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버티컬 브랜드 커리업의 ‘맨땅브레이커’
비주얼 뷰어로 구현한 웹 매거진
기성 매체의 콘텐츠 실험실, 계속 보고 싶은 흥미로운 ‘일’들. 한국일보 커리업의 ‘맨땅브레이커’ 인터뷰 시리즈를 만든 박지윤 기자와 김유진 프로덕트 에디터를 만났다.
거침없이 달려들어 긴 시간과 자원을 투여해 한 편 한 편을 완성했음이 분명하다. 일의 희로애락이 담긴 ‘무편집본’의 시간도 이렇게 ‘볼 맛’ 나게 만들어준다면 그 앞에서 기꺼이 나를 내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맨땅브레이커’는 한국일보 산하 버티컬 브랜드 ‘커리업Caree-Up’의 인터뷰 시리즈다.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 커리어 패스를 개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존의 뉴스 닷컴 포맷이 아닌 비주얼에 최적화된 웹 매거진 형태로 선보인다.
커리업은 일을 둘러싼 담론이 다양해지는 오늘날의 일을 탐구한다. 2022년, 한국일보 뉴스룸국 안에서 디지털 콘텐츠 다변화 계획의 일환으로 만든 박지윤 기자의 ‘1인랩’에서 출발했다. 박지윤 기자는 커리업 뉴스레터와 인터뷰 코너를 기획해 첫 시리즈 ‘일잼원정대(*)’를 연재했고, 이듬해 더 큰 디지털 모험을 위해 미디어전략부 로 옮겨 김유진 프로덕트 에디터와 함께 맨땅브레이커 시리즈를 시작했다.
(*)“‘일에서의 재미’라는 희소 자원을 찾아 정박하지 않고, 원정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더 뉴 그레이’ 권정현 대표를 시작으로 ‘디에디트’ 이혜민, 하경화 대표까지 10팀, 11명의 ‘일잼러’들을 인터뷰했다. 이 인터뷰는 2023년 〈별일, 하고 산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Interview
박지윤 한국일보 기자
2017년 취재기자로 한국일보에 입사한 박지윤 기자는 사회부를 거쳐 기획취재부에서 ‘뷰엔(view&)’을 기획하고 취재했다. 기사 하나를 예로 들면,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의 현실을 사진과 글, 영상으로 담아내는 식이다. 당시 이를 연재하며 기자도 스페셜리스트로 불릴 수 있을 만한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민 끝에 ‘커리어’를 떠올렸다. 누구보다 일을 좋아하고 일에 관심 있는 사람이다.
김유진 한국일보 프로덕트 에디터
김유진 프로덕트 에디터는 2년 전 한국일보로 이직했다. 그전에는 경향신문에서 디지털 베이스의 기사를 만들고, 데이터 시각화 기사를 생산하는 작업을 했다. 2019년 게재 당시 SNS에서 화제였던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의 인터랙티브 기획, 디자인, 개발이 그의 작업. 김유진 에디터는 초기 커리업 맨땅브레이커의 개발과 디자인을 맡았고, 현재 PM(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도 담당한다.
기성 매체의 콘텐츠 실험
커리업은 한국일보의 버티컬 브랜드다. 먼저, 왜 기성 매체들이 버티컬 브랜드를 만드는지 묻고 싶다.
박지윤 유튜브를 무대로 시작된 뉴미디어 실험들은 참신했으나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힘 있게 밀고 나가던 외국의 뉴미디어 매체들도 나중에는 자금난,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 등에 시달리면서 규모가 큰 대형 언론사에 인수된 사례가 많았다. 결국 단단한 기반을 지닌 대형 언론사 산하에 다양한 버티컬 미디어가 공존하는 이런 방식이 콘텐츠 실험에는 최적화된 모델이라는 게 나의 의견이다.(웃음) 점차적으로 버티컬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회사와 합의된 하나의 기조였다.
새로운 인터뷰 시리즈 ‘맨땅원정대’를 시작하며 글 위주의 기사(일잼원정대)에서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박지윤 주요 포털사에서 뉴스 콘텐츠의 비중을 줄이는 추세이다 보니 콘텐츠 유통을 포털에 기대고 있는 기성 언론사들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자사 닷컴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비주얼 요소를 강화한, 그리고 사용자들이 직접 클릭하고 넘기며 볼 수 있는 사용자 환경을 제공하는 닷컴만의 디지털 프로덕트가 주효할 거라고 생각했다. 공공장소에서는 이어폰이 필요한 영상이나 오디오 매체보다, 비주얼 요소와 그래픽 요소가 다채롭게 나오는 비주얼 뷰어의 진입 장벽이 낮고, 또 빠르게 시도해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 욕심은 사진과 영상 같은 비주얼 요소를 체험한 독자들에게 텍스트와 사진, 클릭을 유도하는 비주얼 뷰어가 일체화된 콘텐츠를 보여주고 싶었다. A부터 Z까지 유기적으로 융합되어 하나가 빠지면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하나의 잘 지은 건축물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2010년대에 언론사에서 만든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많이 보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조금 줄어든 추세 아닌가?
김유진 맞다. 여러 이유로 지속하는 매체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용성이나 간편함을 강조한 인터랙션은 의미가 있다. 커리업 같은 경우는 콘텐츠를 담고 있는 포맷 자체를 실험의 주요 목표로 삼아 기존 인터랙티브 콘텐츠가 지닌 한계를 넘어서려고 했다. 특정 뷰어의 실제 사용률과 롱폼에서 디자인 변화에 따른 사용자의 이탈률 등 서비스적인 데이터를 살펴보는 것이다. 콘텐츠가 사라지더라도 데이터라는 자산이 남는다. 사실 맨땅브레이커 시리즈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라기보다 전용 뷰어가 있는 웹진에 가깝다.
커리업 뉴스레터도 운영한다. 뉴스레터까지 읽어야 한 명의 인터뷰이를 제대로 소화한 느낌인데, 초기부터 함께 기획한 건가?
박지윤 초기부터 꼭 해야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충성 독자를 확보하고, 계속해서 커리업 소식을 전해 닷컴으로의 유입을 유도한다. 뉴스레터를 더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취재 후기를 담는 게 좋겠다는 아이디어는, 일잼원정대를 하면서 떠올렸다. 취재 후일담은 언론사 기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킬러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보통 기사에서 다루는 것보다 인간적으로 만났을 때 나오는 이야기들이 더 재밌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람을 인터뷰하려 했던 이유, 인터뷰하러 가면서 들었던 생각, 만나고 나서 인상적인 것 등을 다루는 게 뉴스레터의 익스클루시브 콘텐츠로 괜찮겠다 싶었다.
커리업이 한 사람의 일의 세계를 디자인하는 법
보통 맨땅브레이커 한 편을 발행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 한 사람의 커리어를 깊이 파고든 이 방대한 양의 인터뷰가 어떻게 이런 디자인으로 구현되는지 궁금하다.
김유진 인터뷰이가 정해지면 리소스로 어떤 뷰어를 만들지 기획 회의를 한다. 그다음 인터뷰이를 어떻게 촬영할지 사진기자와 비주얼 회의를 한다. 예를 들어,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 김결희 교수 편의 경우에는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 컬러를 이용해 사진을 찍자는 사전 논의가 있었다. 지윤 님이 두 번에 걸쳐 인터뷰이를 취재하는 동안 나는 시안을 만들며 얼개를 짠다. 그리고 취재 후기 회의도 한다.
박지윤 여러 단계에서 끊임없이 소통한다. 기사를 다 쓰고 나서 비주얼이나 뷰어 기획을 시작하면 너무 늦는다. 취재 다녀오자마자 실제로 어떤 사진이 찍혔는지, 인터뷰이의 과거 사진은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지, SNS에서 끌어올 게시물은 어떤 게 있는지 확인한다. 이렇게 장 본 걸 꺼내놓듯 쭉 말씀드리면, 선배가 ‘그럼 이거, 이거, 이렇게 해서 김치찌개 끓이면 되겠네요?’ 하는 식으로 의사 결정을 한다.(웃음)
김유진 그리고 지윤 님이 실제 기사를 쓰기 전 단계인 개요를 보내주면, 그걸 보면서 비주얼 요소가 너무 특정 위치에 몰려 있진 않은지, 비어 있는 곳은 없는지 분배하고 밸런스를 맞춘다. 취재부터 디자인, 개발, 마지막 QA와 기사 발행까지 3주 걸린다.
9명의 맨땅브레이커가 각기 다른 커리어 패스를 이어왔듯 세부 디자인은 달라도 그 안에 공통된 디자인 요소가 눈에 띈다. 글과 비주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다고 할까. 디자인에서 중점을 둔 건 무엇인가?
김유진 커리업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처음에 보이는 화면이다. 아무래도 조금 이질적이라 첫 화면에서 많이 이탈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그래서 인트로 부분에 가장 많은 디자인 공력을 들인다. ‘이 기사는 이 디자인 톤앤매너로 끝까지 간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기사를 시각화해서 나열하는 것이기 때문에 텍스트가 잘 읽혀야 한다. 인터랙티브 결과물에서 비주얼 요소는 화려한데 글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경우는, 텍스트 위계를 잡는 데 실패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이건 제목, 이건 본문, 이건 비주얼 요소라는 예측이 가능하도록 폰트나 간격 등으로 디자인 시스템을 만들어놔야 한다. 그게 무너지면 사용자 입장에서 헷갈리기 시작한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디자인 시스템에도 신경 쓴다.
인트로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매화 메인 이미지와 찰떡같이 어울리는 타이틀은 두 사람이 함께 정했나?
박지윤 선배가 이미지에 딱 맞는 초기 타이틀을 정해주고, 기사를 다 쓴 다음 마지막에 함께 고민한다. 이진주 PD 편 같은 경우는 누군가를 응시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에 말을 거는 느낌을 담아 ‘네 연애를 보여줘, 드라마가 될 테니까’로 정했다. 이미지와 타이틀, 폰트까지 많이 신경 쓴다.
김유진 여기 들어가는 타이틀은 SEO(검색엔진 최적화)에 반영이 안 된다. 검색용 타이틀은 따로 있다. 이게 전략적으로 맞는지 잘 모르겠는데, 메인에는 정말 첫인상, 첫 무드를 좌우할 수 있는 카피를 뽑는다.
구성이나 디자인에 영감을 주거나 참고하는 것이 있다면?
김유진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보다 지윤 님이 많은 얘길 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윤 님이 레퍼런스를 정말 잘 챙겨준다. 거기에서 받은 느낌을 구현하기만 해도 될 정도로. 주로 요즘 MZ세대가 소비할 것 같은 힙하고, 볼드하고, 색도 비비드한 웹진을 많이 공유해준다. 이를 참고해 레거시의 차분함을 섞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커리업 심볼에 담긴 초기 브랜딩 콘셉트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 안에서 회차별 인터뷰이의 성격을 살리려 노력한다.
박지윤 디자인에 대해서는 몇몇 단어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보조 자료로 뭔가를 많이 드려야 하는데, 선배가 그 맥을 잘 짚어준다. 아무리 내가 원하는 톤의 레퍼런스를 많이 제공해도 그대로 디자인으로 구현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콘텐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이런 디지털 콘텐츠 프로덕트를 만들 수 있다. 선배는 이런 모든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개발과 디자인 쪽에도 전문가다. 그래서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 외에 다른 팀원들은 어떻게 모였나?
박지윤 맨땅브레이커를 세 편 정도 연재했을 때, 미디어전략부 내의 신규 채용된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커리업에 합류했다. 사진기자는 사진부에 소속된 기자다. 보통 신문사의 사진 취재는 사진부 인력 안에서 그때그때 일정 가능한 사진기자를 배정하는데, 나는 시작할 때부터 사진이 중요하다고 어필했다. 완전히 다른 형태의 비주얼 강화 아티클에 방점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디자인만 중요한 게 아니라 임팩트 있는 사진, 연재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일관된 콘셉트의 사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진기자 한 분을 포섭해서 모셔왔다.(웃음) 1년 365일 커리업만 담당하는 팀은 아니다. 그런 사람은 나 하나이고, 각자 전문 기술을 갖고 커리업의 한 부분을 맡고 있다.
다른 소속이지만 하나로 뭉쳐 이런 결과물을 낸 비결이 궁금하다.
박지윤 일단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한테는 매번 흡족한 결과물이 나오는 게 가장 좋은 동기부여다. 나의 전문성과 노동력이 더해져 이만큼 좋은 게 나왔구나 하는 게 느껴지는 결과물. 동료 자체가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근사한 디자인 시안을 보면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는 바이라인에 동등하게 들어간다. 모두가 함께 만든 합작품이다. 동등한 위치에 있는 동료로서 우리가 이렇게 팀으로 모였을 때 더 좋은, 더 파급력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번 두 번 해보면 그게 세 번 네 번도 할 수 있다가 된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해도 쌓이면 근육이 된다.
박지윤 나는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건 내가 일을 하면서 긍정적인 감정, 즐거움을 얼마나 느끼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취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더 길지 않나. 팀을 꾸리면서 서로 재밌으면 좋겠다,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할 수 있는 사이였으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 맨땅브레이커를 하면서 그게 잘 된 것 같다.(웃음)
김유진 이 팀원들이 고정적으로 함께하는 데는 지윤 님의 의지가 컸다. 어떻게든 원 팀 체제로 가야 한다고 계속 설득했다. 원 팀을 계속 강조한 게 통했던 것 같다. 우린 커리업 한 팀이다.
맨땅브레이커 디자인 톺아보기
보이저엑스 남세동 대표 편
맨땅브레이커 1화로, 처음이기에 다양한 시도를 했다. 영상으로 인트로를 만들고, 1990년대 인터넷 전성시대를 ‘옛날 신문 스크랩’ 형식으로 보여준다. 보이저엑스 사무실을 360도로 투어할 수 있는 뷰어와 줌인 및 줌아웃으로 살펴보는 남세동 대표의 서재 등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신기한 비주얼 기능을 만난다. 박지윤 기자와 김유진 에디터는 남세동 대표 편을 가장 힘들고 뿌듯한 작업으로 꼽았다.
배우연구소 백은하 소장 편
대부분 취재 전 기획한 대로 비주얼 뷰어를 구현하는 편이지만, 때때로 취재 현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한다. 백은하 소장이 모아둔 영화제 프레스증을 본 사진기자가 이를 활용한 메인 컷 아이디어를 냈고, 박지윤 기자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레스증과 커리어를 연결했다. 그리고 김유진 에디터가 각 프레스증 위로 마우스 커서를 가져가면 그와 연관된 업력이 뜨도록 했다. 박지윤 기자가 두 번에 걸쳐 취재를 진행하기에 가능했던 일.
광고 회사 스튜디오좋 편
다소 파격적인 타이틀과 영상이지만, 이것이 광고 회사 ‘스튜디오좋’ 그 자체다. 빙그레우스, 새로구미 등 제품에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입힌 것이 바로 이들. 맨땅브레이커는 독자가 처음 마주하는 인트로 화면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다. 인터뷰이의 성격에 맞춰 이미지, 타이틀, 폰트를 정하며 이 무드를 끝까지 유지하려 한다. 커리어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커리어 성장 곡선’은 매 인터뷰마다 빠지지 않는 기본 요소.
건축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 편
놀랍게도 이 사진은 푸하하하 프렌즈의 사옥에서 촬영했다. 맨땅브레이커는 취재 전 확실한 촬영 콘셉트를 정한다. 디자인만큼 임팩트 있는 사진이 중요하기 때문. 개성 강한 3명의 소장을 ‘놈놈놈(성실한 놈, 비범한 놈, 이상한 놈)’에 비유했다. 한편, 사진 등의 비주얼 요소 배치는 김유진 에디터가 고민하는 것 중 하나. 어떤 부분에 비주얼 요소를 넣어야 본문을 해치지 않으면서 독자가 이미지 또한 함께 소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김희경 작가 편
김희경 작가가 직접 그린 커리어 인생 곡선과 번민의 흔적이 담긴 업무 수첩. 업무 수첩은 백은하 소장 편에서 ‘액톨로지 시리즈’의 코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개발한 북 뷰어를 응용했다. 박지윤 기자가 본문에 담기지 않은 인터뷰 내용을 각색해 김희경 작가의 ‘자발적 은퇴’ 시간 동안의 고뇌를 3개의 업무 수첩에 표현했다.
커리업이 그리는 미래
커리업의 행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2024년 1월 31일에 업로드한 이진주 PD 편을 마지막으로 10개월에 걸친 맨땅브레이커 시리즈가 끝났다. 기간을 설정하고 시즌제로 운영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박지윤 기획이 낡아지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만드는 사람이 지치지 않기 위해서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고강도의 노동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자기 살을 파먹는 일인데(웃음),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시즌제를 선택했다. 맨땅브레이커 시즌 1은 이렇게 끝났지만, 언젠가 시즌 2를 꼭 해보고 싶은 연재물이다.
다음 커리업 인터뷰 시리즈는 어떤 게 될까?
박지윤 ‘베테랑의 한 끗(가제)’이라는 연재물을 기획 중이다.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즉 프로들의 일과 루틴, 도구, 시간 쓰기의 패턴 등을 들여다본다. 르포르타주 형식을 결합해 그 사람의 일터를 보여주며 (일잼원정대와 맨땅브레이커 같은 구어체가 아닌) 기사 작성 방식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이제 막 섭외를 시작하고 있는 단계인데, 3월 말이나 4월 초부터 3주 간격으로 9개의 콘텐츠를 계속 발행할 것 같다.
김유진 여기에 딱 맞는 형태의 페이지도 구상하고 있다. 맨땅브레이커가 팝하고 비주얼적으로 조금 화려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그 현장 자체를 녹여내는 방향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그동안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콘텐츠로 만들며 그들에게 배운 게 있다면?
박지윤 내가 취재한 분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에서 세속적 성공이라고 여길 만한 뭔가를 성취한 인물이다. 꼭 그런 분으로만 채우려고 한 건 아닌데, 결국 무언가가 있어야 그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므로, 결과적으로 맨땅브레이커는 화려한 커리어 패스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런데 직접 그분들 일터에 가서 일하는 동안의 고민, 상념을 들어보니 그 시간이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다 자기만의 싸움이 있고, 그 싸움의 시간에 확신이 없었다. 거기서 많이 위로받았다. 그러니까 나만 내 선택에 자신이 없는 게 아니구나, 나만 불안한 게 아니구나. 결국에는 그 불안함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사람들이 자기다운 일의 경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때그때 몸이 당장 편한 선택, 자기한테 익숙한 선택을 거부했다. 그렇게 어려운 선택, 두려운 선택을 해서 현재에 다다랐다.
김유진 8년 가까이 비주얼 작업을 해오며 매너리즘에 빠질 뻔했는데, 그럼에도 계속하다 보니 내가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느낌, 그런 단계가 어느덧 왔다. 정답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냥 계속 꾸준히 하는 게 답일 수 있다는 걸 좌충우돌하며 계속해나가는 많은 인터뷰이를 보면서 다시 깨달았다.
일잼원정대의 고정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 두 사람이 느끼는 ‘일의 재미’는 무엇인가?
김유진 일의 재미… 모든 디자이너가 비슷할 것 같은데, 무언가 주어졌을 때 처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이 있다. 그게 결과물로 구현됐을 때 가장 큰 재미를 느낀다. 또 내가 의도한 부분을 독자나 사용자가 알아차려줄 때의 쾌감이 있다.
박지윤 과정의 재미가 있고 결과의 재미가 있는데, 내가 강하게 이끌리는 건 과정의 재미다. 궁금한 사람을 직접 만나서 물어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의 세계를 탐구하는 게 즐겁다. 그러니까 나의 세계를 넓히는 공부의 차원으로서 이 일이 재밌는 것 같다.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아보고 공부하고 거기에 대해 쓰는 과정이 나에게는 재밌는 하나의 사이클이다. 2~3주에 한 번씩 마감의 고통과 쾌감을 느끼는 이 주기도 나한테 딱 맞는 것 같다.(웃음)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고 있는 독자들과 미래의 커리업 독자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박지윤 커리업은 자기 계발용 콘텐츠는 아니다. 그래서 ‘커리어’라는 단어를 내걸고 있지만, 커리어보다 ‘일’이라는 단어를 훨씬 많이 쓴다. 일은 모든 사람이 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반복하는 일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이 깃들 수밖에 없고, 반대로 일이 내 몸과 정신,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만들기도 한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커리업을 만들었다.
그리고 커리업이 롱폼으로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는 이유는, 결국 이 사람의 삶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부분은 정점을 찍은 빛나는 순간 하나이지만, 그 이전에 이런저런 굴곡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독자분들이 커리업의 인터뷰를 볼 때 ‘대단해, 부러워, 멋지다’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그 결과 여기에 다다랐구나, 여전히 고민하는 사람이구나, 나도 그런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는 콘텐츠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