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땅 75,010,925평〉전

불탄 숲의 가치를 되살리는 디자이너의 실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전 세계가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졸업생 모임인 홍림회는 이 문제에 창의적인 솔루션을 제안한다.

〈검은 땅 75,010,925평〉전

화재 후 버려진 나무에 대한 이야기

매년 강원도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그 자체로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진화된 뒤에도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손상된 나무를 처리하기 어려운 점도 그중 하나. 제대로 된 용도를 찾지 못해 그대로 버려지거나 장작으로 쓰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졸업생 모임인 홍림회는 12월 2일부터 16일까지 웅갤러리에서 〈검은 땅 75,010,925평〉전을 열어 이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전시 기획 자문을 맡은 베리준오 오준식 대표가 2022년 평화의숲을 통해 화재 후 버려진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게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24명의 회원들은 동해안 지역의 산불로 타버린 적송을 활용해 각자의 개성을 담은 지팡이를 디자인했다. 지팡이는 나무로 만든 도구 중 오랜 기간 사용할 수 있고, 형태적으로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창의력을 선명히 표현하기에 제격이었다.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졸업생 모임인 홍림회.

진정성 있는 디자인은 전시장으로도 이어졌다. 전시 디자인은 홍림회 회원들이 강원도 답사에서 본, 나무 파편들이 땅바닥에 흩어진 광경을 전시장에 구현하겠다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입구에는 산불 현장을 담은 사진들을 전시한 뒤, 이어지는 독립된 공간에 직사각형 전시대를 설치하고 그 위에 24개의 지팡이와 나무 조각을 배치했다. 전시대 뒤 벽에는 산림청에서 촬영한 화재 영상을 상영해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관람객 반응은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전시 공간을 연출한 이정인 작가는 “전시를 본 이들 중 상당수가 더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있는 장소에서 다시 한번 전시를 열어야 한다고 독려했다”고 말했다. 성황리에 전시를 마친 홍림회는 현재 참여 작가를 추가로 모집해 두 번째 전시를 기획 중이라고. 미래의 재앙을 막는 일도 필요하지만 이미 벌어진 비극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번 전시는 디자인이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Interview with

김재현 (사)평화의숲 대표, 전 산림청장

“평화의숲은 시민과 기업의 후원을 받아 산불 피해 지역에 나무를 심고 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길 바랐다. 그을린 나무들이 의미 있게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지팡이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아 걱정되기도 했다. 막상 전시를 보니 영상과 사진, 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예술적으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평화의숲은 이러한 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기능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