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꾼 폴란드 포스터

이함캠퍼스에서 만나는 <침묵, 그 고요한 외침>전

문화복합 공간 이함캠퍼스에서 국내 최초의 대규모 폴란드 포스터 전시가 열리고 있다. 글로벌 그래픽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꾼 폴란드 포스터를 선보이는 전시 <침묵, 그 고요한 외침>는 오는 2025년 6월 22일까지 만날 수 있다.

포스터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꾼 폴란드 포스터

경기도 양평에 자리한 문화복합공간 이함캠퍼스에서 국내 최초의 대규모 폴란드 포스터 전시를 선보인다. 지난 11월 22일부터 2025년 6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침묵, 그 고요한 외침>전은 세계 포스터 디자인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적인 폴란드 포스터를 선보인다. 이함캠퍼스를 운영하는 두양문화재단이 소장해 온 1만 점의 폴란드 포스터 중 약 200점의 포스터 그래픽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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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그 고요한 외침>전 포스터

이번 전시 <침묵, 그 고요한 외침>은 총 6가지 테마로 구성되었다. ‘폴란드 포스터 학파’부터 ‘폴란드 포스터 키워드 10’, ‘폴란드 포스터 학파 디자이너들 10인’, ‘빅토르 고르카의 에스키스와 포스터’, ‘포스터, 폴란드 현대사의 그래픽 연대기’, ‘바르샤바 거리 예술의 발자취’까지,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진 폴란드 포스터 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을 살펴볼 좋은 기회다.

폴란드 포스터 학파의 그래픽 디자인

폴란드 포스터는 1950, 60년대 세계 그래픽 디자인계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포스터 디자인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보다는 대중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디자인되었다. 반면 폴란드 디자이너들은 함축적이고 개념적인 방식으로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이들은 ‘폴란드 포스터 학파(Polish School of Posters)’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들이 선보인 독창적인 그래픽 디자인은 후세대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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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스 트렙코프스키, <안 돼!>, 1952, 오프셋, 98×65.5cm

폴란드 포스터 학파에 대한 소개는 전시의 첫 번째 섹션에서부터 작품과 함께 만날 수 있다. 폴란드 포스터의 개척자라고 불리는 타데우스 트렙코프스키(Tadeusz Trepkowski)가 대표적이다. 그가 디자인한 <안 돼!(NIE!)>(1952)는 가장 단순한 시각 언어로 반전의 메시지를 전한다. 거대한 폭탄 실루엣 안에는 파괴된 건물과 희미하게 표현되었지만 이를 뒤덮은 연기가 보인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폴란드 자국민에게 전쟁의 잔혹한 참상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그는 폴란드어로 ‘안 돼’라는 뜻을 지닌 ‘NIE!’라는 글자로 ‘전쟁은 파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폴란드 포스터 학파는 영화 포스터 분야에서도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발데마르 시비에르지(Waldemar Świerz)가 디자인한 1950년 개봉작 <선셋대로(Sunset Boulevard)>의 포스터가 대표적이다. 앞서 영화 포스터 디자인은 주로 배우를 전면에 내세우고, 영화 속 장면을 콜라주 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폴란드 포스터 학파는 영화의 내용, 인물, 장면을 회화적으로 해석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영화 <선셋대로>는 한물간 왕년의 여배우가 환상과 망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내용을 다루는데, 발데마르 시비에르지는 인물의 광기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여러 갈래로 공중에 뻗친 머리카락, 광기 어린 시선, 그리고 강렬한 색채 대비를 통해 영화 내용과 장면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예지 플리삭이 디자인한 명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1953) 포스터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영화는 한 왕국의 공주인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답답한 왕실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공주 역할을 맡은 배우 오드리 헵번과 미국인 기자 역할을 한 배우 그레고리 펙, 두 인물을 강조한 오리지널 포스터와 달리 예지 플리삭은 영화 내용을 암시할 수 있도록 포스터 디자인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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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레니차, <알반 베르크 보체크>, 1964, 오프셋, 97×67.5cm

1966년 제1회 바르샤바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얀 레니차의 <알반 베르크 보체크>는 폴란드 포스터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는 1964년 바르샤바 국립 오페라단의 공연 오페라 <보체크(Wozzeck)>를 위해 제작한 포스터로 오페라의 내용을 압축해 상징적인 이미지로 해석한 폴란드 포스터 학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인간의 내면적 고통, 사회적 불평등, 억압과 폭력을 주제로 한 작품 내용은 폴란드의 민중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얼굴의 구체적인 특성 없이 입만 남은 포스터 속 이미지는 익명의 민중을 표현한다. 즉, 작품 내용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당시 폴란드의 시대상까지 반영한 셈이다.

폴란드 포스터를 말하는 10가지 키워드

이어지는 두 번째 섹션과 세 번째 섹션에서는 폴란드 포스터 학파의 디자인 특징을 10가지 키워드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며, 이를 대표하는 10명의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전시는 폴란드 포스터 학파의 디자인은 특정 양식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음을 말한다. 양식이 아닌 이는 일종의 태도에 가깝다고. 폴란드 포스터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은유와 암시, 유머, 호기심과 상상력, 얼굴의 힘, 단순성과 대비, 레터링과 이미지의 통합, 콜라주와 페이퍼 컷 아웃, 회화적 서정성, 사진의 회화적 변형, 그리고 전시는 폴란드 포스터 학파 그 이후의 경향도 함께 소개한다.

더불어 폴란드 포스터 학파를 대표하는 10인의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섹션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에릭 리핀스키, 타데우스 트렙코프스키, 헨리크 토마셰프스키, 보이치에흐 팡고르, 빅토르 고르카, 보이치에흐 자메치니크, 얀 레니차, 얀 믈로도제니에츠, 로만 시슬레비치, 발데마르 시비에르지 등의 대표작을 함께 살펴본다면 앞선 섹션에서 소개한 10가지 키워드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 테다.

2층 전시장에서는 10인의 디자이너 중 빅토르 고르카와 그림의 스케치와 같은 에스키스(esquisse)를 정식 포스터로 만든 그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한 공간도 마련했다. 약 30점의 작품이 소개되며 에스키스를 통해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이미지로 발현되는지 그 일련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지하 전시장 두 곳에서는 다섯 번째 섹션 ‘포스터, 폴란드 현대사의 그래픽 연대기’와 여섯 번째 섹션 ‘바르샤바 거리 예술의 발자취’를 주제로 폴란드 포스터와 폴란드 디자인 역사를 상세한 설명과 함께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폴란드 포스터를 작품이라는 결과물로만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폴란드의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래픽 디자인사에서 이들이 주목받게 된 시대적 배경과 맥락을 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전시 내용의 깊이가 남다르다.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는 전시가 궁금하다면 이함캠퍼스로 향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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