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사업에 뛰어든 ‘피치스’, 그 이유는?
레드 오션을 블루 오션으로 만들다
국내 자동차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 피치스가 부산 동구에 새로운 주유소를 오픈했다. 기존의 주유소의 성격에서 벗어나 자동차복합문화공간을 바라보는 피치스 빙고점을 파헤쳐본다.
자동차 문화를 바탕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피치스’가 부산에서 단독으로 주유소를 운영한다. 이름은 빙고점. 냉동 창고 부지에 자리하는 특징을 살렸다. 그간 다채로운 협업자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피치스. 이전까지의 행보가 브랜드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주유소 사업은 사뭇 그 무게감이 다르다. 더욱이 주유소는 오늘날 사양 산업으로 꼽힌다. 너도나도 주유소 사업을 접는 시기에 역으로 이들이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피치스 COO 앤디 김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브랜드가 단독 운영하는 주유소?
Interview
앤디 김 피치스 최고운영책임자(COO)
지난 12월, 피치스가 부산에 브랜드가 단독 운영하는 주유소를 열었어요. 피치스가 주유소를?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사실 자동차 문화 브랜드를 표방하는 피치스에게 주유소는 필연 사업입니다. 앞서 성수동에 자동차와 사람의 경험을 충전하는 복합문화공간인 ‘도원(D8NE)’이 있다면, 주유소는 자동차 애호가들이 차를 가지고 모이고,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보다 직관적인 공간인 셈이죠.
냉동 창고 부지에 자리한 피치스 주유소. 빙고점이라는 이름에는 냉동 창고를 의미하는 ‘빙고(氷庫)’와 영어 ‘Bingo!’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즉 브랜드 입장에서 주유소는 단순히 기름을 주유하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 곳인데요. 마침 운명적으로 우양냉장으로부터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어요. 냉동창고 부지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였는데요. 오히려 그 앞에 자리한 주유소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약 1,400평의 넓은 대지, 항구와 바다 그리고 자갈치 어시장이 이어지는 주변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미묘한 감정도 일었고요. 스트리트 브랜드가 주유소를 운영하는 건 분명 흔치 않은 일이지만 저희에게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고유가 시대, 전기차로의 전환, 대체 에너지의 대중화 등의 이유로 오늘날 주유소는 사양산업으로 여겨지잖아요. 다들 피하는 사업에 피치스가 뛰어드는 이유가 있을까요?
피치스는 레드 오션이 블루 오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유소 사업은 단순히 가격 경쟁을 하는 치킨 게임으로 전락하면 안 돼요. 피치스가 바라보는 주유소 사업의 본질은 따로 있어요. 과거 주유소에서의 경험을 돌이켜 보자고요. 주유소는 마케팅의 근원지였어요. 자동차에 기름을 채우면 휴지와 물을 나눠주고, 포인트를 쌓아서 냉장고를 상품으로 타기도 하는 등 저마다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공간이죠. 저희는 이러한 주유소의 성격이 사업성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비즈니스는 현실인데, 추억에 배팅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큰 거 아닌가요? 사업적으로 분명한 매력이 있지 않고서는 움직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자동차 문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BM(Business Model)을 진행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주유소의 가장 큰 매력은 BEP* 이상의 자금이 흐를 수 있는 ‘캐시카우(Cash Cow)’라는 점이죠. 극적이진 않지만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안전한 사업 모델을 갖추는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마케팅과 커뮤니티 효과는 덤으로 얻을 수 있었는데요. 4-500대가 주차할 수 있는 주유소 공간을 보고 격주 간격으로 카밋(car-meet)을 위한 문의가 들어와요. 해외에서 주유소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임을 갖는 커뮤니티의 장으로도 기능하곤 하는데요. 사실 국내 도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거든요. 주유하기도 바쁘니까요.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주유하고 빠져줘야죠.
주유소에 자동차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면서 발생하는 주유 매출도 분명 존재하고, 자연스럽게 마니아들 사이에서 번지는 입소문이라는 마케팅 효과도 무시할 수 없어요.
*BEP: 손익분기점
부산에 자리잡은 이유
앞서 주유소 운영 배경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지만, 그 위치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네요. 부산 서구 충무동. 부산 사람이 아니고서야 꽤 낯선 곳이잖아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한 피치스가 HQ를 서울로 옮기면서 고객 데이터를 분석했는데 서울, 경기 그다음으로 부산이 자리하더라고요. 따라서 부산으로의 진출과 확장은 초기에 어느 정도 목표로 자리 잡곤 있었어요. 주유소 빙고점은 안 그래도 부산에 대한 니즈가 있던 저희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거라고 생각해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선택한 건 ‘찾아가는 주유소’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쉽게 접근이 가능한 곳이라면 피치스가 주유소 사업을 잘한다는 게 티가 안 날 수도 있으니까요. 앞서 한남동에 넥슨, 현대오일과 함께 만든 주유소 ‘PARTS’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어차피 가격에 따라서 이동하는 고객층은 정해져 있어요. 그렇다면 적어도 피치스를 향한 팬심으로 찾아주는 고객들을 먼저 확보하는 것에 집중하는 순서가 맞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가격 경쟁이 심한 산업인만큼 기존 상권의 텃세는 없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오히려 부러운 시선을 많이 받았어요. 대기업에서 직접 현장 답사도 오고,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도 물어볼 정도로요. 점차 주유소가 없어지는 추세인데 젊은 친구들이 주유소 사업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투자하는 걸 보면서 배울 점이 많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 시점에서는 빙고점을 운영한지 한 달 정도 되었잖아요. 처음 반응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지난 한 달간 가격을 조정하면서 시장 경향을 파악했어요. 시장 상인 분들이 많이 찾는 등유는 가격을 낮춰서 경쟁력을 높였고, 고급유는 수익성 있는 가격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타깃에 맞춰 유종 전략을 짠 거죠. 그렇게 매출이 꾸준히 올라가고 있고, 주유 대수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저희는 100% 상태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아요. 80% 상태라도 먼저 시작하고, 계속 변화를 덧붙여 나갑니다. 다가오는 3월에는 논 터치(non-touch)식 세차 기기 도입 등 새로운 변화를 또 가미할 계획입니다.
피치스가 주목한 주유소 디자인의 핵심
공간 디자인 이야기를 해보죠. 사실 주유소 디자인이 한계점을 갖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피치스의 주유소는 남다르지 않을까 싶거든요. 빙고점만의 공간 및 디자인 특징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피치스가 부산에 진출했다!’라는 걸 알릴 수 있도록 키 컬러로 인프라레드(infrared)를 사용했고, ‘Peaches’ 로고도 적극적으로 드러냈어요. 또, 속도감을 표현할 수 있도록 캐노피와 사이니지 디자인에 직선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캐노피 아랫단 면에 슈퍼 미러를 설치한 건데요. 자신의 애마(愛馬)와 함께 자연스럽게 셀카를 찍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앞서 한남동에서 ‘PARTS’를 운영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인데, 주유소에서는 대중에게 교육된 사업을 해야 하더라고요.
교육된 사업이요?
너무 새로운 걸 선보이면 안 돼요. 두 발 앞서지 말고. 딱 반보만 앞서는 거죠.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주유소를 운영할 때 ‘편의점’의 존재가 중요하거든요. 심지어 주유하고 결제를 편의점 안에서 하니까요. 그런 것처럼 한국에서는 주유소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세차’를 떠올려요.
대중에게 오랜 시간 각인되어 온 구조를 굳이 소거할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이를 제외할 때 너무 낯설게 느껴지는 거죠. 예컨대 명분 없이 갑자기 패션숍을 차린다? 이건 우리에게 교육되지 않은 동선이거든요.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마찬가지예요. 너무 고도화하면 대중이 이해하기까지 그만큼 시간이 걸리죠.
피치스 주유소 빙고점을 알리기 위한 홍보 영상도 이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어요. 부산, 총알택시, 거친 운전 문화 등 부산에서의 운전 경험을 말할 때 떠오르는 요소들을 연결했죠. 여기에 더해 로컬의 구석구석을 보여 줄 수 있는 동선을 중심으로 화면을 비추면서 ‘어? 여기 내가 아는 곳인데!’라는 익숙함과 반가움도 느낄 수 있도록 촬영했습니다. 등장인물로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래퍼 정상수 님을 섭외했는데요. 서브컬처 태생의 피치스와의 접점을 고려했어요.
한편 협업자에 대한 고민도 많으셨다고요.
피치스 주유소 빙고점은 기존 주유소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일이라 새로운 건축 작업이 필요하진 않았어요. 대신 공간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습니다. 실내 스포츠 액티비티 공간을 운영하는 ‘스포츠몬스터’가 함께 일하는 시공사 ‘이든아이디’를 소개받았어요. 디자인은 ‘피치스’와 ‘요소 스튜디오’가 함께 했고요. 협업자 선정 과정에서 어떤 브랜드와 함께 확장성 있는 모델을 얼마나 만들어 왔는가, 그리고 인테리어 가이드 등의 패키징 구성이 가능한 업체인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주유소 사업이라는 건 결국 확장성이 중요하거든요. 한 개소만 운영하면 수익이 날 수가 없어요. 여러 소를 운영해야 그만큼 유류 사입 과정에서 단가 책정에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죠. 또 규모의 경제를 가져갈수록 고객의 충성도와 브랜드 가치는 연동되기 때문에 주유소는 여러 소를 운영할수록 경제적으로는 이득입니다.
기존의 주유소의 성격에서 벗어나 자동차복합문화공간을 바라보는 피치스 빙고점을 파헤쳐본다.
피치스 주유소의 미래
앞으로 또 다른 곳에서 피치스가 운영하는 주유소를 볼 수 있다는 말인가요?
물론 계획이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성급하게 확장하지는 않을 겁니다. 브랜드 입장에서 자산 유동성이 좋은 사업임은 분명하지만 안정화 단계까지의 추이를 지켜보는 중입니다. 무엇보다 주유 사업은 기름을 구매했을 때의 가격이 실제 가격이 아니라서요. 10원, 20원 차이에 적자와 흑자를 오가는 비즈니스거든요. 따라서 리스크 관리가 바탕이 될 때 적정선에서의 확장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치스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의되고 싶지 않다”라는 여인택 대표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어요. 미디어 프로덕션부터 패션 브랜드, F&B, 그리고 이제는 주유소 사업까지. 앞으로 피치스가 선보이고 싶은 또 다른 행보가 있다면요?
그간 피치스를 이야기할 때 물음표가 나왔다면 이제는 느낌표로 바꾸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 BEP를 훌쩍 넘는 수익의 극대화도 중요할 거고요. 그렇게 피치스가 멋있는 걸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나서서 보여주면, 몇 년 안에 포스트 피치스가 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 미래 세대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그룹으로 발전하는 것이 향후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