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말하는 공산품의 아름다움은?
DDP 둘레길갤러리에서 만나는 <공산품 미학>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둘레길갤러리에서 공산품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오는 2025년 3월 3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이름은 <공산품 미학>. 산업 디자이너이자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학과 재직 중인 김성곤 교수가 수집한 500여 개의 공산품을 소개한다. 디자이너가 바라본 대량 생산 제품의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일상 속 사물을 새롭게 바라본 전시를 지금 만나보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 둘레길갤러리에서 대량생산된 제품의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0월 15일부터 오는 2025년 3월 3일까지 열리는 전시 <공산품 미학>은 산업 디자이너이자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학과에 재직 중인 김성곤 교수가 지난 세월 직접 구매하고 사용해 온 약 500여 개의 공산품을 소개한다. 영국 유명 디자인 회사 펜타그램(Pentagram)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케네스 그란지(Kenneth Grange)가 디자인한 파커 만년필, 무인양품에서 만든 나오토 후카사와(Naoto Fukasawa)의 디자인펜,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의 니콘 카메라, 루이지 꼴라니(Luigi Colani)의 캐논 카메라 등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수집한 공산품을 통해 제품이 지닌 사용성과 심미성을 높인 디자인의 가치를 재조명하며, 일상 속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다.

디자이너 방식으로 탄생한 회화
산업 디자이너가 수집해 온 공산품을 나열한 이번 전시의 시작은 다름 아닌 김성곤 교수가 그린 그림 ‘전산정물(電算靜物)’이다. 전산정물은 디자이너가 제품을 디자인하는 방식을 적용해 제작한 그림으로 조형과 감성의 미학을 표현한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이다. 그는 전산정물을 그리게 된 배경으로 “디자인적으로 아이코닉한 물건을 좋아하는데 이를 소유하고, 사용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림으로 옮겨 빈 공간에 걸어두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그래서 직접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죠.”라고 말한다.
전산정물은 ‘디자이너의 발상’에서 시작해 ‘디자이너의 태도’로 완성됐다. 즉, 디자이너가 일하는 방식으로 그림이 완성된 셈이다. 산업 디자이너를 포함해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1mm의 오차를 두고 달라질 결과물에 대해 고민하듯 전산정물의 모든 선과 색에는 제작자의 의도와 계획이 깃들어 있다. 이를 위해 컴퓨터 작업으로 제품을 모델링 했다. 한 그림 안에 사물을 배치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각도를 찾고, 아크릴을 이용해 직접 채색을 더했다.


전시장에 놓인 ‘전산정물’ 작품을 둘러보다 보면 초창기에는 색채를 풍부하게 활용했으나 최근 작업에 이를수록 무채색에 가깝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림을 오래 두고 보기 위해서는 색채를 빼야 하더라고요. 색을 뺄수록 그림에 더욱 깊게 스며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성곤 교수가 전산정물 작품에 색상 적용을 달리한 이유다.
아울러 전시장 속 ‘전산정물’ 작품을 그림 속 실제 제품과 함께 배치한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를 두고 그는 “관람객이나 대중이 직관적으로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핸드폰 하나를 사도 이에 대한 디자인 설명서를 주진 않잖아요. 텍스트 중심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이미지의 시대인 만큼 이미지를 통해 직관적으로 감상하시길 바랐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전산정물 작품뿐만 아니라 전시장에 놓인 500개의 공산품에 대한 설명을 간소화한 배경이기도 하다.
디자이너가 말하는 공산품의 매력
디자이너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가 디자인한 뱅 앤 올룹슨(Bang & Olufsen)의 ‘베오사운드 센츄리 오디오’부터 애플(Apple)의 조너선 아이브(Jonathan Paul Ive)가 디자인한 ‘맥북’, 피터 슈라이허(Peter Schreyer)의 ‘아우디 TT’,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브라운 커피 메이커’ 등 디자인 박물관을 방불케하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한 개인의 수집품 또는 취향을 공개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무엇보다 김성곤 교수는 이번 전시를 두고 디자이너가 일상 속에서 디자인과 가까워져야 함을 강조한다. 실제로 본인이 사용했거나 사용 중인 제품을 전시장에 가져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뱅 앤 올룹슨의 ‘베오사운드 센츄리 오디오, 그리고 소니(Sony)의 워크맨 TPS-L2 등 오디오 제품을 사게 된 배경도 일상 속에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디자이너의 자세와 맞닿아 있다. “처음에 음악을 듣고 싶어서 워크맨을 산 게 아니었어요. 디자인에 매료되어 구매하게 됐죠. 그 이후에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그러니까 저에게 음악보다 디자인이 더 먼저였던 셈이죠.”


이외에도 외국 여행을 떠날 때마다 하나씩 챙겨오는 코카콜라 병도 일상 속에서 디자인을 늘 가까이하는 디자이너의 자세를 보여준다. 태국, 이집트, 프랑스 등 각 국가마다 다른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디자인을 보는 모습이 단순히 수집하는 것 이상으로 재밌다고. “반복하고 대량 생산하는 공산품만큼 매력적인 게 없어요. 개인의 취향과 시선으로 탄생한 예술품과 달리 공산품은 아이디어부터 양산 과정에서 수많은 관여자들의 가치가 조율되면서 최적의 아름다움에 이르기 때문이죠.”
보편적인 아름다움은 존재하는가?
김성곤 교수의 말처럼 공산품은 한 명의 아이디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디자이너, 엔지니어, 개발자, 기획자, 마케터 등 한 제품을 위해 기업 또는 브랜드 내 수많은 관계자들의 협업을 필수로 한다. 즉, 각각의 직무에서 제시하는 의견이 더해져 최적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것이다. 즉, 공산품은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다. 여기에는 대중 또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이 제품을 공감하지 못하고 구매하지 않는다면? 보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대는 사라지고 제품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그는 대중이 지속해서 구매할 수 있도록 매력적인 디자인을 갖추는 것. 이것이야말로 디자이너의 역량이자 역할이라고 말한다. 제작 과정 속 갈등을 중재하고, 아름다움에 관한 각기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기술과 서비스를 현실화하고, 대중에게 너무 멀어지지 않는 크리에이티브를 갖출 때 비로소 공산품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한편 보편적인 아름다움은 시대의 환경과 기술에 맞춰서 최적화되기도 한다. 이는 전시장에 나열된 각기 다른 버전의 애플 맥북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이 이번 전시를 찾는다면 과거에 어떤 식으로 디자인했는지 유심히 살펴봤으면 싶어요. 어떤 디자인 언어를 적용했는지, 비례감은 어떠한지.. 이런 건 실물을 실제로 봐야지 감을 익힐 수 있거든요. 디지털 인터페이스에만 몰두하지 말고 실제 일상 속에서 디자인을 가깝게 바라보는 자세를 갖췄으면 합니다. <공산품 미학>이라는 전시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