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캡슐, 2023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 국제전 우승
디자인과 공학의 만남으로 일상 속 문제를 해결하는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의 올해 국제전 우승작이 발표되었다. 국내전 입상작 ‘골든 캡슐’이 한국 최초로 국제전에서 최종 우승을 거두어 화제를 모았다.
국제전 우승을 일궈낸 골든 캡슐의 차별점
유수의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을 살펴보면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주로 뛰어난 심미성과 기발한 아이디어, 뚜렷한 콘셉트에 높은 가치를 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엔지니어링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기술의 구현 가능성과 효율성 역시 디자인에서 빠질 수 없는 덕목임에도 말이다. 지난 19년간 국제 학생 엔지니어링 및 디자인 공모전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꾸준히 발굴해 온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한국, 영국, 미국, 호주 등 총 30개국에서 개최된 이 어워드는 공학과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는 전 세계 인재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국제 무대에 선보이도록 지원한다. 국가별로 국내전에서 우승 및 입상한 출품작들을 취합해 국제전 우승 후보작을 추린 뒤, 창립자이자 수석 엔지니어인 제임스 다이슨이 직접 최종 우승작을 선정한다. 올해 특기할 만한 점은 어워드 최초로 한국 학생들의 작품이 국제전 우승작으로 선정되었다는 것.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학부에 재학 중인 대학생 4명으로 결성된 골든 캡슐 팀은 응급용 무동력 수액 주입 장치를 고안해 국내전 입상에 이어 국제전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골든 캡슐은 재난 현장에서 수액 팩을 들고 구조 활동을 벌이는 의료진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아이디어이다. 일반적으로 수액 팩은 중력을 활용해 체내로 수액을 주입하는데 현장 상황과 조건에 변수가 많은 만큼 신속한 주입이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점에 주목한 골든 캡슐 팀은 링거의 사용성을 개선하고자 중력 대신 기압 차를 활용하는 방식을 디자인했다.
투명한 플라스틱 쉘 안에 풍선과 유사한 형태의 탄성체가 들어가도록 설계해 내부 기압에 따라 수액이 이동하도록 했다. 쉘 내부를 밀폐시켜 저기압 상태가 되면 수액을 머금으며 탄성체가 부풀어 오르고, 공기가 들어가면 수축하며 담고 있던 수액을 분출한다. 쉘 안으로 유입되는 공기량에 따라 분출되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또 정확한 속도를 파악하는 가시화 장치와 눈금 그래픽을 쉘 외부에 추가해 주입 현황을 쉽게 확인하게 했다. 의료용 제품의 특성상 환자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가볍고 튼튼한 PET 소재로 쉘을 구성하고, 수액과 직접 접촉하는 탄성체에는 수술용 장갑에 쓰이는 소재를 사용했다.
심사에 참여한 이수정 다이슨 엔지니어는 골든 캡슐에 대해 “문제점과 적용 분야에 집중해 문제 해결성이 명확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팀 리더를 맡은 채유진은 “앞으로 사용성과 안전성을 더욱 개선해 상용화까지 이어 나가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jamesdysonaward.org/ko-KR
골든 캡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다
골든 캡슐 팀
채유진, 김대연, 신영환, 백원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중요시하는 공모전이다.”
팀 결성 배경이 궁금하다.
우리는 홍익대학교 디자인엔지니어링 융합 전공의 ’융합설계 프로젝트’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생각의 방향성이나 태도, 관심사 등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팀원들 모두 제임스 다이슨처럼 디자인과 공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치열한 논의 끝에 완성한 골든 캡슐로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에 지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골든 캡슐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나?
팀 리더인 채유진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링거를 단 상태로 생활하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수액을 맞으며 생활하는 환자들의 이동성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처음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하지만 올해 초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한 소식을 뉴스로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골든 캡슐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재난 현장이라고 판단해 방향성을 바꾸게 됐다.
본격적으로 디자인하기 전 의료진들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례로 쓰촨성 지진 현장에서 일했던 중국 의료진들과 인터뷰한 적 있다. 건물 잔해가 가득한 거리에 여진이 계속 발생할뿐더러, 비가 내리면 순식간에 지면이 진흙탕이 돼 걷기만 해도 체력을 많이 소진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수액 팩을 여러 개 들고 구조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또 주입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의료진들은 수액을 빨리 이동시키고자 종종 직접 팩을 손으로 쥐어짜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과 체력을 낭비해야 한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경험이 많은 의료진일수록 우리의 아이디어와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했다.
디자인 과정에서 맞닥뜨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속도 조절 장치를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공기의 유량으로 수액의 주입 속도를 조절할 방법이 필요했는데,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오염 문제도 없어야 해서 고민이 많았다. 의료진이 그동안 쓰던 것들과 사용법이 다르면 긴급한 상황에서 곧장 활용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친숙하면서도 직관적인 디자인이 중요했다. 기존 제품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각종 레귤레이터들을 연구한 끝에 롤러를 밀어 튜브를 압착하는 방식을 응용해 제품에 적용했다.
2024년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 참가자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인에게 용기 있게 질문하길 바란다. ‘일상 속의 문제를 해결한다’라는 광범위한 주제 덕분에 평소 디자이너들이 가진 호기심과 탐구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가 될 것이다.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중요시하는 공모전이다. 창립자마저도 초창기에는 수천 번의 실패를 거쳐야만 했고, 수많은 시도가 밑거름되어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 냈다. 실패마저도 장점으로 거듭날 수 있으니 주저 없이 일단 도전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