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하이브리드 디자인 스튜디오, 감프라테시앤피 ②
스칸디나비안 디자인 스튜디오 '감프라테시'와 한국 디지털 아티스트 'Paul씨'의 만남으로 탄생한 서울 디자인 스튜디오 '감프라테시앤피Gamfratesi&P' 인터뷰
▼ 기사는 1편에서 이어집니다.
동서양 하이브리드 디자인 스튜디오, 감프라테시앤피 ①
감프라테시앤피와 에르메스의 협업
감프라테시는 에르메스 매장과 쇼윈도 디자인 작업을 오랜 시간 도맡아 왔다. 특히 최근에 선보인 에르메스 암스테르담 쇼윈도 작업은 두 팀이 처음 합을 맞춘 작업물이라고.
엔리코 에르메스는 저희와 오랜 시간 함께 한 중요한 파트너로 그동안 일본 전역과 동유럽, 이탈리아의 일부 에르메스 매장 디자인과 쇼윈도 작업을 진행했어요. 최근에는 에르메스 암스테르담 지점에만 들어가는 아주 특별한 아트 윈도우를 작업했는데요. 에르메스 암스테르담은 유명 건축 회사인 MVRDV가 디자인한 타운하우스 크리스탈 하우시스Crystal Houses에 입점되어있어요. 매장 전면이 투명한 유리 벽돌로 이루어져 고급스러움이 한껏 고취된 매장이죠. 해당 작업을 진행할 때 에르메스의 요구사항은 오로지 종이만 사용해 달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종이로 19세기 시대를 배경으로 달리는 기차와 마차 그리고 말을 만들어 에르메스 창립 초기부터 역사를 보여줄 수 있도록 했어요.
쇼윈도 연출에 필요한 디지털 요소는 한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Paul씨와 함께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저희는 종이를 접거나 꼬는 등 섬세한 테크닉을 사용해 초현실적인 조형물을 만들었고, Paul씨는 달리는 마차의 창문 밖 풍경을 3분 가량 비중있는 디지털 미디어로 완성했어요. 영상 속에는 말이 지나가거나, 암스테르담의 전경이 펼쳐져 마법과 같은 영상이 구현되었죠. 첫 협업 결과물이지만 퀄리티가 아주 높았고, 저희가 생각하는 아이디어, 마테리얼, 그리고 미디어가 완벽하게 녹아든 아주 좋은 작업이었습니다.
에르메스와 협업을 할 때 주제는 누가 정하는 편인가.
엔리코 에르메스는 해마다 테마를 먼저 정하고 그 테마에 저희를 초대하는 방식으로 일하는데요. 올해의 테마는 ‘와!’를 뜻하는 ‘Astonishment(놀라움)’라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이번 암스테르담 쇼윈도 작업은 스케일을 크게 하고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드로잉과 디지털이라는 다른 툴을 쓰는 것, 유럽과 아시아에서 함께 일하는 것들이 완벽한 조합이라고 생각했고요.
감프라테시와 처음 합을 맞춘 에르메스 암스테르담 쇼윈도 작업은 어땠나.
Paul씨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엔리코가 에르메스와 오랫동안 작업을 해왔다보니 그들이 원하는 톤앤매너를 너무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제가 쉽게 결을 맞출 수 있도록 그러한 점들을 계속해서 설명해줬어요. 디지털 아트를 구현해 나갈 때 요소 하나 하나 엔리코랑 소통하면서 어떤 점을 보완하고 어느 부분에서 힘을 줄지 등등 손발을 맞춰 완성에 이르렀죠. 그리고 이번에 들어간 종이 작품은 대부분 박정언 디렉터가 장인정신을 발휘해 직접 만든 것들이고요. 주어진 시간 대비 구현해야하는 작업량이 방대해서 애를 먹었는데, 그건 박정언 디렉터도 마찬가지였죠. 감프라테시앤피로서 이제 막 작은 발걸음을 떼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저희의 가능성을 본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요. 다음 작업들부터는 미디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싶고요.
미디어 아트의 본질에 집중하다
Paul씨 작가님은 2017년 <오!크리에이터> 인터뷰로 한차례 디자인프레스와 만난 적 있다.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Paul씨 미디어 아트의 본질에 집중 하고 있어요. 아트의 경우 내러티브나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한데 오랜 시간 축적이 필요하고 한 작품에 제가 녹아들어야 하는 부분이라서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거든요. 작가로서 한낱 부끄럼 없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죠. 완전히 파인 아트까지는 아니지만 그 경계에 제 미디어아트가 존재하는 것 같고 미디어의 표현력과 내러티브 같은 요소는 앞으로 산업에서 점점 더 요구될 거예요. 그러한 부분을 생각했을 때 제 작업과 시대의 타이밍이 잘 맞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또 나아가서 저와 감프라테시의 조합이 굉장히 흥미롭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요. 감프라테시는 유럽에서 이미 네임드 디자인 컴퍼니이기도 하고 그들의 작업과 제 미디어 작업이 적절히 혼합되면 독특한 뷰로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최근 아난티 부산에 설치한 공공미술작품 <채움과 비움의 공존>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Paul씨 아난티 부산의 공간이 가지고 있는 대자연을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해 탄생한 작품이에요. 5m 높이의 큰 조형물로 공공미술 최초로 인터랙티브가 되게끔 설계했어요. 보통 지면에서 작업하면 5~6개월 정도 걸릴 프로젝트지만 바다 위에 설치해야 하고 컨펌 과정이 복잡해 1년 이상 걸렸던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공공미술은 첫 작품이라 다가오는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기도 하고, 공모 마지막에 안토니 곰리Antony Gomly와 제 작품 두 개를 놓고 최종 선정된 거라 큰 영광이기도 하고요.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 아난티의 부지에 들어가는 공공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해서 ‘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정의한 쉼은 ‘마이너스’라고 생각을 했고, 또 휴양지에서 좋은 기운을 채워서 돌아오니까 ‘플러스’ 작용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했죠.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현장을 방문했는데 바다의 풍경이 엄청난 영감을 주더라고요. 대자연이 디지털을 이길 수는 없겠다 생각했고 디지털의 가운데를 뚫어 뒤에 있는 수평선을 채운다는 의미를 부여했어요.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날씨 데이터랑 연동이 돼요.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받아 그에 맞는 미디어가 재생되게끔 완성했습니다. 부산에 비가 오면 작품에도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면 함께 눈이 내리는 시스템으로요.
감프라테시앤피의 향후 행보
감프라테시앤피와 별개로 감프라테시의 근황은?
엔리코 폴란드 바르샤바에 220개 룸을 갖춘 호텔을 준비하고 있고 내년 오픈이에요. 이처럼 이제 건축적인 관점에서 Paul씨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디지털이라는 게 예전에 우리가 알던 겉에 씌어지는 레이어의 느낌이 아니라 모든 프로젝트의 첫 시작에서부터 같이 아이디어를 쌓아 나가야 하거든요. 이런 마테리얼과 디지털이 본질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그런 작업을 앞으로도 구상 하고 있어요.
감프라테시앤피 디자인 스튜디오 오픈 소식에 국내 브랜드의 러브콜이 쏟아질 것 같은데.
Paul씨 일단 어제도 국내 브랜드들이랑 여러 미팅이 있었는데요. 감프라테시가 서울에 왔다고 하니까 협업을 문의가 계속 오고는 있어요. 그중 제일 많은 문의가 가구 브랜드 협업이에요. 기존에 감프라테시가 긴 시간 협업하던 가구 브랜드가 있는 만큼 그들과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서 추후 천천히 시도해볼 예정이고요. 우선은 감프라테시나 제가 전문적으로 하던 전시 디자인, 공간 리테일, 공간 디자인 등의 작업으로 먼저 시작을 해볼까 생각은 하고 있어요. 엔리코와 스티나는 둘 다 건축을 전공했고, 그동안의 여러 포트폴리오가 있으니까요. 또 공간을 채우는 조형물은 박정언 디렉터가 그동안 감프라테시 일원으로 많이 해왔던 작업들이라 특화 되어있거든요.
감프라테시앤피의 최종 목표는.
Paul씨 저희 목표는 감프라테시를 차별화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원칙과 가치를 전달하고 이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감각적 기획을 만드는 빔 인터랙티브의 전문 지식과 결합하는 것이에요. 한국의 인테리어 디자인, 설치 및 제품 개발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프로젝트로 찾아뵐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