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미술관 재개관을 기념한 특별전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

환기미술관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한국 현대미술 거장 김환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는 재개관 기념 특별전도 함께 선보여 눈길을 끈다. 130여 점의 작품과 작가가 평생 지닌 소장품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환기미술관 재개관을 기념한 특별전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 작가를 기념하는 환기미술관이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오늘(12월 6일) 재개관한다. 미술관은 재개관과 함께 특별전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이하 영원한 것들)도 2025년 3월 5일까지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김환기 작가의 전 생애에 걸친 예술 여정 속에서 그가 보고, 듣고, 느꼈던 혹은 스쳐 지나갔던 찰나의 순간들이 작품으로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유화를 비롯해 드로잉, 오브제 등 130여 점의 작품과 작가의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끼친 애장품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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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미술관 재개관 특별전 전시 포스터 ©Whanki Museum

서울, 파리, 뉴욕으로 이어지는 예술 여정

환기미술관 본관에서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김환기 작가의 삶을 따라간다. 전시는 작가가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했던 장소를 기점으로 그의 예술 여정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일본 대학 예술과 미술부에서 유학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와 김향안과 결혼해 살게 된 ‘성북동집 247-1’을 둘러싼 시기는 바로 김환기 작가의 첫 번째 여정인 ‘동경/서울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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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미술관 재개관 특별전 <영원한 것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것들> 전경 ©Whanki Museum

서울에 돌아와 터를 잡고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지낸 그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정취를 바라보며 산과 달, 꽃과 새, 나무와 나무 아래 놓인 둥근 항아리를 그렸다. 특히 일본 유학 시절 입체주의, 야수주의, 추상주의 등 서양 미술의 경향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던 그에게 서울에서의 삶은 한국적 미감과 문학적 서정성을 작품에 더한 시기이다.

김환기 가로 1948 캔버스에 유채 55x38cm Ⓒ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가로, 1948, 캔버스에 유채, 55x38cm Ⓒ환기재단‧환기미술관

이어지는 두 번째 시기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시기다. 1956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김환기 작가는 파리 6구에 자리한 다싸스 아틀리에(Rue d’Asssas Atelier) 그리고 생루이 섬에 자리한 생루이 아틀리에(Île Saint-Louis Atelier)에 체류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갔다. 외국에 있지만 그는 여전히 새소리를 듣고, 마로니에 나무를 보며 한국을 떠올렸다.

조각달이건 만월이건 동창에 달이 뜨면 그만 고국 생각이 간절해진다.

아, 보고 싶은 사람이며 그 산천들

김환기, 1959

‘파리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작가는 한국의 전통과 민족문화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며 자연의 추상 언어를 융합시킨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이는 ‘시(詩)정신’이라는 김환기만의 예술 철학으로도 불리며 작가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도 꼽힌다.

김환기 작가는 1963년 미국 뉴욕으로 떠난다. 1974년까지 약 11년간 뉴욕에서 활동한 일명 ‘뉴욕 시대’는 그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던 시기다. 뉴욕 맨해튼 셔먼 스퀘어 스튜디오Sherman Square Studio에서 작가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 기물에 내재한 정서를 주제로 구상성에서 벗어나, 자연의 본질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김환기 작가의 작품 세계는 뉴욕에서 ‘점(點)’, ‘선(線)’, ‘면(面)’으로 응축된 추상성에 이르렀다. 작가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영원불멸한 자연에 투영했고,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한 자연의 숭고함을 자신만의 언어로 내보였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 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 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김환기, 1973

김환기가 평생을 지닌 소장품을 만나다

이번 전시에서 김환기 작가의 작품과 함께 눈여겨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가 평생 지녔던 소장품이다. 그중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삼국시대 제작한 불두와 조선 후기 백자를 만날 수 있다. 불두는 눈썹과 이마, 귀, 목 아래로 전부 없어진 작은 불상 파편이다. 완벽한 얼굴은 아니지만 불가사의한 미소를 지닌 불두는 작가에게 끊임없는 영감과 감동을 전해줬다. 인위적인 더함이나 변형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은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예술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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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작가의 애장품인 삼국시대 불두 모습 ©Whanki Museum

한편 김환기 작가의 소장품인 조선 후기 백자도 소개한다. 김환기 작가의 도자기 사랑은 유명하다. 그의 주요 작품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백자와 꽃'(1949),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1956), ‘매화와 항아리'(1957) 등이 대표적이다. 과연 도자기 속에 살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무엇보다 백자에서 우리 민족의 조형미를 배웠다고 할 만큼 김환기 작가의 작품은 도자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백자는 그에게 단순한 기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았다. 마당에 내어두고 감상하며 자연의 순수함과 국선의 유려한 아름다움을 마주했다는 도자기를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바라보는 것도 이번 전시를 감상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약 10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연 환기미술관에서 그의 작품과 더불어 평생을 지녀온 수집품도 놓치지 않고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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