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토피아의 설계자들] ③ 김은희
케이팝토피아의 설계자들
케이팝이 우리 눈앞에 완성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을 거친다. 그중에서도 무형의 음악을 독창적인 그래픽의 앨범으로, 남다른 감각의 뮤직비디오로, 팬들이 열광하는 콘서트로 변환하는 데 디자이너의 역활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렇게 디자인은 그 프로세스에 화룡점정이 된다. 화려한 아이돌의 세계 너머에서 매번 치열한 고민을 거듭하는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김은희
그래픽 디자이너. 홍익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 전문 대학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SM엔터테인먼트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센터 소속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앨범 기획부터 재킷 촬영, 티저 콘텐츠, 프로모션까지 앨범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에 참여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케이팝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eeunheekim
케이팝 관련 프로젝트를 맡게 된 계기는?
평소 음악을 좋아해 앨범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케이팝이 팬덤을 넘어 대중과 창작자들에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을 때쯤 SM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면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케이팝 디자인만의 매력은?
스타일과 형식에 대해 열려 있는 편이라 기획 방향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고, SM엔터테인먼트에서는 디자이너가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기 때문에 팀이 의도한 대로 프로젝트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음악, 패션, 사진, 영상 등 다방면에서 일하는 창작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디자이너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케이팝 아이돌은?
2016년 데뷔한 DSP 미디어 소속의 ‘카드Kard’. 아이돌 신에서 보기 드문 혼성 4인조 그룹이라 눈길이 간다. 또 버추얼 멤버를 1명 포함한 5인조 아이돌 그룹 ‘슈퍼카인드Superkind’는 세계관, 연습생 체계, 팬들과 소통하는 방식 등에서 아이돌 문화 자체를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트위터의 투표 기능을 이용한 게임 형식의 콘텐츠 ‘플레이 슈퍼카인드Play Superkind’는 팬들이 참여해 슈퍼카인드의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요즘 케이팝 신에서 주목하는 크리에이터는?
영상 감독 정누리.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한다. 특히 그가 연출한 버밍타이거의 〈Just Fun!〉 뮤직비디오가 신선했다. 홍콩 영화를 연상시키는 영상 속 채소가 담긴 중국풍 접시 위에 몸집이 작아진 멤버들이 누워 있고, 음식을 서빙하며 아이돌처럼 립싱크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케이팝 대표 프로젝트는?
지난해 8월 발매된 샤이니 멤버 키의 정규 2집 앨범 〈Gasoline〉의 재킷 기획과 앨범 디자인을 했다. ‘레트로 호러 어드벤처’ 콘셉트였는데 이전 앨범 〈Bad Love〉에 이어 레트로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키의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1980~1990년대 B급 공포 영화의 클리셰를 차용했다. VHS 케이스와 플로피 디스크 형태로 패키지를 디자인하고, 포토북 버전은 키치한 아트워크를 메인으로 했다. 또 NCT 127 정규 3집 리패키지 앨범 〈Favorite〉과 NCT DREAM 정규 1집 리패키지 앨범 〈Hello Future〉에도 참여했다. 클래식을 콘셉트로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가, 시인 이미지를 키 비주얼로 풀어낸 NCT 127의 앨범과 대조적으로 NCT DREAM의 앨범은 ‘히피’라는 키워드에 청량한 소년 이미지를 더했다. 또 디지털 앨범 커버는 히피 심벌 스타일, 피지컬 앨범 커버는 자연 이미지를 콜라주하는 방식으로 디자인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프로젝트는 샤이니 태민의 정규 3집 앨범 〈Never Gonna Dance Again – Act 2〉다. 타이틀곡 ‘이데아’의 가사에서 착안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인물, 성스러운 메시아를 연상시키는 콘셉트 이미지로 재킷 사진을 촬영하고 종교 미술 요소를 디자인에 반영했다.
내 작업만의 특별한 점은?
특정한 시대의 디자인, 영화, 대중문화, 예술 전반을 ‘디깅’해 문화적인 코드를 넣는다. 이때 잘 드러나지 않는 구체적인 설정이나 서사를 생각해두는 편이다. 이는 뻔한 콘셉트로 풀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내 머릿속에 구체적인 그림이 있어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케이팝 팬들의 피드백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는 작업에 팬들만 알아차릴 수 있는 작은 디테일을 넣는 것을 좋아한다. 키의 재킷 사진 작업을 할 때 인물 설정을 함축해서 보여줄 수 있도록 〈How To Be Scary and Cute〉라는 제목으로 소품용 책을 제작해 촬영에 사용하기도 했다. 팬들이 그런 디테일을 알아주거나 해석을 하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전시킬 때 즐겁고 감사하다.
키 〈Gasoline〉
아트 디렉터 조우철
크리에이티브 콘셉트 플래닝, 그래픽 디자인 김은희
일러스트레이션 이광무
사진 목정욱
태민 〈Never Gonna Dance Again–Act 2〉 트랙리스트 포스터
아트 디렉터 조우철
크리에이티브 콘셉트 플래닝, 그래픽 디자인 김은희, 이수진, 임이랑
사진 윤지용
NCT 127 〈Favorite〉 클래식 버전
아트 디렉터 조우철
크리에이티브 콘셉트 플래닝, 그래픽 디자인 김은희, 조우식
사진 고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