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무대를 입히는 의상 디자이너
메르세데스 아르투로를 만나다
의상 디자인부터 설치 미술, 가상현실 프로젝트까지. 독창적인 스타일로 영화와 다원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메르세데스 아르투로(Mercedes Arturo)와 그녀의 창작세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메르세데스 아르투로(Mercedes Arturo)는 사랑과 예술적 야망을 안고 대륙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 왔다. 영화와 다원 예술(multidisciplinary arts)의 경계를 허무는 그녀는, 의상 디자인부터 설치 미술, 가상 현실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야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연출가이자 시각 예술가로서 메르세데스는 영화, 설치, 도자기 등 여러 예술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실험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추구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그녀의 스튜디오 라바(LABA)는 창작의 중심지로, 조각, 영상, 대본 리딩, 워크숍 등이 열리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그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해 보편적 감정과 미학적 깊이를 아우르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녀의 창작 과정에 있어 로스앤젤레스 터전은 도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메르세데스는 LA가 제공하는 무한한 자유와 영감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며 활기찬 예술가들이 모이는 이 도시에서, 자신의 내러티브와 색채, 질감이 살아 숨 쉬는 스튜디오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인터뷰에서 메르세데스는 어떻게 문화적 정체성과 예술적 자유가 그녀의 작업에 깊이 스며들었는지, 그리고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어떤 과정으로 그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경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그녀의 창작 세계를 소개한다.
Interview
메르세데스 아르투로
연출가이자 시각 예술가
—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영화 제작자이자 다분야 예술가로서의 경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자 미국(뉴욕으로)에 왔고, 영화와 날씨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에 이주하게 되었지요! 니코(남편 니콜라스 카사베키아)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뉴욕에 살고 있었어요. 장거리 연애 끝에 함께 살기로 결심하고 뉴욕으로 이주했습니다. 하지만 한겨울 뉴욕에서 좀 더 따뜻한 곳으로 이사하면 어때, 라고 제안했고 둘 다 영화 일을 하고 있으니 LA로 가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어요. 그렇게 7년이 지나고 어느덧 로스앤젤레스는 저희의 화창한 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LA에 정착하기 전부터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이 도시의 신비로움은 제 커리어를 보다 심화시켜 준 곳이지요. 수많은 영화 제작이 이루어지고, 그보다 더 많은 예술가와 감독들이 거주하는 곳. 유명 독일 감독 헤르조그(Werner Herzog)가 “캘리포니아는 문화 운동의 중심”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런 말은 한 그가 캘리포니아에 사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곳은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모여드는 국제적인 커뮤니티가 있으며 창조를 자극하고 도전을 장려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2024년이 영화 업계가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해였지만, 여전히 열정이 넘치는 도시지요. 따라서 LA는 넓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면서도, 교외다운 고요함과 넓은 공간을 갖추어 창의성을 키우기에 완벽한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지역에서 스튜디오 라바를 설립했습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워크숍과 대본 리딩, 미술 전시회를 열고, 조각과 사진을 전시하며, 제가 작업하는 프로덕션의 의상도 준비하곤 하지요.
— 작품에서 탐구하기로 선택한 주제에서 문화적 정체성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이방인의 시선은 일상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해주기에 늘 같은 일상도 제법 흥미롭습니다. 제 오브제나 단편 영화도 처음엔 순수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숨겨진 비밀을 발견할 수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폴 보울스(Paul Bowles)는 여행자와 관광객의 차이를 두는데, ‘여행자는 (대상을) 두 번 본다’고 한 바 있지요. 그래서 저는 창작 과정에서 세상을 두 번 바라보는 여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문화적 정체성의 굴레를 느끼지만, 저는 그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습니다. 자라면서 선입견을 버리고 남의 기준에 맞추지 않는 법을 배웠어요. 언제나 똑같은 것은 지루하니까요! 이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연은 언제나 질서와 혼돈, 조화와 야생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신비로운 매력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신비를 두려워하고 분류하고 예측하기를 좋아하지만, 저는 효율 중심적 사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제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으로 더 풍부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늘 변화하는 문화적 패치워크와 같아서, 어쩌면 이런 저항감도 제 아르헨티나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디자이너님의 예술적 스타일은 어떻게 발전해왔나요?
제가 가장 오래 해온 분야는 의상 디자인입니다. 처음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독립 극장에서 연극을 위한 의상을 제작했어요. 이후 디즈니 라틴 아메리카 공연을 위해 디자인하며 남미 전역을 순회하게 되었죠. 단편 영화, 장편 영화, 시리즈, 광고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거치며 저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의상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더 큰 도전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전문적인 현장에서 일해보니 독립 극장에서 쌓은 경험이 큰 자산이었음을 깨달았어요. 가장 큰 발전은 제 자신감이었고, 다양한 매체에서 시간, 예산, 승인 절차, 피드백을 조율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래도 이 모든 창조 과정은 여전히 저에게 하나의 ‘게임’처럼 느껴져요. 색색의 천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즐거운 게임이죠.
— 단편 영화와 의상디자인, 설치미술, 조각 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시나요?
설치 작품은 의상처럼 이야기를 전달하는 또 다른 방식이며, 일종의 비언어적 극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것과 비슷하죠. 대본에서는 장면과 캐릭터를 묘사하고, 그 캐릭터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직물, 색상, 구조, 조합으로 대사를 풀어나갈 때도 있어요.
이를테면 가상현실 배틀스카(BattleScar)를 공동 집필하고 인스탈레이션을 디자인하면서 이 두 가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대본에서는 정확하고 엄격한 표현을 지향하지만, 설치물과 의상에는 스펙터클과 놀이의 개념이 항상 깃들어 있어 더 자유롭고 장난스러운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었지요. 추상 도자기 조각 컬렉션인 페일 가든(Pale Garden)에서는 이 언어를 사용해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이 이 작품을 한 번 더 바라보게끔 유도했습니다. 각각의 조각은 독립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모였을 때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니까요.
— 가상 현실 경험을 제작할 때 직면한 주요 도전 과제는 무엇인가요?
가상 현실은 새로운 내러티브 매체라 스크립팅(대본 제작) 과정에서 많은 자유가 주어졌고, 보다 문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배틀스카는 7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펼쳐지는데, 이 작품을 위해 저는 3개의 인스톨레이션을 디자인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70년대 후반 뉴욕에서 주인공이 살던 스쿼트 방을 선댄스(Sundance) 영화제용으로 제작했습니다. 두 번째는 트라이베카(Tribeca)를 위한 것이었는데, 기술 지침을 받았을 때 아무것도 칠하거나, 쓰거나, 붙이거나, 못을 박을 수 없는 빈 공간에 설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완전히 하얗고 손댈 수 없는 방에 펑크 공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래서 다양한 시도와 실패 끝에 방을 어둡게 만들고 특수 램프를 설치해 빛을 통해 그래피티를 투사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과제는 베니스 축제를 위한 설치물을 창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설치물은 펑크 디스코텍의 화장실로, 전설적인 CBGB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 외진 섬이었기에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베니스 외곽에 있는 상점에 가야 했고, 두 번의 배와 버스를 환승해가며 왕복 3시간이 걸려 이동했습니다. 다행히도 필요한 자재들을 한 번에 구할 수 있어서 그 외에 불필요한 시간 낭비는 없었지요.
— 영화로 진출하기 전에 연극과 관련된 활동을 하셨는데, 그중에도 특히 의상과 세트 디자인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항상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지만 졸업 후 바로 영화를 공부하기에는 제가 너무 순진하다고 모자란다고 느꼈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영화 제작이 매우 비쌌고, 지금처럼 스마트폰만으로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대중화되지 않은 예술이었지요. 반면 연극은 배우와 관객만 있으면 충분했지요. 2000년대 초반, 저도 아르헨티나도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다양한 연극이 열렸어요. 처음부터 연극을 제작하는 일은 매우 아름다운 집단적 경험입니다. 작은 연극에서 의상과 세트를 디자인하면서 쇼윈도 디스플레이, 설치 미술, 퍼포먼스, 오브제 작업을 하며 틈틈이 글도 썼습니다.
그 이후 유럽에서 살다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왔을 때, 그제야 저는 저만의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어요. 더 이상 순진하지 않았고, 연극이 아닌 카메라로 움직이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32살이었는데, 저는 두 번 생각 하지 않고 아르헨티나 국립실험영화제작학교(Escuela Nacional de Experimentación y Realización Cinematográfica -ENERC)에 입학했고, 새로운 시각 언어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된 셈이지요.
— 그 많고도 다양한 일들과 워라벨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나요?
(웃음) 균형이요? 균형이란 없습니다. 제 삶은 엉망진창입니다. 영화는 매우 느리지만 매우 강렬한 예술이기 때문에 때로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일만 하다가도, 몇 주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조각으로 피신하기도 하고 때로는 글을 쓰기도 하죠. 이처럼 제 생활은 열정적이고 시끄러운 활동과 고독하고 인내심을 동반한 섬세한 작업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입니다. 균형은 고요함과 격렬함을 오가는 그 어딘 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창작 과정과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요?
모든 프로젝트는 다르고, 분야마다 고유한 창작 과정이 필요합니다. 글을 쓸 때는 꿈이나 이미지, 직관에 집중하는데, 이후에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죠. 공동 집필을 좋아해서 그 과정이 더 즐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면, 의상 작업은 조금 더 장난스럽습니다. 20대 때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면서 인형 놀이 같다고 느꼈어요. 배우를 위한 마네킹을 바꿔가며 놀이를 이어갔죠.
조각은 명상처럼 직관에서 시작되지만, 동시에 매우 정교한 기술을 요구합니다. 영화 연출은 이 모든 요소의 집합체예요. 직관, 놀이, 육체적 노력, 계획, 인내, 그리고 정밀한 기술까지 필요하죠. 무엇보다 팀워크가 필수적입니다!
— 창작 활동에 여러 분야를 결합하고자 하는 아티스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Antonio Machado)는 ‘길은 걸으면서 만들어진다(Caminante, no hay camino, se hace camino al andar)’는 구절로 유명하지요. 그의 시처럼 창작의 길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여정입니다. 때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있을 수도 있고, 창작자로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에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자유롭게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길은 직선보다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되어 참고할 만한 팁이나 지도가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 길이 불완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그 점이 아름다운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진정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