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디자인은 왜 탈락했을까?] SWNA·홍은주김형재·유랩·빛나는

월간 〈디자인〉 556호는 탈락한 디자인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채택되지 못한 안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완성본이 도출되기까지의 다양한 과정에 관한 얘기다.

[그 디자인은 왜 탈락했을까?] SWNA·홍은주김형재·유랩·빛나는

시안試案의 사전적 의미는 ‘시험으로 또는 임시로 만든 계획이나 의견’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많은 시안은 결코 임시로 만들거나 버리지 않는다. 최종 결과물을 염두에 둔 노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월간 〈디자인〉 556호는 탈락한 디자인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채택되지 못한 안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완성본이 도출되기까지의 다양한 과정에 관한 얘기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적절한 합치점을 찾은 경우도 있고, 초기의 기획 의도가 무색할 정도로 전혀 다른 결과물이 구현된 경우도 있다. 사연과 배경은 제각각이지만 그럼에도 어떤 일관된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는 상호 존중의 관계이지 단순한 갑을 관계가 아니며, 프로젝트의 향방은 결국 시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닌 시안을 보는 안목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 SWNA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글자 중 하나인 한글의 자음을 사용해 새롭고 역동적인 형태로 디자인했다. 메달 전면은 여러 층의 사선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우리 문화의 굴곡진 역사와 인고하는 올림픽 참가자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전면부와 연결되는 측면부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한글 자음이 보이도록 구성했다. 케이스는 화려하지 않고 담백하게 디자인해 메달과 스트랩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SWNA
SWNA2
클라이언트 국제올림픽위원회
디자인 SWNA(대표 이석우), theswna.com
참여 디자이너 이석우
발표 시기 2018년 9월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올림픽 정신과 한국 문화를상징화하고자 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을 염두에 둔 만큼 의미 부여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한국의 자연, 평창의 지형을 투영하려고도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도 공감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한국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한글이 떠올랐고 디자인의 초석이 되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스스로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는디자인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과정에서 설계 방향이 변했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물론 모든 이해 당사자가 좋아했다. 디자인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더욱 명료해졌다. 콘셉트의 힘이 부족한 B안들은 클라이언트도 알아본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최종안과 같다. 클라이언트와 이해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디자인은 진행하지 않는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교집합을 먼저 찾을 것, SWNA의 철칙이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는 이해 당사자가 많은 만큼 의견을 한데 모으기 쉽지 않다. 하지만 2018평창 동계올림픽 메달 디자인 만큼은 모두가 ‘이거다’라며 의기투합했다. 다만 메탈 3D 프린터로 구현하고자 한, 옆면이 모두 뚫려 있는 디테일이 최종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해 디자이너로서 아쉬움이 남는다.


〈바나나 잎을 땋는 마음으로〉, 홍은주·김형재

아세안 전역의 자생식물을 원료로 한 섬유공예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 〈바나나 잎을 땋는 마음으로〉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전시는 훌륭한 기교의 공예품보다는 직조의 행위가 지닌 본연의 ‘즐김’과 ‘치유’의 기능에 주목하며 여유롭고 서정적인 한때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바나나잎
바나나잎2
클라이언트 KF아세안문화원
디자인 홍은주·김형재(대표 홍은주·김형재), hongxkim.com
참여 디자이너 홍은주, 김형재
발표 시기 2024년 8월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서정적’과 ‘특별하고 새로운’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키워드를 받았다. 우리는 실이나 끈을 ‘특별히 숙련된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엮어 형태를 만드는 상황을 표현하고, 그것이 글자로 읽힐 수 있도록 형상화했다.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재료인 실뭉치가 아직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직전의 모습을 묘사하고자 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기획자가 애초에 염두에 둔 포스터의 콘셉트가 예상보다 구체적이었으나 그것을 완전히 전달 받지 않은 상태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제한 없이 콘셉트를 해석해 연상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우리의 최초 아이디어는 기획자가 더 깊이 관여해 완성된 일러스트레이션을 활용하는 세부적인 방침으로 대체됐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글자이자 이미지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아이디어는, 구체적인 형상을 묘사한 일러스트레이션의 형형함을 원한 기획자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주어진 일러스트레이션을 얼마나 세밀하고 섬세하게 운용하는지가 관건인 프로젝트였던 까닭이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우리는 제시된 조건들을 분해해 다시 조립해가는 과정에서 형태가 저 스스로 굴러가는 규칙을 가까스로 만들어낼 때 의외의 국면을 발견하고,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즐거움을 느낄 구석이 더 많아진다고 느낀다. 우리가 처음 제시한 안은, 작업의 시작은 다소 모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결과는 구체적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이 선정되지 않은 이유 글자이자 이미지의 양면적 성격을 띠는 형상은 기획자가 상상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기획자는 구체적인 바나나잎의 모티프가 얼마나 더 서정적이면서도 신선함을 줄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 즉 기획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시작했던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최종안은 우리가 처음 제시한 안과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세부적으로 조금씩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우리의 흥미를 끌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생산된 두 이미지는 같은 메시지를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가 달랐던 것일까?


오월의 종, 유랩

베이커리 ‘오월의 종’의 건축과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 협소한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물 내부에 중정을 배치해 대지 경계선 끝까지 이용했다. 주위의 번잡한 요소로부터 시선을 흐트러트리고 내부 공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 작업자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오월의 종
오월의 종2
클라이언트 오월의 종
디자인 유랩(대표 김종유), designstudioulab.com
참여 디자이너 양선호, 성대혁
발표 시기 2024년 5월
최종안 사진 강민구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매스 스터디와 프로그램 분석을 통해 베이커리의 정체성에 맞는 공간감을 구현하고자 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빵을 굽는 과정에 빗댄 세라믹 외장재를 김무열 작가와 함께 만들었고, 빵집 오픈 시간에 내부 공간으로 빛이 스며들도록 건물에 틈을 냈다. 또한 지하부터 옥상까지 관통하는 중정을 마련해 다양한 공간감이 느껴지도록 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매스 스터디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십 번의 매스 모델링 이후 피티 전날까지도 우선순위를 변경했던 기억이 난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여러 시안 중 현재 구현된 A안과 구현되지 못한 B안이 있었다. A안은 법규 검토 과정에서 무리 없이 통과했는데 B안은 레퍼런스 없이는 검토할 수 없다는 구청의 입장으로 인해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는 결국 여럿이 수긍한디자인이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A안과 B안을 공들여 작업한 디자이너에겐 모두 A안과 같다. 건축 법규로 인해 특정 안이 배제되었다는 점이 아쉬울 뿐.

디자이너가 꼽은 A안이 선정되지 않은 이유 14m의 외벽을 세우고 내부 공간까지 브리지를 연결하는 시안이었는데 구청에서는 14m의 벽에 대한 레퍼런스를 요청했다. 디자이너가 구상한 것의 레퍼런스를 찾는 일은 그 결과물이 카피일 수도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에 정말 난감했다.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아주 획기적인 디자인은 아니지만 오월의 종에서 만드는 빵처럼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건축물이라고생각한다. 다만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주택처럼, 공간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고 싶은 건축가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도록 건축 법규가 개선되길 바란다.


〈하녀〉, 빛나는

영화 〈하녀〉의 포스터 디자인을 맡았다. 1960년에 개봉한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임상수 감독이 리메이크한 영화로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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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 미로비젼
디자인 빛나는(대표 박시영), bitnaneun.com
참여 디자이너 박시영
발표 시기 2010년 4월

프로젝트의 초기 기획 의도 걸작을 리메이크했으나 예산이 많이 들어간 영화인 만큼 무작정 독립 예술영화처럼 보이지 않기를 의도했다. 원작보다 성적인 묘사와 권력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에 심플하고 고급스럽게 그 긴장감을 드러내고자 했다. 무엇보다 리메이크 영화의 차별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구현 과정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개봉이 다가오고 시사회 반응이 안 좋을수록 많은 요소가 추가된다. 마케팅팀은 전도연, 이정재, 2명의 배우가 위주였던 기존 포스터에서 조연들까지 등장시키는 디자인으로 바꾸고자 했다.

최종안이 선정된 이유 솔직히 잘 모르겠다. 굳이 이해를 해보자면 성향이 뚜렷한 영화, 예술영화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바람에 특색 없는 안전한 비주얼을 원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배우들의 인지도를 어떻게든 어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 묘한 긴장감을 독특한 앵글로 보여준 심플한 디자인. 하녀와 집주인의권력관계를 거울 쟁반을 든 부감 샷을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디자이너가 꼽은 A안이 선정되지 않은 이유 진짜 잘 모르겠다. 너무 세보였기 때문일까?

최종안에 대한 디자이너의 소회 기획 단계부터 추진해온 디자인이 엎어지고, 마감을 얼마 안 남겨두고 짧은 시간 안에 마케팅팀이나 제작사에서 원하는 것을 쥐어짜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땐 ‘왜?’라는 의문조차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는데, 그럼에도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설득했어야 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6호(2024.10)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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