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돌아온 세계적인 아트 컬렉터, 피노 컬렉션
피노 컬렉션의 정수를 소개하다
세계적인 현대 미술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의 컬렉션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13년 만에 돌아온 피노 컬렉션과 엄선된 작품들은 송은에서 오는 11월 23일까지 만날 수 있다.
생 로랑(Saint Laurent),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구찌(Gucci) 등 럭셔리 브랜드가 속한 그룹 ‘케링(Kering)’의 창립자이자 세계적인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 1960년대 미술부터 현대 미술 작품까지 약 만여 점이 넘는 그의 컬렉션이 13년 만에 서울을 찾았다. 지난 50년 동안 수집해 온 피노 컬렉션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컬렉션 초상화: 피노 컬렉션에서 엄선된 작품들(Portrait of a Collection: Selected Works from the Pinault Collection)> 전시가 송은문화재단의 예술 공간 송은(SONGEUN)에서 열리고 있다.
앞서 피노 컬렉션은 지난 2011년 아시아 최초로 송은에서 전시 <고통과 환희(Agony and Ectasy)>를 통해 일부 공개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그로부터 13년 만에 열리는 자리로 앞서 2021년 프랑스 파리의 옛 상업거래소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를 미술관으로 단장하며 선보인 개관전 < 우베르튀르(Ouverture)>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당시 소개했던 마를렌 뒤마, 뤽 튀망, 피터 도이그, 플로리안 크레버, 세르 세르파스, 루돌프 스팅겔, 리넷 이아돔-보아케 등 작가들의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한편 피노 컬렉션은 작품 장르의 경계가 없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번 전시는 비디오부터 설치, 조각, 드로잉, 회화까지 장르를 가르지 않고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는 피노 컬렉션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피노 컬렉션은 작가와 장기적인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며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는데 이처럼 작가와 컬렉터 관계를 동반자로 정의하는 건 피노 컬렉션만의 특징이다. 앞서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서 열린 <우베르튀르>전에서 소개한 작가 데이비드 해먼스와 그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약 30점의 작품 중 절반 이상을 신작으로 구성했는데 과거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살펴보며 한 예술가의 전체 작품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작품 캡션이 없는 전시장?
이번 전시는 지하, 2층, 3층 갤러리 총 세 공간에서 펼쳐진다. 1층과 2층 사이의 오디토리움과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 공간도 작품 설치를 위해 활용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가 담긴 캡션이 없다는 점이다. ‘컬렉션의 초상화’라는 전시 제목과 ‘피노 컬렉션 소장품 중 엄선된 작품’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전시는 특정 주제가 아닌 ‘피노 컬렉션’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히려 정보가 없는 채로 작품을 마주하며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가 왜 이 작품을 선택했을지 고민해 보는 것도 이번 전시를 즐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3층으로 향하는 전시장 복도에는 프랑수아 피노의 인터뷰 영상도 만날 수 있다. 지난 2021년 부르스 드 코메르스 개관에 맞춰 진행한 인터뷰다. 영상 속 그는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다면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와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지속하면 종전에는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독특한 작가 정체성을 주목하다
피노 컬렉션의 또 다른 특징은 작가의 독특한 정체성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번 전시에서도 드러난다. 전시의 출발점인 로비에는 베트남 출신의 덴마크 예술가 얀 보(Danh Vo)의 작품이 놓여 있다. 20세기에 제작된 진열장, 청동기 시대의 도끼날, 15세기 중반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모자상으로 이루어진 작품 ‘Untitled'(2020)은 베트남 전쟁 직후 해로(海路)로 망명한 보트피플 난민이라는 작가의 출신 배경을 직접적으로 지시한다.
이어지는 웰컴룸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데이비드 해먼스의 6점의 작품으로만 구성되었다. 그를 위한 공간인 셈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온 종이 드로잉부터 산업재료와 비디오 등을 활용한 최근작까지 만날 수 있다. 그간 아시아에서는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작가의 작품인 만큼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한 가운데 자리한 작품 ‘Rubber Dread'(1989)은 드레드록스(dreadlocks)를 연상시키는 머리 가닥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함의를 내포한다. 머리 가득을 이루는 재료는 바람 빠진 자전거 튜브인데 일상적 재료를 통해 질문과 풍자를 이끌어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외에도 피노 컬렉션은 마를렌 뒤마(Marlene Dumas), 미리암 칸(Miriam Cahn), 뤽 튀망(Luc Tuymans), 피터 도이그(Peter Doig), 신이 쳉(Xiniy Cheng), 폴 타부레(Pol taburet), 라이언 갠더(Ryan Gander) 등 각기 다른 연령대와 문화권을 배경으로 한 작가들의 주요 작품도 2층, 2층 라운지, 3층에 걸쳐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송은 지하 2층에 자리한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ster)의 작품 ‘Opera(QM.15)'(2016)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가 노래하는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구현했다. 조명을 없애고 암막에서 붉은 옷을 입고 리사이틀 무대에 오른 마리아 칼라스는 마치 유령과도 같은 모습이다. 일종의 환영과도 같은 작품은 칼라스의 전성기 시절부터 은퇴 공연을 치르는 노년기까지 여러 시간대를 오가며 시간적 혼돈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이를 두고 “작품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의 경계에서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작품 그 자체가 되려고 시도한다”라고 말한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열리는 주간에 맞춰 공개된 피노 컬렉션. 세계적인 컬렉터가 작품을 바라보는 자세와 수집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번 전시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13년 만에 돌아온 피노 컬렉션 전시는 오는 11월 23일까지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