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하고 아름다운 사물들, 편집숍 큐(Kew)
해운대에 자리한 김경민 디자이너의 큐레이션 스토어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의 대림맨숀에 자리 잡은 편집숍 큐. 김경민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편집숍으로 그의 감각으로 선별한 아름다운 사물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무용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 있는 아름다운 사물을 선보이는 브랜드 큐.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의 대림맨숀에 자리 잡은 큐의 쇼룸에선 브랜드를 운영하는 김경민 디자이너의 감각이 세심하게 묻어난다. 큐는 대림맨숀의 107, 108 두 호실을 함께 사용하는데 사무 공간은 107호, 쇼룸은 108호에 각각 위치한다. 이때 쇼룸을 방문하기 위해선 107호 사무 공간의 벽면에 뚫린 문(어쩌면 구멍으로도 볼 수 있겠다.)으로 머리를 깊게 숙이고 지나야만 한다. 문을 지나면 펼쳐지는 공간은 이곳이 해운대였나 싶을 정도로 바로 앞의 백사장과 고층 빌딩들로부터 단절된, 완전히 다른 맥락의 풍경을 선사한다. 순간의 이동으로 부산이 아닌 유럽 어딘가의 오래된 빈티지 스토어를 방문한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큐. 독특한 미감의 사물들만큼이나 스토어의 공간 경험은 브랜드를 더욱 특별하게 한다.

Interview with 김경민 디자이너
큐(Kew)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무용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 있는 아름다운 사물’들을 수집하고, 편집하고, 제작합니다. 큐는 그런 사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경험을 선사하려고 해요.
대표님은 편집 디자이너로 오랜 기간 활동하셨죠. 어쩌다 큐를 시작하게 됐나요?
큐는 2020년 2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던 시점에 팝업으로 시작됐어요. 그전에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미술관 도록이나 작품집의 편집 디자인을 주로 했었고요. 여러 브랜드 대표님으로부터 브랜딩 의뢰도 종종 받았는데요.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나도 내 브랜드를 운영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다고 바로 큐라는 이름과 방향이 떠오른 건 아니었어요. ‘그럼 어떤 브랜드를 만들지?’라는 고민이 오랫동안 이어졌죠. 구체적인 상품군을 정하지도 않았고요. 그러던 어느 날, 스튜디오 곳곳의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닷가에서 주운 돌멩이, 버리지 못한 마른 꽃잎, 여행지에서 모은 기념품들. 그중에는 사람들이 종종 살 수 있냐고 묻는 것들도 있었어요. 당연하게도 대부분 판매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죠.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쓸모없어 보이지만 오랫동안 옆에서 자리를 지키는 물건들을 소개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큐는 어떤 의미가 담긴 이름인가요?
영국 런던의 지역명이에요. 왕립 식물원 ‘큐 가든Kew Gardens’이 있어 유명한 곳이죠. 단순히 그 지역 이름을 좋아해서 선택했죠. 알파벳 배열도 마음에 들었고 식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도 반영했습니다. 그 외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주로 온라인과 팝업 전시를 통해 브랜드 활동을 펼쳐왔죠. 그러다 지난해에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의 대림맨숀에 오프라인 쇼룸을 선보였습니다.
브랜드 이름처럼 오프라인 상점을 연 이유도 단순해요. 디자인 스튜디오를 여기로 이사하면서 쇼룸도 열게 된 거죠. 앞서 이야기했듯, 저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팝업이나 온라인으로만 큐를 선보여 왔어요. 지금 이곳은 지인이 쓰던 공간이었는데, 공간을 비우게 되면서 스튜디오를 여기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마침, 기존 스튜디오의 계약일이 끝나갈 무렵이라 승낙했고요.

대림맨숀의 107호와 108호에 큐가 있는데요. 108호는 창고로 쓰이던 공간이라 당연히 저도 같은 용도로 활용할 생각이었어요. 큐에서 판매하는 제품이나 포장 부자재들을 보관해 둘 곳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내부를 정리하고 보니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렇다면 물건들을 놓아 보자’ 했는데 큐의 모든 분위기와 공간이 잘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1월에 이사하고 3월에 오프라인 상점을 부랴부랴 열었죠. 처음부터 오프라인 상점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오픈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큐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요.
공간 구성이 참 인상 깊습니다.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이 혼재하는 대림맨숀 자체가 주는 경험도 흥미로운데 대림맨숀 107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바로 왼쪽 작은 문으로 머리를 깊게 숙이고 통과했을 때 쇼룸이 펼쳐지는 풍경이 묘하더라고요.
큐는 107호와 108호 사이 벽에 낸 작은 문을 통과해야 쇼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쇼룸으로 쓰는 108호는 원래 창고였어요. 대림맨숀은 하나의 호실이 8~10평 남짓인데, 수납공간이 없는 오래된 맨숀이라 두 개의 호실을 같이 쓰고 있었죠. 창고의 물건들을 108호에서 107호로 빠르게 옮기기 위해 벽에 문을 낸 거예요. 처음부터 상점 출입구로 만든 문이 아니라 클 필요도 없었어요.


이런 이유는 공간 구성에도 반영됐죠. 운영하던 디자인 스튜디오를 옮겨 온 거라 당연히 입구 문을 열면 업무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쇼룸과 사무 공간이 같이 있는 곳은 사무실이 안 보이는 곳에 숨어 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이유는 뭔가요?”라는 한 작가님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다소 낯선 공간 구성을 지금까지도 제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을 거예요.

107호 문을 열고 들어오면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라 당황하는 분도 많아요. 잘못 찾아온 줄 알고 다시 나가는 분도 더러 계세요.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처음에는 그런 반응을 보고 108호의 원래 출입구를 열지 고민도 했지만, 재미있어하는 분이 더 많아 지금까지는 현재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몰랐던 장소를 발견하는 기쁨도 있고 누군가의 프라이빗 한 공간을 슬쩍 엿보는 재미도 느끼실 거로 생각해요. 무용한 것들은 발견되어야 비로소 쓸모가 생기는 법이니까요.
큐가 자체 제작하고 선보이는 사물들도 있을까요?
브랜드 운영 초기에는 대부분 자체 제작한 상품들을 선보였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어요. 그럼에도 큐에서 꾸준하게 제작하고 판매하는 것 중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첫 번째는 ‘Flower print envelope’이라는 봉투예요. 핸드메이드 종이로 만든 봉투에 실크스크린 프린팅 기법으로 마른 꽃 드로잉을 프린트했죠. 실크스크린 프린트와 식물 드로잉 모두 직접 하고 있습니다. 순수하게 봉투의 모양이 좋아서 따로 포함된 엽서나 카드 없이 판매하고 있어요.


다음으로 ‘KEW useful bag’이라는 바닥이 평평하고 납작한 모양을 한 천 가방을 소개할게요. 책을 담거나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어요. 여름이 되면 그 쓰임이 빛을 발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Garden robe’라는 제품으로 가볍게 감싸 주는 기분이 좋은 로브가 있어요. 바다에 갈 때나 여름철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죠. 주문이 들어오면 실크스크린으로 마른 꽃 드로잉과 큐 로고를 프린트해 보내드려요.
어떤 기준으로 사물들을 큐레이션 하나요?
정해진 용도가 없는 사물들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정해진 용도가 없다는 건 쓸모없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히읗의 세계를 운영하는 강신영 작가의 ‘Montblanc holder’는 큐에서 오랫동안 소개하고 있는 도자기 오브제인데요. 촛대나 인센스 홀더로 가장 많이 쓰이지만, 구매자분들이 공유해 주는 사진을 보니 플로어리스트에겐 꽃을 꽂는 침봉 역할을, 상점에서는 명함 스탠드로 사용되고 있더라고요. 열매나 과일을 올려 두는 색다른 테이블 웨어로 쓰이기도 하고요. 생활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Montblanc holder처럼 용도를 알 수 없지만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사물들을 발견하고 소개하려 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많은 분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선물을 고민하는 시즌이죠. 큐에서 선보이는 제품 중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강신영 작가님의 ‘Montblanc holder’와 주얼리 브랜드 CLED의 Eco Glass Gems ‘LOVE’ 시리즈 주얼리를 추천하고 싶어요. 앞서 소개한 대로 Montblanc holder는 사용하는 사람의 생활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오브제라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습니다. CLED의 ‘LOVE’ 시리즈는 디자인 자체로 명료하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제품이라 추천해요. CLED는 미국의 LA를 기반으로 버려진 유리를 재가공해 보석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 주얼리 브랜드예요. 아름다움과 친환경적인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선물이 될 거예요. 게다가 블랙 컬러 Eco Glass Gems은 LA 스튜디오에서 오직 큐를 위해 만든 것이라 더욱 특별하죠.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 해운대에 있는 만큼 정말 다양한 분이 공간을 찾을 것 같은데요. 오프라인 스토어를 연 이후 그간의 소회가 있을까요?
관광지인 만큼 일상의 어느 날보다 여행의 순간 일부러 찾는 타 지역 분들이 더 많은 듯해요. 여행지의 낯선 공간은 더 기분 좋게 느껴지는 법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사물을 판매하는 상점이라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108호를 창고로만 쓰지 않은 게 이곳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브랜드에서 펼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요. 해외여행이 다시 가능해지며 떠난 여행지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주는 안도와 알 수 없는 감동이 꽤 컸는데요. 큐가 위치한 곳이 관광지이다 보니 더욱 그랬습니다. 큐가 본래 전하려고 했던 방향과 감도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포함되어야겠죠. 생활에 꼭 필요한 사물을 소개하지는 않기 때문에 오프라인 상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보다 더 큰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런 안도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장소가 되도록 변하지 않는 것에 열중하는 새해를 보낼 예정입니다. 작은 변화가 있다면 기존보다 상점 오픈일을 더 늘릴 생각이에요. 지금까지는 주 4일만 오픈하고 있는데요. 일부러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일정이 맞지 않아 방문하지 못해 아쉽다는 피드백을 가장 많이 받았거든요. 오픈 일수는 아직 정확하게 정하지 않았지만 새해에는 좀 더 많은 날 만날 수 있도록 소식 전하겠습니다.
Information
큐(Kew)
주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302 (중동) 대림맨션 107
운영 시간 12:00 – 18:00 (수-일)
웹사이트 홈페이지,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