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어하임 베를린
여기 동물원 아니라니까요
베를린의 유기 동물 보호소 티어하임 베를린Tierheim Berlin을 소개한다. 우주 정거장을 연상시키는 이곳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 디드리히 반게르트는 ‘자연은 인간과 동물이 만날 수 있는 장소를 형성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대전제로 삼고 작업에 임했다.

축구장 22개 크기의 부지에 1500마리의 동물과 160명의 직원과 800명의 자원봉사자가 북적이는 이곳은 동물원도, 뮤지엄도 아니다. 베를린의 유기 동물 보호소다. 자고로 유기 동물 보호소의 사명은 동물에게 영원한 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일, 즉 입양이다. 이를 위해 고심한 디자인은 동물은 물론 사람도 떠나기 싫을 만큼 근사한 명소를 탄생시켰다.

동물 보호소 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무엇일까? 철창이 줄지어 있는 삭막한 광경 따위는 적어도 티어하임 베를린Tierheim Berlin의 대답은 아닐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시설로 유명한 이곳은 전례가 없는 디자인의 결과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베를린 시내 돼지 축산 농가 단지였다. 티어하임 베를린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 디드리히 반게르트는 ‘자연은 인간과 동물이 만날 수 있는 장소를 형성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대전제로 삼고 작업에 임했다.
2001년 문을 연 티어하임 베를린은 건물 대부분을 콘크리트 원과 기둥으로 구성해 우주 정거장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특히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때 더욱 그러하다. 직각을 이루는 빌딩 2개로 둘러싸인 입구를 지나면 왼편에 독일 고속철도처럼 쭉 뻗은 복도에 고양이 보호소가 자리한다. 오른편에는 시설 내에서 유일하게 밝은 빨간색으로 색칠한 리셉션 데스크가 있고, 행정 사무실과 작은 동물을 수용하는 건물, 동물 병원, 그리고 조류 보호 시설 등이 이어진다. 이곳 조류 보호 시설에는 현재 앵무새만 20마리 이상 보호 중이다. 개를 보호하는 구역은 원형의 보호막을 둘러싸 개가 짖는 소리가 인근 지역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이 구조물은 옛날 아날로그 전화기에서나 볼 수 있는 전화기 다이얼을 확대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 베를린 동물보호협회Tierschutzverein Berlin가 운영하는 이곳의 역사는 꽤나 오래됐다. 1841년 당시 프로이센 담당 공무원 C.J. 게를라흐C.J. Gerlach가 마차 말 관리가 부실한 것을 보고 동물 학대 실태에 맞서기 위한 협회를 구상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베를린 동물보호협회였다. 이후 1901년 베를린의 첫 동물 보호소가 베를린 랑크비츠Lankwitz에 처음 문을 열었고 100년 가까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시설이었던 이곳 역시 한 세기가 지나자 노후되었고 대안적인 새로운 공간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 사명을 맡은 건축가는 당시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디트리히 반게르트. 반게르트는 채식주의자이기도 한데, 그런 그가 동물 보호 시설 설계를 맡게 된 것은 그에게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티어하임 베를린은 현재 1500여 마리의 동물을 상시 보호하고 있다. 동물원과 유사한 모습을 한 보호소는 개와 고양이뿐 아니라 뱀, 원숭이, 돼지, 양, 염소, 더 나아가 쥐,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도 수용한다. 그러나 이들 동물은 아쉽게도 이 멋진 공간에 그리 오래 머무를 수 없다. 티어하임 베를린의 설립 목적은 유기 동물이 새로운 집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베를린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다. 이들은 야생 동물을 구경하거나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주말에는 방문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설의 재정을 충당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요. 동물 애호가들의 지원과 기부금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지요.” 베를린 동물보호협회의 홍보팀장 아네테 로스트Annette Rost가 말한다. 독일에서 동물을 입양하는 방법은 전문 사육자에게 상당 비용을 주고 분양받거나, 티어하임 베를린과 같은 시설에서 유기 동물을 입양하는 것이다. 전문 사육자에게 분양받는 대신 티어하임에서 유기 동물을 입양하면 초기 1년간 반려인에게 징수하는 일명 반려동물 세금이 면제된다는 이점이 있다. 세금 징수액은 거주지와 반려견의 종류에 따라 100유로 정도에서 수백 유로까지 이른다. 티어하임 베를린에 방문하면 인간과 동물 모두가 윈-윈 하는 그림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Interview
디트리히 반게르트 Dietrich Bangert 티어하임 베를린 설계 담당 건축가
“사람들 눈에 띄어야 하지만 동물원이기보다 뮤지엄에 가까워야 한다고 봤다.”

유기 동물 보호소를 설계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먼저 ‘이 보호소가 사람들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자문했다. 이건 도시 문화적 측면에서 바라볼 과제이기에 뮤지엄에 가까운 형태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봤다. 사람들 눈에 띄어야 하지만 그저 동물원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이곳이 유기 동물 보호라는 기본 목적 그 이상의 역할과 기능을 하길 바랐다. 이를테면 보호소 내 푸른 자연 속에서 사람과 동물이 조우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 물의 비율, 그리고 건물과 식물 간 비율과 조화를 중요시했다.
건물에 특정 구조와 형태, 색상, 소재를 사용한 이유가 있나?
내부는 통일감을 위해 소재 본연의 색 외에 다른 색깔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았다. 개를 수용하는 시설은 가변적인 구조를 목표로 했다. 개를 분리하는 칸막이와 한데 모여 지낼 수 있는 공간도 필요했기에 필요에 따라 칸막이를 쉽게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내부 환기구는 비행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는데 상부에서 새로운 공기가 유입되고 바닥에서 공기가 배출되는 형태를 적용해 시설 내 악취를 환기시킬 수 있게 했다.
티어하임 베를린이 동물 복지와 관련된 사회문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보통의 유기 동물 보호소는 소규모 가건물에서 운영했는데, 티어하임 베를린은 도심의 구심점 역할을 할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되었기에 특히 관심을 끌었다. 마치 근사한 뮤지엄처럼 각종 행사를 유치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SF 영화 <에어론 플럭스> 제작진이 동물 실험 장면을 촬영한 적이 있고, 독일 TV 시리즈 <크라임 씬>도 에피소드 한 편을 촬영했다. 기업 홍보 영상이나 패션 브랜드 화보도 종종 촬영한다. 시설이 전반적으로 더욱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애초 이 시설을 설계할 때 의도한 바 그대로 끊임없이 회자되고 영향을 미치고 새로운 인식을 불어넣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