동산 생태계에서 현실을 넘어선 가치를 찾겠다고 선언한 초현실부동산은 2021년 6명의 전문가가 함께 설립한 유한책임회사다. 사이트앤페이지를 이끄는 공간 기획자 박성진을 필두로 건축가 이진오, 공인중개사 김준호, 도시계획가 박혜리, 에디터 윤솔희, 디자이너 방정인이 한뜻을 가지고 모였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화교 점포 주택.
1920년 소인이 찍힌 사진엽서 속 화교 점포 주택. 건물 정면의 창호를 제외하면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초현실부동산은 개발 호재와 임대 수익 관점만으로는 미처 포착되지 않았던 도심 속 숨겨진 건축과 공간을 소개한다.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가치를 품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내 그 가치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연결해준다. 이들이 정한 연한은 20년. 재발견의 가치를 지향하는 만큼 신축 건물은 중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각각 50년과 100년을 기준으로 하는 등록문화재와 지정문화재에 비하면 조건이 다소 느슨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제도권이 미처 지켜내지 못한 지역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기억을 놓치지 않고 거두려는 사려 깊은 생각이 투영되어 있다.

사실 낡은 건물을 소개한다는 건 여러모로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사건과 인물, 시대와 문화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밀한 이야기를 발굴하려면 심도 있는 리서치와 연구 과정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 동시에 엄연히 부동산인 만큼 입지 조건과 면적 등 숫자로 치환 가능한 정량적 정보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초현실부동산 박성진 대표는 “대단한 성취와 사회적 전환점을 만들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다”라며 몸을 낮췄다. 부동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오래된 건물의 잠재력을 알아가고 싶었을 뿐이라고. 이러한 호기심과 문제의식은 이들의 활동 범주가 건축·문화 기획과 콘텐츠 제작으로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부동산’, 움직이지 않는 재산을 무궁무진한 탐구와 사유의 세계로 확장하기 위해 초현실부동산은 오늘도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5호(2024.09)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