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에 취하고 음에 매료되는 곳, 티 에디트 ②

일상적으로 즐기는 지역 차의 매력

1962년 지어진 한옥을 리노베이션 한 티 하우스 '티 에디트'는 차 문화와 정신을 대표하는 광주광역시 학동 의재로에 자리한다. 과거의 유산과 동시대의 감각을 한 공간 안에서 섬세하게 풀어낸 이곳에서 빛고을 광주와 차 문화를 한층 깊이 만날 수 있다.

향에 취하고 음에 매료되는 곳, 티 에디트 ②

▼기사는 1편에서 이어집니다
향에 취하고 음에 매료되는 곳, 티에디트 ①


광주로 내려온 티 소믈리에

티 에디트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 모습. 어둠이 내리자 그래픽 디자인이 더욱 돋보이기 시작했다.

티 에디트를 운영하기 전에는 서울에서 지내셨다고 들었어요. 광주로 내려오시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이곳 의재로에서 나고 자랐어요. 차 공부를 하면서 티 소믈리에를 준비하고 다양한 티하우스에서 일하는 동안 서울에서 지냈습니다. 무등산과 의재로에는 차밭과 다원, 찻집이 밀집되어 있어요. 또한, 티 컬처와 티 푸드를 연구하는 분들과 다기를 만드시는 도예가, 티 소믈리에와 블렌더들도 많죠. 전국적으로 보면 보성과 하동에는 훌륭한 다원이 자리 잡고 있고, 서울에는 세련된 찻집과 티 푸드 숍이 많고, 여주에는 좋은 다기를 만드는 도예가들이 있죠. 신기하게 의재로는 한국차와 관련된 이 모든 것들이 집적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자리 잡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광주만의 매력은 무엇인지도 궁금한데요.

‘여유’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질만능주의가 서울보다 좀 덜하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이해득실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어느 곳이나 비슷하겠지만,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 것들의 가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조금 더 있어요.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같은 거 말이죠. 연대의식이라고 할까요? 이런 것들이 광주만의 ‘정’이자 ‘여유’라고 생각합니다.

의자와 테이블 가구는 물론 차반과 차기까지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점도 티 에디트의 매력이다.

차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된 건가요? 티 소믈리에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대학에서 불어 불문학을 전공했어요. 특히 프랑스 문화사와 예술사를 좋아했는데 옆 나라 영국을 포함한 그곳의 티 컬처와 프랑스 와인과 음식 등에 심취했었죠. 그때부터 티 소믈리에가 되고 싶었어요. 파리 사람들도 한국차를 참 좋아해요. 파리 8구 트롱셰에 있는 티숍 ‘팔레 데 떼‘에 가보면 제주의 녹차, 하동의 죽로홍차를 판매하고 있어요. 싱글 오리진으로는 아직 일본이나 대만차에 비해 인기는 덜 하지만 마니아층이 있습니다. 순하면서 청아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국차를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한편 티 소믈리에에게 필요한 역량이나 자세와 태도가 있다면요?

무엇보다 섬세함인 것 같아요. 맛과 향, 질감과 형태에 대해 디테일한 차이와 특징을 잡아내고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죠. 미각과 후각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부분이기도 해요. 따라서 이 점이 부족하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해요. 저는 티 블렌딩도 같이 하는데요. 티 블렌더를 겸하는 소믈리에들이 좀 더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티 소믈리에 역할뿐만 아니라 티 에디트의 공간과 그래픽 디자인에도 참여하셨고, 무엇보다 <의재로 로컬 페이퍼>라는 콘텐츠도 직접 만들고 계시더라고요.

디자인과 공간 구성 등 모든 걸 직접 한 건 아니에요. 사실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다만 공간과 콘텐츠 기획에 모두 참여했어요.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이 함께해 주셨고, 저는 음료와 티 푸드 개발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집중했습니다 <의재로 로컬 페이퍼>는 이곳에서 오늘도 차를 만드는 분들을 소개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찻잎을 수확하고, 제다하는 분들, 찻집을 운영하는 분, 문화와 음식을 연구하는 분, 티 웨어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아볼 생각입니다. 한 명씩 소개해가다 보면 한국차를 사랑하는 분들이 이곳 의재로에 더 많이 모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티 에디트의 로고 디자인

티 에디트의 소개를 보면 눈길을 끄는 키워드가 있어요. ‘Native Tastemaker’, ‘curator’, ‘collector’ 이렇게 세 가지 단어인데요. 티 에디트를 표현하는 단어로 이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더군요.

광주에 남아 있는 유산을 선별하고 수집하면서 새로운 지역의 취향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커피나 술과 다르게 차는 문화적인 복합성이 많은 소재거든요. 차를 마시면서 동시에 음악과 향, 티 웨어의 질감, 찻잎의 형태 등을 함께 즐길 수 있죠. 이곳에 남은 감도 높은 차 문화와 예술가들의 혼과 같이 사라져가는 유산을 동시대의 소재들과 접목해 보고 싶어요. 한국차는 그 모든 걸 이어주는 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도의 차를 즐기는 법

동양 최대 연꽃 자생지로 알려진 무안 회산백련지에서 영감을 얻은 블렌디드 티 ‘회산에 피어난 백련, 무안’

‘티 에디트’라는 이름에서부터 이곳이 ‘차를 큐레이션 하는 곳’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흥미로운 건 광주와 전남 지역의 차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이었어요. 보성 녹차는 워낙 유명하니까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무등산 자락에도 이름난 다원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티 에디트에서 다루는 전남의 차와 그 특징들이 궁금합니다.

전남 보성과 경남 하동은 프랑스의 와이너리로 치면 보르도와 부르고뉴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규모도 크고 다원도 많아요. 한국의 차 나무는 익산을 북방 한계선으로 남부 지방에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데요. 산지별로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함평 부루다원의 청차는 산뜻한 꽃 향과 청명함이 매력이고, 보성 몽중산다원의 백차는 해풍이 만드는 특유의 감칠맛이 특징이죠. 광주 삼애다원의 녹차와 홍차는 신비롭고 은은한 맛이, 광주 한국제다의 황차는 다채로운 풍미와 달달한 향이 일품입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다식 플래터’도 티 에디트만의 매력으로 꼽힌다. 사진은 ‘봄의 다식 플래터’. 감태 오란다, 주악, 무화과 양갱, 곶감 단자, 치자 약식, 흑임자 인절미, 크랜베리/카카오닙스 강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와 함께 계절마다 달라지는 티 에디트의 ‘다식 플래터’도 재밌습니다. 추천하는 티 푸드와 차의 조합도 궁금한데요. 몇 가지 추천해 주시자면요?

차를 일상적으로 즐기게 해주는 것이 티 푸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차만 마시면 어딘가 심심하잖아요. 집에서 한국차를 즐길 때는 건정과류나 부각, 튀각류를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아요. 묵직한 흑차에는 오미자 정과와 같이 산뜻한 다식이, 청아하고 맑은 백차나 청차에는 사과란이나 연근 튀각이 잘 어울립니다. 그렇다고 꼭 한국적인 디저트만 한국차와 어울리는 건 아니에요. 테린느 또는 비스코티와 같은 유럽의 디저트를 차와 페어링 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블렌디드 티는 각각의 이름들이 재밌더라고요. 바람재 산목련, 억새가득 장불재, 회산에 피어난 백련 등. 이러한 네이밍은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얻으셨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무등산을 오르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참 좋아했어요. 특히 초여름의 바람재와 가을의 장불재를 가장 좋아해요. ‘바람재 산목련’은 목련 꽃과 캐머마일을 주 재료로 블렌딩했는데 함초롬하고 신비로운 무등의 산목련을 상상하며 만들었습니다. ‘억새가득 장불재’는 억새가 위치와 시간에 따라 그 자태를 달리하는 것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가을의 묵직한 향을 계수나무껍질과 민들레의 뿌리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 여름 잊지 않고 꼭 들르는 곳이 무안 회산백련지인데요. 깨끗한 마음을 잃지 않는 백련의 매력을 담아보았습니다. 이외에도 한국에는 연꽃을 소재로 한 차들이 꽤 많은데요. 전북 김제의 하소백련차가 대표적입니다.

대표님이 추천하는 차를 즐기는 노하우도 궁금합니다. 예컨대 직접 다원을 찾아간다든지 혹은 자연 풍경을 벗 삼아 마신다거나 하는 방법들 말이죠.

한국에서는 ‘다례’, 일본에서는 ‘다도’라고 이야기하는 차를 마실 때 지켜야 하는 예절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차를 일상적으로 즐기기 어렵게 만들거든요. 차 자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차를 즐기면 그만이죠. 저는 다관과 찻잔, 차판이 들어있는 휴대용 다기 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상적으로 차를 마시는 편이에요. 차밭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경남 하동의 다원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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