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진 거장의 피크닉 사진전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

70여 년간 현역이었던 사진가 우에다 쇼지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

연출 사진의 선구자 우에다 쇼지의 회고전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이 10월 12일부터 회현동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의 사진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 닻프레스 등이 참여했다.

일본 사진 거장의 피크닉 사진전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1939) © SHOJI UEDA 이미지 제공: 피크닉

서로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네 명의 소녀들. 극의 한 장면 같은 흑백사진이 시공간을 초월해 마음으로 들어온다. ‘네 명의 소녀, 네 가지 포즈(少女四態)’의 제목을 지닌 이 사진은 우에다 쇼지가 26세였던 1939년, 마을 소녀들을 집 근처 유미가하마 해변으로 데려와 각각 시선과 포즈를 섬세하게 구성해 촬영한 작품이다.

10대에 사진을 찍기 시작해 8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70여 년간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일본의 사진 거장 우에다 쇼지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이 10월 12일부터 회현동 피크닉에서 열리고 있다. 오리지널 프린트 180여 점을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Ueda Shoji Theatre of the Dunes)〉은 2020년 사울 레이터(Saul Leiter), 2022년 프랑수아 알라르(François Halard)에 이어 피크닉에서 2년 만에 개최되는 사진 전시로, 거리에서 마주친 찰나의 순간과 유명인의 특별하고 사적인 장소와는 또 다른 방식의 사진으로 담아낸 일상을 마주할 수 있는 전시다.

우에다 쇼지 회고전 사진들로 바뀐 피크닉의 파사드. 이미지 제공: 피크닉
자화상 ‘점프하는 나’(1949) © SHOJI UEDA 이미지 제공: 피크닉

일본 연출 사진의 선구자

1913년 일본 돗토리현 사이하쿠군 사카이마치(현 사카이미나토시)에서 태어난 우에다 쇼지는 열 살 무렵 이웃집 청년의 집에서 현상하는 장면을 보고 처음으로 사진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18세에 예술 사진을 지향하는 지역 사진가 단체인 ‘요나고 사우회’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실 세계를 재현하거나 묘사하는 것이 아닌 피사체를 오브제처럼 화면에 배치하는 사진 스타일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모델과 예술 사진작가들’(1949) © SHOJI UEDA 이미지 제공: 피크닉
‘모래언덕 위의 군상’(1949) © SHOJI UEDA 이미지 제공: 피크닉

우에다 쇼지는 대도시로 나가는 대신 일본의 변방인 고향에 평생 머무르며 그곳의 인물과 풍경을 카메라로 담았다. 돗토리현의 거대한 모래언덕(사구)은 그에게 창작의 원천이었고, 그는 이곳에서 일상의 풍경을 초현실적으로 재구성했다. 모래언덕 위 강렬한 빛과 그림자, 회화처럼 배치된 인물과 사물… 우에다 쇼지의 독자적인 사진 세계는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를 연상시키며 ‘우에다조(Ueda-cho, 우에다 스타일)’라는 고유명사로 불린다. 일본 사진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거장으로 우에다 쇼지가 남긴 작품들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 프랑스 국립도서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도쿄도 사진 미술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는 1989년 일본사진협회로부터 공로상을, 1996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상했다.

‘눈의 표면’(1954) © SHOJI UEDA 이미지 제공: 피크닉

“단순화된 모래와 하늘과 바다의 세계, 어디를 보고 어디를 잘라도 모두 사진이 된다.
모래언덕은 말하자면 ‘빼기의 미학’이 있는 풍경의 장소이다.”

_ 우에다 쇼지

우에다 쇼지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

1층 전시장 입구. 이미지 제공: 피크닉
오늘날 인스타그램처럼 정방형으로 찍힌 사진들. 우에다 쇼지가 만난 사람과 풍경들이 담겼다. 이미지 제공: 피크닉
우에다 쇼지의 후기 컬러 사진. 이미지 제공: 피크닉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은 70여 년 동안 현역으로 활동한 우에다 쇼지의 작품을 총망라한 전시다. 전시는 어린 시절의 습작부터 ‘모래언덕’ 연작, 어린이들의 초상, 정물과 후기 컬러 사진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대표작들을 테마별로 구성해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전시 타이틀의 모티브가 된 모래언덕 사진들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1930년대 후반부터 10여 년간 집중적으로 촬영된 인물 군상에서 세련된 우에다 쇼지의 연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1층부터 4층까지 세심하게 짜여진 공간에서 마주하는 우에다 쇼지의 사진 일대기. 작가가 생전에 직접 인화한 오리지널 프린트로 볼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의 전시 공간 디자인

패브릭을 활용해 모래알의 질감을 표현했다. 이미지 제공: 피크닉
작은 모래언덕을 만든 2층 전시 공간 디자인. 이미지 제공: 피크닉
가족의 초상이 걸린 작은 방은 누빔 처리된 패브릭을 부드럽게 둘렀다. 이미지 제공: 피크닉

​한편, 이번 전시는 공간 디자인과 도록 등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많다. 전시 공간 디자인은 르메르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 오설록 제주 티뮤지엄 등 공예적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작업을 진행해 온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의 임태희 소장이 담당했다. 임태희 소장은 ‘모래극장’이라는 타이틀에 맞춰 모래언덕 모티브를 곳곳에 활용했으며, 패브릭을 주 소재로 사용해 모래알의 질감, 가족의 따스함을 공간에 표현했다. 각 작품에 붙은 캡션 또한 손바느질한 패브릭으로 만든 것. 정성스러운 인상과 함께 늘 자신을 ‘시골에 사는 아마추어’라고 표현하며 사진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추구한 우에다 쇼지의 겸손함과 열정을 떠올리게 한다. 도록은 시각예술 전문 출판사 닻프레스와 협력해 ‘모래언덕’ 연작을 중심으로 엮은 사진집 형태로 완성됐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근 10년 만에 소개되는 우에다 쇼지의 신간이다.

‘아빠와 엄마와 아이들’(1949). 모든 인물이 일직선상에 자리한 것처럼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 SHOJI UEDA 이미지 제공: 피크닉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컬러 걸작인 ‘하얀 바람(白い風)’ 연작과 후기 패션 사진 등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든 우에다 쇼지의 주요 작품들을 빠짐없이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자리. 돗토리현 모래언덕 위에서 꽃피운 우에다 쇼지의 예술적 열정을 만날 수 있는 〈우에다 쇼지 모래극장〉전은 2025년 3월 2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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