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잼잼, 조경규
조경규 개인전 〈허니 머스터드〉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웹툰 작가…. 모두 조경규를 수식하는 말이다. 올해는 여기에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을 것 같다. 2024년 갤러리 지우헌이 선택한 두 번째 작가이기 때문이다.
음식과 가족에 관련된 이야기
지난해 8월 〈오무라이스 잼잼〉 시즌 14 연재가 마무리되었다.
약 14년째 연재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시즌 15 원고를 준비하는 중이며, 상반기 중에 다시 연재를 진행할 계획이다. 2010년 무렵 다음 웹툰(현재 카카오 웹툰)으로부터 백과사전 형식의 만화를 의뢰받았는데 내가 음식 관련 지식을 소개하는 만화를 역제안해 함께 콘셉트를 발전시켜나갔다. 만화를 준비하며 독자들이 정보를 습득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내 가족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의 스토리 전개를 착안했다. 앞으로도 음식과 가족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며 오랫동안 연재하고 싶다.
그동안 수많은 음식을 다뤘을 텐데, 소재가 고갈될 걱정은 없나?
일반적인 음식 만화는 연재 초반에 대중적인 음식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갈수록 희귀하고 독특한 음식을 다루게 된다.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연재 초반부터 불도장, 대만 팥빙수 등 다양한 음식을 소개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마라탕, 탕후루 등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도 소재가 부족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현재는 웹툰 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1세대 웹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웹 디자인을 경험했다. 당시에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직접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나도 포토샵을 책으로 독학하며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내 의도에 따라 디자인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점, 작업물을 수많은 사람 앞에 즉각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수시로 웹사이트 디자인을 바꾸며 늘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그러다 보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퍼졌고, 웹 디자인 회사에서 입사 제안까지 받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웹 디자인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고, 결국 25살에 퇴사한 뒤 유학을 가게 됐다.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를 졸업하고 귀국한 뒤로는 쭉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웹 디자인과 인쇄물 디자인을 병행했다. 전혀 다른 성격의 매체들을 오가며 작업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초창기에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오프셋 인쇄물을 처음 디자인했을 때는 RGB와 CMYK의 차이도 모른 채 포토샵으로만 작업한 적도 있었다. 강익중 작가의 부탁으로 600여 페이지가량의 책을 디자인할 때는 두꺼운 책을 디자인해본 경험도 없고 인디자인을 사용해본 적도 없어 고생을 많이 했다. 방법은 모르는데 시간은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모든 이미지는 포토샵에서, 모든 텍스트는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600여 개의 파일을 인쇄업체에 순서대로 파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무사히 책이 완성됐고, 그때 수고비로 받은 돈으로 인디자인을 구매해 사용법을 익혔다. 그 뒤로도 한동안 웹과 인쇄물을 오가며 작업했고, 현재는 인쇄물 디자인만 하고 있다.
평소 추구하는 디자인 스타일이 있다면?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조경규는 ‘고객 만족’을 위해 노력한다.(웃음) 내가 아무리 내 디자인을 좋아해도 결국 클라이언트의 소유물이 되고 만다. 그러니 굳이 나만의 스타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작업할 때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를 최대한 실현하려 한다. 디자이너로서 내 색깔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스타일은 있다. 그리드 안의 여백을 최소화하고 이미지와 텍스트로 가득 채우는 것을 좋아한다. 중국집 전단지나 과자 봉지처럼 말이다. 이러한 스타일을 ‘생활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전달하기 위해 지면 전체를 빽빽하게 채우려고 최선을 다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떠올리며 영감을 받는다.
처음으로 열리는 회화 작품 전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작품 중에 식품 패키지나 전단지를 본뜬 듯한 것이 많다.
영양통닭 봉투, 스팸 캔, 핫소스와 스리라차 병 등을 그렸다. 내게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들이다. 세상에는 정말 좋은 디자인이 많다는 걸 느낀다. 유명한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디자인 작업을 하는 모든 사람이 훌륭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충무로 인쇄소에서 중국집 전단지를 만드는 직원들도 모두 멋있는 디자이너들이다.
처음으로 진행하는 회화 작품 전시이다. 전시 콘셉트는 어떻게 정했나?
지우헌 갤러리에서 전시를 제안했을 때는 피바다학생공작실(*) 시절에 그렸던 작품들을 다시금 선보이자는 것이 초기 기획이었다. 하지만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재 작업하는 만화의 연장선상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방향성이 달라졌다. 캔버스에 그린 회화 작품과 만화 원화를 중심으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1996년 조경규 작가가 만들고 운영한 웹사이트. 조경규를 비롯한 여러 작가의 그림과 만화를 소개했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내용의 작업물이 많아 당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강제 폐쇄된 첫 번째 웹사이트로 기록되었다.
그림을 그릴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캔버스에 그리는 회화 작품에는 전부 수채 물감인 과슈를 사용한다. 집이 곧 작업실인 내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 유화 물감을 쓰면 기름 냄새가 심해 가족에게 민폐일 테니까. 과슈는 보통 물에 섞어서 사용하지만, 나는 매트한 느낌의 질감을 선호해 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수정이 어렵다는 점이 컴퓨터로 작업할 때와 다른 부분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게 됐다. 잘못 그리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적응한 것 같다.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어릴 적 미술관에 가면 디테일이 많은 작품을 감상하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구성하는 세부 요소들을 하나씩 천천히 살펴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내 작품도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을 선사했으면 한다. 물론 전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관람객의 몫이다. 다만 잠시 스쳐 지나가는 시간은 아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