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적·작가적 디자인 페어, 에디트 나폴리

아름다운 지중해 연안의 도시 나폴리에서 열리는 디자인 페어 '에디트 나폴리'가 여섯 번째 에디션을 맞이했다.

편집적·작가적 디자인 페어, 에디트 나폴리

밀라노 디자인 위크가 거대해지고, 상업화되고, 지나치게 화려해지자, 유럽 내 여러 도시는 대안으로 자생적인 디자인 페어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에디트 나폴리도 그중 하나다. 밀라노도, 로마도 아닌 나폴리에서 열리는 디자인 페어라는 사실은 분명 호기심과 흥미를 자아내는 것이었다. 비록 2019년 첫 에디션 직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이 성장에 걸림돌이 되었지만 에디트 나폴리는 묵묵히 시간의 무게를 버텨냈고 올해로 여섯 번째 에디션을 맞이했다.

숨겨진 디자인 강자, 나폴리

아름다움과 쇠퇴가 공존하는 이 지중해안의 도시에서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린 행사에서는 이탈리아 남부의 ‘미개척 도시’ 나폴리를 디자인 허브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느껴졌다. 디자인 역사가이자 큐레이터인 에밀리아 페트루첼리(Emilia Petruccelli)와 전자 엔지니어이자 디자인 바이어인 도미틸라 다르디(Domitilla Dardi)는 나폴리에 재능 있는 디자이너와 장인, 제조 산업이 다수 존재하고 있음에도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에디트 나폴리를 기획하게 됐다.

에밀리아 페트루첼리와 바이어인 도미틸라 다르디.

그렇다고 밀라노의 아성을 따라잡거나 무너트리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현지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장인 정신과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에디트 나폴리만의 독자적 노선을 구상했다. 그리고 그 열쇠를 큐레이션에서 찾았다. 양보다 질을 중시하는 강력한 큐레이션에 무게 중심을 두며 상업적 디자인 박람회와는 다른 개념의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여기에 장인 정신을 강조하며 기획부터 제작까지 총괄하는 작가주의적 디자인(authorial design) 크리에이터들이 합세해 에디트 나폴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에디트 나폴리가 열린 나폴리 국립 기록보관소. 사진 Eller Studio

로컬리티의 진수

보관소 내부를 채운 작품들. 사진 Eller Studio

올해 에디트 나폴리는 나폴리 국립 기록보관소(Archivio di Stato di Napoli)에서 열렸다. 전시업체 100개가 참여한 가운데 디자이너, 아티스트, 여러 분야의 제작자와 기획자들이 가구부터 도자기, 직물, 조명, 액세서리 등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젊은 디자이너를 지원한다는 에디트 나폴리의 철학에 따라 30세 미만 출품자와 설립 3년 이하의 신생 기업이 참여하는 클로이스터(Cloister) 섹션도 눈에 띄었다. 올해는 스페인 출신의 신인 창작자를 소개하는 콘테스트(España Diseño Mediterráneo)를 통해 총 5팀이 선정됐다.

중정 회랑을 따라 전시된 지역색 강한 작품들. 사진 Eller Studio

보관소 뜰을 둘러싼 홀과 실내 전시에는 이탈리아의 지역성이 두드러진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와 업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 않아 다소 서툴고 엉성한 작업도 있었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에디트 나폴리가 보여준 신구의 조화

에디트 나폴리의 하이라이트는 ‘에디트 컬트(Edit Cult)’로, 기획 전시를 통해 역사적 장소와 현대 디자인 프로젝트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에디트 컬트의 일환으로 디자이너 줄리오 이아케티(Giulio Iacchetti)와 마테오 라니(Matteo Ragni)가 선보인 설치 작품 ‘ABET 라미네이팅’. 지중해가 보이는 근사한 테라스에 설치했다.

축적 맥락과 전시 작품 사이의 시너지를 추구하는 것이 포인트. 올해는 그 일환으로 총 7개의 특별 전시가 열렸는데 이 중 가장 독보적인 프로젝트는 알칸타라(Alcatara)와 건축가 구마 겐고가 협업한 ‘시와 시와(Shiwa Shiwa)’였다. 1937년에 지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페라 극장으로 알려진 산 카를로 극장의 무대를 현대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구마 겐고는 700㎡에 달하는 알칸타라 소재를 활용해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무대를 위한 시노그래피 작품을 설치했다.

시와 시와를 배경으로 진행한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
시와 시와 작품 앞에 선 구마 겐고.

자연의 지속적인 변화와 역동성을 상징하는 곡선으로 조명에 따라 미묘하게 빛을 머금고 반사하는 모습이 현대 디자인과 오페라의 성공적 만남을 은유했다. 이는 서사의 배경이 되는 제노바와 개최 도시 나폴리를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것이기도 했다. 카시나의 에디트 나폴리 데뷔도 눈여겨볼 만했다. 카시나는 나폴리 왕궁(Palazzo Reale)에서 특별 전시를 펼쳤는데 나폴리 출신 건축가, 디자이너, 교육자이자 카시나의 디자인 유산 컬렉션인 이마에스트리(iMaestri)의 설립자이기도 한 필리포 알리손(Filippo Alison)에 대한 헌사로 공간을 채웠다. 알리손이 1970년대부터 연구한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가구를 그림자를 활용해 연극적으로 연출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Interview

에밀리아 페트루첼리, 도미틸라 다르디 에디트 나폴리 대표. 사진 Eller Studio
이번 에디션을 성황리에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여섯 번째 에디션은 우리에게 많은 아름다움을 선사했고, 긍정적인 피드백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줬다. 나폴리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고 여전히 탐구할 데가 많은 도시다. 이런 관점에서 에디트 나폴리가 단순한 박람회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 회로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우리는 박람회가 아름답고 즐거운 비즈니스 장소가 될 수 있으며, 도시 안에서 열리는 전시가 새로운 프로젝트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나폴리에서 어떤 비전을 봤길래 이 도시를 택한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늘 똑같이 답한다. ‘Why not?’ 나폴리는 뛰어난 장인 정신과 풍부한 제조업을 갖춘, 대화·토론·수행의 도시다. 항구가 있어 지중해를 향해 투사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고대 역사를 지닌 동시에 현대적인 면모도 갖췄다. 강력한 역사적·지역적 뿌리와 국제적 소명이 결합되어 있다. 나폴리 고유의 DNA를 통해 디자인 세계를 열어가는 것이 비전이다.

에디트 나폴리의 가장 중요한 철학은 무엇인가?

‘편집적 디자인(editorial design)’이다. 장인이 손수 만든 제품을 일상에 도입하고자 내건 기치다. 우리의 큐레이션으로 이 디자인 카테고리가 독점적 가시성을 갖추기를 바랐다. 일반적으로 찾기 어려운 독창적 현실을 이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재료와 생산 프로세스에 대한 연구, 실험, 존중과 헌신 등 전시 참여 팀들에게서 공통적인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다.

행사를 진행하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팬데믹은 에디트 나폴리가 단순한 관람이 아닌 커뮤니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2020년에 행사 개최가 불투명했을 때 참여사들은 우리를 격려했고, 나폴리 시민들 또한 전시를 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며 우리를 지지했다. 협업 또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순간들을 선사했다. 예를 들어 강철을 다루는 젊은 장인 마르코 리파(Marco Ripa)와 건축 스튜디오 아틀리에 페라로(Atelier Ferraro)의 협업이 우리에게 큰 성과다.

사진 Alessandra Mustilli
아직 국제적 행사로 자리 잡았다고 보긴 힘들다. 남겨진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인가?

우리는 느린 디자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행사를 찾는 언론과 방문객이 늘어나길 희망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과제는 점점 더 국제적이면서 점진적이고 지속 가능한 박람회로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에디트 나폴리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깊은 영혼과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심오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시간과 노력이 이 목표에 도달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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