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디자이너 5인이 손으로 빚은 창작 세계
손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작품 세계
팩토리2와 교류전을 개최 중인 헬싱키의 창작 허브 로칼(LOKAL). 이번 전시에서 이들이 소개하는 5인의 핀란드 디자이너의 작품 면면을 들여다본다.
핀란드 헬싱키의 아트 허브이자 갤러리 로칼(LOKAL)과 팩토리2의 교류전 <조응>이 오는 12월 31일까지 팩토리2에서 열리고 있다. 헬싱키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자리하며 지역의 디자이너, 공예가, 예술가 등 창작자를 발굴하고 소개해 온 로칼은 이번 전시에서 5인의 핀란드 공예가와 디자이너를 소개한다. 안트레이 하르티카이넨, 한니 코로마, 헬리 투오리-루토넨, 밀라 바흐테라, 나탈리 로텐바허가 바로 그 주인공. 오는 12월 31일까지 팩토리2에서 만날 수 있는 핀란드 작가들의 예술 세계와 작품을 지금 만나보자.
안트레이 하르티카이넨
핀란드 출신의 조각가 겸 디자이너인 안트레이 하르티카이넨(Antrei Hartikainen)은 핀란드 가구 브랜드 피스카스(Fiskars)에서 목재 가구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기능성을 강조한 가구 제품부터 순수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수공예 작업을 통한 장인 정신의 가치를 강조하는 점이 특징이다.
기능적 오브제와 시각 예술 간의 경계를 두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이를 흐리는 도전적인 작품 활동으로 눈길을 끈다. 팩토리2와 로칼의 교류전에서는 나무와 유리 두 가지 소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감각적이고 우아한 미감을 구현하며 소재로부터 얻은 영감을 유기적 형태의 작품으로 표현한다.
—디자인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를 둘러싼 자연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요. 자연스러운 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변화도 모두 관찰합니다. 드로잉으로 스케치를 하고, 나무 재료를 직접 사용해 프로토타입을 제작해요.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통해 개발 중인 시리즈 작품의 첫 번째 버전 혹은 스케치 형태의 작품을 만들죠.
— 팩토리2에서 열리고 있는 <조응>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에 관해서 짧게 소개해 주시자면요?
먼저 이번 전시에 소개 중인 작품 <KUMPU>는 사람과 자연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형성된 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본질과 기원은 때때로 깊숙한 내부에 자리하고 있고, 외부 모습으로는 그에 대한 힌트만을 주곤 하죠. 이 조각의 인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연속성과 상호 간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짐을 독립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죠. 조각에 난 작은 구몽을 통해 비어 있는 속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내부에 자리한 본질과 진실을 살펴볼 수 있어요.
반면, 작품 <MELT>는 유리 소재의 특성을 통해 얼음이 녹아 다시 액체로 변하는 과정과 물이 다양한 표면 위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이를 통해 작품은 질감과 반사의 감각을 만들어내죠. 나무로 만든 몰드에 유리를 불어넣어 모양을 만드는데, 이러한 몰드를 활용한 덕분에 불에 탄 나무 표면과 매끄러운 유리 덩어리가 균형 잡힌 방식으로 교차해 유니크한 질감을 만들어 내는 점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작업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나 주의를 기울이는 부분이 있다면요?
재료의 특성을 존중하려고 노력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그 특성에 도전적으로 임하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작업 방식과 기술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의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니 코로마
한니 코로마(Hanni Koroma)는 이번 전시의 참여 작가뿐만 아니라 전시 공간 디자이너로도 참여했다. 한니 코로마는 핀란드의 인테리어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 핀란드 및 해외에서 100여 건이 넘는 개인 주택, 공공 공간을 디자인해왔다. ‘공간은 삶의 질을 바꾸는 중요한 요소’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집과 사무실 공간을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삶의 무대’로 인식한다. 즉, 사람의 행동과 패턴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공간 설계를 선보이는 점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그녀는 지속 가능하고 유쾌한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기능성과 미학을 결합한 사물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실용성과 미적 감각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는 핀란드 디자인 철학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조응>전에서는 ‘Protecting Wings'(2024)라는 제모의 수납 가구를 선보였다.
— 팩토리2에서 열리고 있는 <조응>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의 특징이 궁금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봉투 형태가 작품의 구조로 반복적으로 적용됐습니다. 팩토리2 갤러리 건물의 모양과 형태가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죠.
—디자인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 작업의 과정은 상호작용하는 면이 강해요. 보통은 특정 장소와 클라이언트를 염두에 두고 이를 작품에 반영해가며 진행합니다. 서울의 팩토리2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핀란드와 한국 문화 사이에서 재료와 형태의 강한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반영해가며 흥미롭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도 있나요?
자연이죠. 언제나 저의 예술 작품의 형태와 내용에 영감을 주거든요. 개인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재료로 사용하는 걸 선호합니다.
헬리 투오리-루토넨
헬리 투오리-루토넨(Heli Tuori-Luutonen)은 1980년대부터 텍스타일 작품을 선보이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섬유 예술가다. 작가의 작품은 현재 핀란드 국립 미술관, 핀란드 국립 극장, 제니와 안티 위후리 재단, 프란스와 이본 루이제스테이 컬렉션 등 저명한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독특한 형태를 지닌 작품은 수공예 방식으로 만들어졌는데 미니멀한 접근 방식을 취하는 동시에 작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기념비적이고 건축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연작 ‘Seamless'(2024)를 소개했다.
— 팩토리2에서 작품 연작을 소개 중입니다. 미니멀하면서도 구조적인 면이 눈길을 끄는데요. 작품에 대해 소개해 주시자면요?
‘Seamsless’ 연작은 리넨 실을 이용했습니다. 제가 개발한 고유의 기법으로 자유롭게 직조했죠. 하나의 3차원 작품으로 완성했어요. 직조 과정에서는 날실이 서로 교차하는데요. 한 날실의 씨실이 다른 날실의 날실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실이 사각 형태로 교차하고, 실의 색 역시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거죠.
—디자인 과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첫 번째 고리를 위한 색상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색상이 다음 고리의 색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그래서 스케치를 하지 않아요. 직조 작업으로 바로 완성하는 거죠.
—디자인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도 궁금합니다.
수작업과 천연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나탈리 로텐바허
프랑스계 핀란드 도예가이자 디자이너인 나탈리 로텐바허(Nathalie Lautenbacher)도 팩토리2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작가는 1999년부터 섬세한 색상과 미묘한 형태가 돋보이는 테이블웨어 컬렉션을 제작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MORNING'(2023)을 선보였다. 작가는 매년 새로운 도자기 컬렉션을 추가해오고 있는데, 각각의 제품은 석고 틀에 유색 포트셀린을 붓는 방식으로 세심하게 제작된다.
한편, 최근에는 테이블뿐만 아니라 벽, 바닥을 위한 도자기 작업을 선보이며 작품의 범주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작가는 기능적인 오브제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나오토 니도메와 협업해 대형 화분, 월 아트, 세라믹 설치 작품도 선보인 바 있다. 단순 세라믹을 넘어서 직물, 알루미늄, 나무, 석고 등 다른 재료와 결합해 실험적인 작품을 향한 관심도 작가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 세라믹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저는 색상과 유약으로 노는 걸 좋아해요. 직접 혼합한 슬립 캐스팅 포슬린 점토는 고유의 회색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 위로 다양한 유약을 겹치는 실험을 하죠. 가마에서 굽는 소성 과정에서 유약들이 자연스럽게 섞이며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도 흥미롭게 다가오는데요. 이 과정 이후에 타일 작품을 조합할 때는 직관적으로 임합니다. 하나의 조각이 다른 조각과 맞아떨어지기도 하지만 사실 그 조합을 예측할 수는 없는 거죠.
— 아무래도 재료에 크게 영향을 받는 작업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재료의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재료의 특성이 중요하죠. 세라믹은 미세한 특성에 따라 새로운 것을 만들고, 조합하는 과정이 매력적인 작업이에요. 천천히 진행되는 점토 작업 과정은 중독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흐름에 단단히 발맞추고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점토는 세상과의 강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밀라 바흐테라
디자이너 겸 아티스트인 밀라 바흐테라(Milla Vaahtera)는 개성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2017년 핀란드 디자인 박물관에서 전시된 <다이얼로그> 시리즈를 시작으로 작가는 모빌, 조각 펜던트 조명, 독특한 서빙 그릇 등 다양한 작품을 소개해왔다. 신체 이미지와 섹슈얼리티에서부터 창작 과정에서의 직관, 그리고 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작품을 통해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리공과의 대화를 통해 즉흥적으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반영하며 균형감과 긴장감을 조율하는 작품이 궁금하다면 전시장을 찾아보자.
— 이번 <조응> 전에서 소개 중인 작품에 관해 짧게 소개해 주시자면요?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겨울의 차가운 톤을 담은 황동과 유리 속에 얼어붙은 꽃과 식물로 구성했습니다. 유기적인 형태와 기하학적 형태가 결합해 독특한 입체감을 선보이고 있죠. 이번 작업에서는 처음으로 은을 사용했는데요. 이 점을 주목해서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하나의 작품이 되기까지 즉흥적으로 임한다고 들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일까요?
머릿속으로 디자인을 미리 계획하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흥미를 느끼는 요소를 선택하죠. 그리고선 손이 자연스럽게 형태를 만들도록 맡깁니다.
— 재료 선정부터 디자인 과정까지 작업 전반에 있어서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다면요?
수작업으로 만든 수공예품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량 생산과 디지털화에 대비되는 수공예 예술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껴요. 손으로 만든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자연스럽게 와닿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