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에서 만날 작가, 필립 파레노 미리 보기
전시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
2024년 리움미술관의 첫 전시가 공개됐다. 주인공은 바로 '필립 파레노'. 영상, 디자인, 인공지능, 생물학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
개관 20주년을 맞이한 리움미술관이 올해 첫 전시로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의 개인전을 소개한다.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으로 소개된 이번 전시의 제목은 <보이스(VOICES)>. 단순 사건으로서 전시가 아니라 경험의 장으로 작품을 둘러싼 작가와 관객의 다양한 목소리를 다루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본격적인 전시장 방문에 앞서 작가가 그간 선보여 온 작품과 전시의 결을 살펴본다. 지난 2월 28일부터 오는 7월 7일까지 이어지는 필립 파레노의 개인전을 관람하기 전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필립 파레노는 누구인가?
필립 파레노는 알제리계 프랑스인으로 그의 주된 관심은 ‘전시’와 ‘관객’이다. 특히 그에게 전시장이라는 장소는 관객이 단순히 작품을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다. 작품과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경험을 맞이하는 곳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전시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셈. 그간 파레노가 제작해 온 작품들 또한 ‘전시’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맥락을 공유하며 소개되어 온 것들이다.
전시 그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시선 때문인지 그의 작품 중에서는 소품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체로 작품의 규모가 큰 편이다. 또한, 영상부터 사운드, 조각, 조명, 퍼포먼스 그리고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까지 작품에 접목해 관객에게 공감각적인 전시 경험을 선사하는 중이다. 리움 미술관에서 선보일 전시에서도 데이터 연동과 디지털멀티플렉스(DMX)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 봐도 좋을 듯싶다.
대표 전시 1: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터빈홀
지난 2016년 현대자동차와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협업 프로젝트인 <현대 커미션>은 필립 파레노를 현대 커미션의 작가로 선정했다. 현대 커미션 작가로 선보인 전시 <Anywhen>에서 그는 과거 화력 발전소 건물이었던 미술관의 터빈 홀을 자신의 작품으로 가득 채웠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작품 세계를 미술관으로 들였다.
물고기 모양의 헬륨 풍선, 영상 작업을 보이는 스크린과 일괄적인 움직임으로 그늘을 만들어 내는 차광막과 조명들 등 매 순간 변화하는 전시 요소들로 작가는 전시장을 채웠다. 이러한 전시 요소를 연출함으로써 작가는 전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언가 발생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안에서 불특정 다수인 관객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품을 경험한다.
대표 전시 2: 독일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2018년도 독일 베를린의 마틴-그로피우스 바우(Martin-Gropius Bau)에서 열린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 <Looking back on a Future>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의 전시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앞서 열린 전시에서 소개한 작품들의 연장선이 되는 전시로 필립 파레노의 작품 세계가 연속성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오늘날 작가의 작품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헬륨 가스를 채운 물고기 풍선’ 작품 <My Room Is Another Fish Bowl>은 전시장을 이동하는 관객으로부터 발생한 공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를 통해 작가는 전시와 작품 그리고 관객 서로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작가의 전시를 관람할 때는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가 큰 파장력을 지녔음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마주해보는 것도 작품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듯싶다.
한편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에서의 전시에서는 주목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생물학과 기술 그리고 예술의 결합이 그것이다. 수학을 전공하고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필립 파레노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예술의 개념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그가 생물학, 애니메이션, 퍼포먼스,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와 장르의 협업에 적극적인 이유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테이트 모던과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에서의 전시에서 소개한 ‘생물 반응기’는 작가의 다채로운 관심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기간 ‘생물 반응기’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뇌처럼 기능한다. 외부에서 수집된 온도와 습도, 빛, 소음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체적으로 생존하고 성장하며 전시장 곳곳의 요소를 제어한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2019년 필립 파레노가 미국의 뉴욕 현대미술관(MoMA) 재오픈에 맞춰 선보인 커미션 작업인 <Echo>도 동일한 형태와 맥락을 지닌 작품이다.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주변 환경 데이터에 반응해 조명이 달라지는데 그의 작품에 있어서 관객과의 상호 작용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대표 전시 3: 프랑스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
지난 2022년 프랑스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로툰다에서 선보인 전시 <Philippe Parreno> 속 작품들 또한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시에 대한 작가의 정의, 작품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반영한다. 특히 주목할 건 커다란 LED 화면이다. 화면 위로는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초기 영상 작품 <세계 어디에서나(Anywhere Out of the World)>가 비친다. 가상 캐릭터인 앤 리(Ann Lee)는 관객과의 교류를 통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그 주위로 자리 잡은 안테나 모양의 설치 작품 <헬리오트로페스(Heliotropes)>(2022)는 유리로 된 천장 돔에서 내려오는 햇빛을 반사해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을 만들어 낸다.
지금까지 그가 선보여 온 전시의 면면을 살펴볼 때 그가 이야기해 온 작품 세계는 리움미술관 전시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뮤지션, 언어학자, 사운드 전문가, 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제작한 90년대 초기작부터 대형 야외 신작까지 선보인다. 아울러 리움미술관의 M2 전시장부터 블랙박스, 그라운드갤러리, 로비, 데크까지 전시 공간으로 내세워 앞선 전시들과 비교해도 손색 없는 규모를 자랑한다. 필립 파레노의 전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되뇌이며 전시장을 거닐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