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간송미술관, 지금 대구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훈민정음 해례본〉, 신윤복의 ‘미인도’, ‘월하정인’ 등 대구에서 만나는 국보와 보물
8년 간의 준비를 마치고 대구간송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한국적 미술관을 지향하는 건축 설계부터 국보와 보물을 한자리에 모은 개관전 〈여세동보〉와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전까지.
늦더위가 기승이던 9월 초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인 대구에서 수많은 인파로 열기를 더한 장소가 있다. 2016년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대구시가 간송미술관 대구분관 건립과 운영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고 8년, 오랜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대구간송미술관이 9월 3일 문을 열었다. 현재 대구간송미술관에서는 개관기념 국보·보물전 〈여세동보(與世同寶) – 세상 함께 보배 삼아〉가 진행 중이다. 총 4개의 전시실에서 신윤복의 ‘미인도’, 고려시대의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비롯해 간송 컬렉션을 대표하는 국보와 보물 40건 97점이 전시된다. 특정 주제를 지닌 전시가 아닌 작품 하나하나가 지닌 가치에 중점을 둔 전시로, 간송미술관이 개최한 전시 중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적이면서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미술관
대구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대구에 마련한 유일한 상설 전시 공간이다. 미술관의 건축 설계는 2020년 4월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을 위한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안으로, 최문규 건축가와 가아건축사사무소 팀의 작품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최문규 건축가는 인사동 쌈지길과 이태원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의 설계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대구간송미술관의 건축은 한국적이면서도 자연의 일부가 되는 미술관을 지향한다. 건축가는 미술관이 자리한 대구대공원의 경사와 지형이 안동 도산서원과 유사하다는 지점에서 착안해 자연환경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도 전통 건축 요소인 기단, 터의 분절 등을 접목해 한국적인 미술관을 완성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 간송 전형필의 문화보국 정신을 미술관 설계의 기초로 삼아 굳건한 정신과 신념을 미술관 입구의 기둥과 동선 곳곳에 배치한 소나무로 표현했다. (소나무는 대구간송미술관의 심볼에서도 볼 수 있다. ‘간송(澗松)’의 의미인 맑은 계곡의 고고한 소나무를 정선의 ‘진경산수화’에서 착안한 두 그루의 소나무로 완성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연면적 8,003㎡ 규모로, 지하 1층은 2개소의 전시실과 야외 수공간을 포함한다. 지상 1층에는 전시실과 ‘보이는 수리복원실’, 아트 숍 등을 두고 있으며 지상 2층에는 매표소와 도서 자료실인 ‘아카이브집’, 야외 마당 등이 조성되었다.
개관기념 국보·보물전 〈여세동보〉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을 기념하고자 국보와 보물 40건 97점이 모였다. 개관기념 국보·보물전 〈여세동보(與世同寶) – 세상 함께 보배 삼아〉를 위한 간송미술관의 문화유산 이송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미술관은 올해 4월 준공을 하고 5개월간 항온·항습, 보안·방범 등의 점검 과정을 거쳤는데, 전시 유물들이 국보·보물급 유물인 데다가 습기에 취약한 지류유물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인 ‘여세동보(與世同寶)’는 위창 오세창이 1938년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으로 한국 1세대 건축가인 박길룡이 설계했다) 설립을 축하하며 지어 보화각 머릿돌에 새겨진 글귀에서 가져왔다. “세상 함께 보배 삼아”라는 뜻으로, 간송이 수집한 문화유산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개관의 의미가 담겼다.
전시는 지상 1층의 전시실 1에서 시작된다. 간송 전형필이 비교적 초창기에 수집한 회화로 채워진 이곳에서는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 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로 그린 이정의 대나무 그림을 비롯해, 정선·심사정의 산수화, 김홍도의 고사인물화, 신윤복·김득신의 풍속화 등 다양한 장르의 조선시대 회화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대변하는 세 권의 책도 전시된다. 전시실 2는 신윤복의 ‘미인도’만을 위해 특별히 조성된 공간으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한 번에 출입할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해 온전히 작품과 만나는 경험을 제공한다. 조명과 음악 또한 내밀한 작품 감상을 위해 연출되었다.
지하 1층으로 이어진 전시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압도하는 것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그림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불교미술과 도자기, 서예 작품을 만나는 전시실 4 초입에는 〈난맹첩〉(보물)의 묵란화 네 점과 추사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서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어서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국보), ‘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국보)과 함께 다양한 도자들을 향연이 펼쳐진다. 전시실 5에서는 실감 영상 전시 〈흐름·The Flow〉가 진행된다. 간송미술관의 다양한 소장품을 디지털 영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는 공간으로, 정선, 김홍도, 신윤복, 이인문 등 조선 대표 화가들의 작품 하루의 시간으로 담아 약 38m의 반원형 스크린에 펼쳤다.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의 작품 ‘자리(Jari)’에 앉아 그 흐름에 몰입해보자.
소리와 함께하는 훈민정음 해례본 전시
〈훈민정음 해례본〉 진본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간송미술관을 제외하고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전시된 것이 전부. 개관전 〈여세동보〉와 함께 개막한 〈훈민정음 해례본: 소리로 지은 집〉전은 전시실 3에서 2025년 5월 25일까지 진행된다. 이 전시는 유물과 현대미술을 결합한 전시로, 미디어 아티스트 송예슬과 협업했다. 훈민정음이 지닌 애민정신을 강조하고 문자에 대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개념을 확장하고자 다양한 배경의 인물이 낭송에 참여한 송예슬 작가의 미디어 작품 3점이 〈훈민정음 해례본〉과 함께 전시된다. 소리로 전달되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색다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전시뿐만 아니라 연구자·예술가·교육자로서 간송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작 26건 60점을 만날 수 있는 ‘간송의 방’, 실제 수리 복원에 사용되는 도구와 재료, 수리 복원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보이는 수리복원실’ (시연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현장 발권도 가능하나 그 규모가 소량이기 때문에 인터넷 예매를 통한 사전 예매 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대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아름다운 계절을 느끼며 국보와 보물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