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주노초파남보
오감으로 느끼는 전시가 곧 놀이다
예술은 물론 디자인에도 놀이의 성격은 존재하며 주로 상상의 즐거움으로 발현된다.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 미술관 그리고 전시 콘텐츠에서 놀이터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보자.


색을 감상하는 몇 가지 방법, 빨주노초파남보
색칠은 아이들이 가장 즐겨 하는 놀이 중 하나다. 어떤 색을 고를까 상상하고 색의 조합을 구성하며 직접 칠하는 창작 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는 종합 놀이 세트와 같다. 그렇다면 색을 감상하는 것 자체는 어떤 경험이 될까? 3월 2일부터 7월 24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갤러리에서 열리는 박미나 작가와 함께 그리는 <빨주노초파남보>전은 아이들이 관람을 통해 알록달록한 색채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보도록 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각 작품마다 지시문을 더해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접하던 색을 새롭게 경험하고 인식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84가지 각기 다른 색의 크레용으로 색칠공부를 칠한 ’84 색 드로잉’ 앞에서 아이들은 색에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84개 색과 이름이 서로 어울리나요?”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떻게 색을 선택하나요?” “어떤 색을, 왜 즐겨 사용하나요?”라는 물음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색을 선택하는 기준과 동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도 있다. ‘2005년 10월 8일 하늘색’은 작가가 제목과 같은 날 기록한 서울의 하늘에서 추출한 색을 재현한 것으로 관람자 역시 작가의 방식을 따라 일상에서 계절 색을 드러내는 생활용품, 다양한 자연물을 찾아 선반 위에 올려둘 수 있다.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 색을 관찰하는 일, 자신의 일상에서 자연의 색을 발견하는 일 모두가 일종의 놀이이자 색을 채집하는 행위인 셈이다. 한편 색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아무 색을 드러내지 않는 작품도 있다. ‘딩뱃(dingbat)’으로 구성한 문자 회화는 작가가 임의의 색을 고른 뒤 그에 어울리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관람자인 아이들은 문자 회화의 표정을 보고 어떤 색을 나타낸 것인지 유추하는데 색채가 지각되는 동시에 전달되는 감정, ‘색의 느낌’에 대해 환기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아파트, 쇼핑몰, 현수막 등 동네 풍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색을 채집한 작품과 명칭이 같아도 재료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색과 느낌을 자아내는 여러가지 검은색과 흰색을 나열한 작품 등은 낯선 시각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색을 수집하고 정렬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작업을 선보인 박미나 작가의 작품 13점을 전시한 것으로 타이틀 디자인을 비롯해 지시문 등 전시 전반의 그래픽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이너 슬기와 민이 맡았다. 아이는 물론 어른도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럼 색채가 전하는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다. sema.seoul.go.kr



Interview
김혜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갤러리 큐레이터
“색채는 생활 대부분의 감정을 움직이고 행동을 좌우하는 요소다.”

색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린이 미술관이 대부분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데 비해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어린이갤리러는 작품 감상 본연의 역할에 비중을 두고 있다. 따라서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는 주제를 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색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시각적 경험이므로 일정한 내러티브를 이용해 아이들의 동선을 유도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전시를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포인트를 말한다면?
‘빨주노초파남보’ 파빌리온 안에 들어가면 빨간색, 녹색, 파란색, 검은색 조명이 설치되어 가산혼합의 원리를 경험할 수 있다. 빨간색, 녹색, 파란색 물감을 섞었을 땐 검은색이 되지만 각각의 색을 조명으로 섞었을 땐 빛의 양이 증가하여 흰색에 가까워진다. 교과서에 많이 나오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기 때문에 아이들이 직접 체득해보길 유도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전시실 유리판에 그려진 당뱃 이미지에 일곱 가지 색을 켜켜이 붙이면서 색의 혼합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2005년 10월 8일 하늘색’에서는 전시에서 본 작품이 자신의 일상에서도 이어지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작가의 시선을 빌려 단 얼마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색의 의미를 적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만약 좀 더 적극적으로 체험해보고 싶다면 관련된 연계 프로그램을 신청해도 좋다.
궁극적으로 색을 감상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의식하지 못할 뿐 사람들은 늘 다양한 색에 둘러싸여 있고 그 영향을 받는다. 주변에 아름답지 못한 색이 많다면 당연히 그 사람의 미감과 색의 선택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어릴 때부터 다양한 색을 감각적으로 접하고 환기하며 다양한 환경 속에서 그 맥락을 읽어낸다면 삶이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