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 디자인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우리도 아름다운 주민등록증을 가질 권리가 있다
고등학교 때, 기억나는 순간 중 하나는 친구들과 손잡고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다. 아직 청소년의 신분이었지만 발급된 주민등록증을 받았을 때는 마치 내가 성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설레고 왠지 모를 책임감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처럼 주민등록증은 개인을 증명하는 도구이자 동시에 우리의 추억이 담긴 문화이기도 하다.
주민등록증의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
개인의 신분을 증명해주는 주민등록증은 그를 지칭하는 이름은 다르지만 세계 대다수의 나라에서 발급해왔다. 신분증의 역사도 깊은데, 과거의 주민등록증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조선시대의 호패가 떠오른다. 신분에 상관없이 남성에게 발급했던 호패는 세금과 부역 등 국가 행정관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도구였다. 성별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정한 나이(만 17세)가 되었을 때, 반드시 발급해야 하는 지금의 주민등록증은 1960년대 주민등록법이 실행되고 1970년에 주민등록증 발급이 법제화되면서 정착되었다. 디자인은 3번의 과정을 거쳐 개선되었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은 1999년 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된 것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행정 시스템이 일상화되면서 모바일 주민등록증도 등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오랜 시간동안 주민등록증 디자인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주민등록증은 공공디자인 중에서도 공공인증물 디자인으로 포함된다. 공공인증물 디자인에는 주민등록증 외에 자동차번호판, 여권, 운전면허증과 같은 국가발행 신분증이 포함된다. 이는 크기가 작고 이동성이 높다는 특징을 지니는데 간혹 그 이유로 중요성이 간과되어 디자인 변화가 늦다는 단점이 있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 국민의 디자인 감도가 높아지면서 공공인증물 디자인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그에 따라 자동차 번호판과 여권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했고 국민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하지만 주민등록증은 여전히 똑같은 디자인으로 수십년 간 존재하고 있다. 사실,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과 같이 우리가 항상 지니고 다니고 일상생활에서 자주 마주하는 공공물일수록 디자인을 더 살펴보고 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특히 ‘사회 변화에 맞춰 공공디자인도 변화해야 한다’는 최근 디자인 흐름으로 보자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주민등록증이야말로 사회와 시대에 맞춰 한 걸음 더 앞서간 디자인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디자인 방향성을 점검하는 토론회
이에 행정안전부와 한국디자인·공예진흥원은 주민등록증 디자인 개선 사업을 진행 중이다. 몇몇 사람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지금이여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다. 그래서 지난 9월, 두 기관은 주민등록증의 개념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디자인 방향성을 점검하는 <주민등록증 디자인 개선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는 사회, 역사, 디자인, 기술 등 다양한 관점을 통해 주민등록증을 바라봄으로써 좋은 인사이트를 전달했다.
토론회에 따르면, 주민등록증 디자인 개선에 앞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조건이 있다. 먼저 주민등록증에 관한 국민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주민등록증은 국가가 국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탄생했기에 국민은 반드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에는 이 의무가 국가 통제를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고 보장받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이제 병원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 해야 한다. 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주민등록증은 일상에서 국민의 권리를 당당하게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다. 인식 변화는 자연스럽게 디자인 개선으로 이어진다. <주민등록증 디자인 개선 토론회>에서 최범 디자인평론가는 “오늘날 주민등록증은 감시, 관리, 억압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이는 곧 이전보다 자유롭게 디자인해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대신 앞으로의 한국 사회에서 주민등록증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를 고려하면서 디자인해야 한다고 주의사항을 덧붙였다.
동시에 주민등록증이 우리에게 지닌 의미도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 60년 동안 3차례의 개선과 보완을 거치면서 주민등록증과 그 안에 담긴 정보들(이름, 주민등록번호 등)은 우리 일상 전반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디지털화된 행정 및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며, 수월한 행정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줘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삶과 가까운 주민등록증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하나의 문화로서도 작용한다. 토론회에서 신분증 제도의 변천사를 발표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시설기획과 김권정 학예연구관은 주민등록증이 성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한국 문화와 유명 캐릭터나 인물에게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주는 현상을 예로 들면서 주민등록증과 주민등록번호를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 설명했다.
우리 삶에 깊게 연결된 주민등록증이야말로 제대로 된 디자인이 필요한 공공재다. 특히 고령화, 디지털화 등 앞으로 달라진 한국 사회의 모습을 예측해보면 지금보다 가독성이 높고 안전한 주민등록증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작점엔 반드시 디자인 관점으로 바라보고 공공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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