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요리가 한 곳에, 제주 플랜트 바 ‘용기’ ①
식물을 중심으로 한 다목적 공간
제주도에는 100평에 이르는 공간 안에서 식물도 가꾸고, 요리도 하는 이들이 있다.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 출신 복창민, 아트 디렉터로 활동한 조미은 두 명의 디렉터가 시작한 플랜트 크리에이티브 팀 파도식물이 서울 효창동과 한남동을 거쳐 현재는 제주 탑동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용기'는 바로 이들이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준비해 온 공간이다.
제주 국제공항에서 차로 20분. 제주시 탑동에 자리한 플랜트 바 ‘용기‘는 식물과 음식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앞서 <헬로! 로컬 디자이너>로 소개한 제주 도토리스튜디오의 최다예 디자이너가 추천한 제주 맛집으로, 그녀는 “공간을 가득 메운 식물 속에서 로컬 푸드와 내추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100평에 이르는 공간 안에서 식물도 가꾸고, 요리도 하는 이들이 있다고? 도대체 누가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 건가 싶어 찾아보니 플랜트 크리에이티브 팀 ‘파도식물‘이 제주도로 건너가 재작년에 선보인 곳이라고. 광고 회사 카피라이터 출신의 복창민, 아트 디렉터로 활동한 조미은 두 명의 디렉터가 시작한 파도식물은 서울 효창동과 한남동을 거쳐 현재는 제주 탑동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용기’는 바로 이들이 지난 경험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준비해 온 공간. 단순히 음식점에 그치기 보다 식물을 매개로 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하는 용기의 이야기를 담아왔다. 지금 만나보자.
용기를 주고받는 곳, 플랜트 바 ‘용기’
앞서 <헬로! 로컬 디자이너>로 만난 도토리 스튜디오의 최다예 디자이너가 제주 맛집으로 ‘용기’를 추천해 줬어요. 그녀의 소개에 따르면 “아름다운 식물에 둘러싸여서 맛있는 로컬 푸드와 내추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간의 행보를 보면 단순히 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식당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이곳 ‘용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플랜트 바 용기는 가능한 ‘플랜트 오픈 스페이스Plant open space’, 그러니까 식물을 중심으로 한 다목적 공간으로 꾸려가고 싶은 마음이에요. 식물이 가득한 공간에서 [ 000 ]을 해보는 저희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1주년 파티였던 [ 춤 출 용기]는 식물들 사이에서 흥겨운 음악과 파티를 다 함께 즐겼고, 친구 찾기 이벤트 [ 사랑할 용기 ]에서는 멋진 남녀가 서로 함께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어요. 또, 저희가 애정 하는 내추럴 와인 시음회도 종종 열리고 있죠. ‘용기를 주고받는다’라는 모토 아래 전시와 공연 등 다양한 팝업을 용기에서 풀어가보고 싶습니다.
(사진 제공. 용기, 파도식물)
2021년 11월에 ‘용기’를 오픈했어요. 어느새 2년 차에 접어드는데요. 용기의 공간이 처음에는 식물을 두는 창고였다는 글을 봤어요. 이곳의 공간 변천사도 궁금하더군요.
꽤 오래 비어있던 공간에 양해를 구해 잠시 식물을 두는 공간으로 활용했었어요. 한 면이 모두 창이라 빛이 잘 들었거든요. 그러다 조금씩 이곳에서 우리의 어떤 에너지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생각을 실현한 것이 지금의 ‘용기’가 된 거죠. 처음에는 ‘용기밀’이라는 귀여운 점심 메뉴도 있었어요. 주변 분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운영상 유지가 어려워 현재는 운영하지 않고 있어요. 지금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는 카페테리아로, 오후 5시부터 저녁 11시까지는 와인 다이닝으로 용기를 운영 중입니다. 노트북 작업을 하면서 낮술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흐뭇해져요. 가장 최근에는 매장 초입부에 변화를 줬어요. 플랜팅 상담과 판매를 겸하는 식물 카운셀링바를 만들었어요.
파도식물이 제주도에 ‘플랜트 바’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했다는 반응이 꽤 있더라고요. 이전까지 주로 식물 판매, 쇼룸 운영, 예술 협업 활동을 해오다 낯선 요식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새벽부터 제주 오일장을 다니고, 내추럴 와인을 하나씩 공부하며 ‘용기’를 만들어 온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함께하고 있는 팀원들이 원동력이에요. 저희는 장(場)을 마련했을 뿐이에요. 각자의 재능과 열정을 지닌 팀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용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겁니다. 용기를 준비하면서 함께 밥을 해먹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렇게 용기를 차츰 구체화시켜왔죠.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우리의 힘으로 만들었어요. 모자란 것은 모자란 대로 인정하고, 저희만의 시선과 자세로 오늘도 탐구하는 중입니다.
인스타그램에 소개한 <용기의 룰>을 보면 두 번째에 ‘용기의 첫 프로젝트는 대중음식점이다. 단, 모두가 우리의 대중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용기를 찾아줬으면 싶은 이들이 있는 걸까요? 용기가 정의하는 대중은 무엇인 인지도 궁금합니다.
처음에 파도식물이 음식점을 한다고 하니 아무래도 음식에 대한 기대가 낮더라고요. 하지만 저희 멤버들이 가진 좋은 취향의 음식을 나눌 수 있다면 바로 이게 ‘대중음식점’이 아닐까 싶었어요. 편견 없이 음식과, 사람과, 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특별하진 않지만 거슬릴 것 없는 공간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대중음식점이라는 단어로 용기를 정의해 보기도 했어요. 파도식물과 용기 멤버들의 취향이 가득한 곳이라 당연히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제주는 전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찾아오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제주에 와서는 응당 제주스러움을 찾기 마련이니까요.
(오른쪽)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는 플랜트 바 ‘용기’ 공간 ©이주연 (사진 제공. 용기, 파도식물)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용기’를 알아봐 주고 직접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고 있어요. 외부에서 보았을 때 뭐 하는 곳인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여전히 많아요. 어쩌면 들어설 때부터 용기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싶더라고요. (웃음) 용기를 찾아줬으면 싶은 구체적인 손님상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내추럴 와인은 저랑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생각 보다 좋았어요’, ‘처음 도전하는 혼술이에요.’, ‘와인이 이런 요리와도 매칭이 좋구나’처럼 새로운 시도를 즐기고, 좋은 경험을 안고 가는 손님들을 볼 때면 기쁘고 보람을 느끼죠.
용기를 주고받는 곳, 플랜트 바 ‘용기’
‘용기’의 면적이 100평에 이른다고요. 앞서 여러 매체와의 나눈 이야기를 보면 ‘100평’을 강조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물리적인 공간 크기만큼 가능성도 커졌다고 판단하시는 건가 싶기도 했어요. 100평이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저희가 오랫동안 그려온 그림을 실행하기에는 100평이 적당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파도식물 <1.5 쇼룸>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용기에 오시면 조금 놀라실 수도 있어요. 한남동에 있었던 쇼룸 공간은 2평 남짓이었거든요.
식물이 빼곡히 들어찬 공간을 일정한 컨디션으로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인스타그램 피드 중 <27 용기의 자문>이라는 제목의 긴 글에서는 공간 운영과 관리에 대한 고민이 가득해 보이더라고요.
식물을 내 공간에 들인다는 건 그만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의미해요. 이 공간의 대부분 식물은 저희가 오랫동안 데리고 있던 식물이에요. 서울 작업실에서부터 배를 타고 제주도로 건너왔죠. 용기의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식물의 생장 환경’과 ‘고객의 안락함’ 두 가지인데요. 이 둘의 적절한 균형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물이 있는 건 좋지만 습한 환경이나 벌레, 흙이 묻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래서 더욱 신경 쓰고 있습니다.
공간 내 식물을 배치한 기준도 있을까요?
용기에는 좌석 수가 많지 않아요. 저희는 가능한 한 와인을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식물은 서버가 손님을 체크할 수 있으면서도 옆 테이블의 시선은 조금 가려지는 정도로 파티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10m 길이의 키친부터 테이블의 소재와 의자의 컬러 그리고 화장실 손잡이까지. ‘용기’에서는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의 디테일도 남달라 보여요.
용기의 디자인을 위해서 특별히 제작하거나 맞춘 건 없어요. 필요한 건 제주에서 찾고, 만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용기’에 맞는 인연 있는 집기로 탄생했어요. 예컨대 스테인리스 소재의 테이블은 초등학교 급식실 테이블이었는데요. 아이들 키에 맞춰져 있었던 터라 바퀴를 달아 높이를 조금 올렸어요. 의자는 사무실용 의자를 수급했고요. 키친 공간은 이전 업체에서 생맥주를 내리던 곳을 용기를 위한 주방으로 바꿨죠. 이 역시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처음 용기의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상상했던 분위기나 이미지는 어떤 것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초창기 네이밍 아이디어 중에 ‘파도홀’이 있었어요. 조금 상상이 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