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코노미 시대의 디자인

1CONOMY DESIGN

올해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주제는 ‘1인 가구를 위한 디자인’, 일코노미 디자인이었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솔루션부터 미래의 내 공간을 구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시뮬레이션 키트까지 실용성과 확고한 콘셉트를 두루 겸비한 채 시대상을 반영한 디자인을 모았다.

일코노미 시대의 디자인

올해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주제는 ‘1인 가구를 위한 디자인’, 일코노미 디자인이었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솔루션부터 미래의 내 공간을 구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시뮬레이션 키트까지 실용성과 확고한 콘셉트를 두루 겸비한 채 시대상을 반영한 디자인을 모았다.


1인 가구 시대를 알리는 오프닝 행사

안무 디자인 안겸(모므로 움직임 연구소), 무대 디자인 김지원 음악 디자인 sbt(석대범), 파티 디제잉 DJ Ziㅂ

2017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일코노미 시대의 상징적인 장소인 편의점을 배경으로 특별한 오프닝 행사를 진행했다. 먼저 전문 안무가가 14명의 현대무용수, 연극배우와 선보인 15분가량의 퍼포먼스로 행사를 시작을 알렸다. 별도의 장내 안내 방송 대신 휴대폰 알람 소리, 게임 속 전자음, 군중의 웅성거림 등 일상 속 사운드의 반복에 전시장 중간에 위치한 가로세로 각각 9m의 무대로 관람객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미 관중 사이에 있던 추리닝 차림의 퍼포머들이 하나둘 런웨이처럼 펼쳐진 무대로 나와 장바구니를 활용한 안무를 선보였다. 점점 사운드가 확장되며 안무도 클라이맥스에 달했다가, 다시 처음과 같은 대열로 돌아가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듯 익명의 이웃이 되어 군중 사이로 흩어졌다. 퍼포먼스와 개회사, 2017 코리아디자인어워드 시상식이 끝난 뒤에는 일반적인 케이터링 대신 준비한 라면, 삼각깁밥, 핫바, 샌드위치, 호빵 등 약 200인분의 단골 혼밥 음식과 크래프트 비어 더 부스의 맥주를 관람객과 나눴다. 여기에 자전거와 수레, 미니바가 결합된 형태의 커스텀 카고 바이크 ‘라이드 서울’이 시장 부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오프닝을 알리기도 했다. 이번 오프닝 기획은 문화 기획 집단 RCK의 콘텐츠 기획자 이미혜의 디렉팅으로 일코노미를 해석하는 다채로운 콘텐츠를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다.

Interview
이미혜(RCK) 콘텐츠 기획자, 칼럼니스트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인 만큼 디자인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드시 전문 퍼포머들이 필요했다. 일코노미 시대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이 있어야 편의점 케이터링도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봤다. 퍼포머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뚱뚱하거나 마르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하는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길 바랐고, 무대 또한 하나의 디자인 작품으로 보이도록 미니멀한 흰색에 편의점의 상징인 하얗고 환한 불빛을 내뿜는 T5를 칸마다 부착했다.”

가라지가게의 빼빼장

디자인 장영철(와이즈건축 공동대표), www.garageage.com

쓰임새 좋고 적당한 가격의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라지가게의 간결한 맞춤 수납장 빼빼장은 벽면부터 천장, 바닥까지 커버하는 넉넉한 수납공간이 될 수 있다. 1220×2440mm 크기의 자작나무 합판으로 뼈대를 만든 모듈을 기반으로 간결하고 쓰임새 좋은 선반, 의자, 책상 등을 제작해 궁극적으로 여백을 디자인한다.

클래식 원목 모바일 거치대

디자인 안성우(제이비우드 대표), www.jbwood.net

1인 가구는 집에 TV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간이 좁은 탓이기도 하지만 컴퓨터나 모바일 기기로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블릿이나 모바일 기기로 영상을 보되 거치대 대신 클래식한 감성을 살린 이 제품은 어떨까? 목공예가가 스마트폰을 너무 가까이서 보는 조카의 시력을 우려해 만든 이 제품은 모바일 기종이나 원하는 컬러에 맞춰 직접 제작해 완성한다. 가격은 9만 9000원.

배달의민족

기술로 음식, 문화, 경험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배달의민족은 지난 5년간 디자인한 5개(한명수 이사는 ‘5명’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의 서체 한나, 주아, 도현, 연성, 기랑해랑을 부스에 살아 있는 인격체로 소환했다. 한쪽 출입구에는 5개의 스크린과 스탠딩 마이크를, 반대편 출입구에는 한나, 주아, 도현, 연성, 기랑해랑의 이름이 적힌 샤워 가운을 입은 스태프들이 각자의 방에서 헤드폰을 끼고 노트북 앞에 앉아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다. 관람객이 “주아야!” 하고 말을 걸면 스크린에 바로 그 서체를 사용한 텍스트로 타이핑을 한다. 눈치 빠른 이들은 금방 알아채고 웃음을 터뜨렸지만 소수는 ‘진짜 사람이랑 대화하는 것 같은’ 배달의민족의 훌륭한 인공지능에 끝까지 크게 감탄하기도. 배달의민족은 실제로 올해 초 100억 원을 투자해 인공지능 배민 데이빗을 개발 중이다. 이번 전시는 이런 큰 그림을 진지하듯 허를 찌르듯 배민다운 언어로 표현했다. 이런 배경을 아는지 모르는지에 관계없이 관람객들은 배달의민족의 서체 이름을 소리 내 불러보았을 뿐 아니라 맞춤형 친밀한 대화를 통해 유쾌한 기억을 쌓고 돌아갔다.

Interview
한명수 배달의민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인이란, 브랜드란, 전시란,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길 바랐고, 가장 배민다운 언어를 단순하게 드러내며 전시 자체를 디자인하고자 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한창 각광받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환기시켜보고 싶었다. 만족도가 높은 ‘기계와의 대화’라는 게 실제로 가능할까?’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현대인들의 배고픈 위장에는 음식이면 되지만 굶주린 영혼에는 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진지한 태도로 유쾌하게 구현해봤다.”

배쓰품 수납함

디자인 최지연(울산대학교 제품환경디자인학과, 코리아디자인멤버십 부산), 인스타그램@jiyeon._.c

배쓰품(Bath Poom)은 좁은 욕실을 사용하는 1인 가구의 변기 수조 위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수납 트레이다. 치약, 칫솔, 샴푸 등 기본적인 욕실용품 이외에 음악을 들으며 샤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에서 착안한 모바일 거치대도 고안했다.

에이직 옷걸이

디자인 김인수(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코리아디자인멤버십 대전), insu.kim.kor@gmail.com

흔히 사용하는 철사 옷걸이는 잘 휘고 옷걸이끼리 꼬이기 쉬워 미관상, 기능상 불편한 점이 많다. ABS 소재로 양산 준비 중인 에이직(Ajjik)의 옷걸이는 내부에 3mm, 4mm 네오디뮴 자석을 내장해 서로 가까이 있으면 서로 달라붙는다. 좁은 옷장에서 차지하는 부피를 줄여 정리 정돈에 유용하다.

상일의 유산 프로젝트

디자인 전상일, www.heritageofsangil.com

‘상일의 유산’은 2012년부터 디자이너 전상일이 진행해오고 있는 자체 컬렉션으로 현존하는 유산, 물건의 원형에 디자이너의 관점을 담아 디자인한 클래식 리빙 제품 시리즈다. 서랍이 딸린 상판을 투명한 아크릴로 만든 책상 ‘민주주의 책상’은 상판 양 끝 부분에 손이 들어갈 만큼 충분한 공간을 잘라내어 서랍을 여닫지 않고도 책상 서랍에 손을 넣을 수 있게 했다. 또한 식기 디자인을 최대한 단순화한 형태의 ‘접시와 젓가락’은 젓가락을 접시의 일부이자 특징적인 조형 콘셉트로 활용했다.

일러스트레이션 클리넥스 케이스

디자인 육일칠(대표 백종열), www.617.co.kr

하얀색 클리넥스 대신 보라, 분홍으로 개성을 입힌 컬러 펄프지가 케이스에 그려진 페이스 일러스트레이션와 연결돼 마치 형형색깔의 머리 스타일처럼 보인다. 노트 뒷면을 쓰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수첩, 한 사이즈로 모든 체형을 커버하는 속옷, 안경다리를 교체할 수 있는 안경 등을 만든 백종열 감독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육일칠의 또 하나의 유쾌한 아이디어. 판매 일시는 아직 미정.

이로하 플러스의 토리, 쿠시, 요루

디자인 텐가, www.tenga-global.com

1인 주거가 아니어도 혼자만의 시간을 위한 제품. 텐가의 여성용 바이브레이터 라인 이로하 플러스(Iroha+)의 토리(새), 쿠시(조개껍질), 요루(고래)는 7단계 강약 조절이 가능하고 각 형태에 따라 자극 포인트가 나뉜다. 새의 부리와 꼬리 굴곡은 삽입이 가능한 포인트가 되고, 고래의 입은 깨물고 흡입하는 듯한 자극 포인트로 활용할 수 있다. 부드러움을 극대화한 이중 실리콘 재질로 그립감이 좋고 생활 방수가 가능하다. 가격은 14만 원.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

‘가치 있는 생산, 기분 좋은 생활’이라는 기치를 내건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는 디자이너가 소비자로부터 모바일로 선주문을 받아 딱 그만큼의 수량을, 재고 부담 비용이 빠진 가격으로 판매하는 플랫폼이다. 제조업의 재고 처리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소비자에게 좋은 가격의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궁극적으로 자원 낭비를 막는다. 전시는 그동안 사용자들로부터 가장 좋은 반응을 얻었던 대표 제품을 소개했는데, 이는 2016년 2월 서비스를 론칭한 이래 오프라인에서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첫 기회이기도 했다. 인기 제품군은 대부분 나의 방이나 욕실, 거실에서 사용하는 제품으로 개인의 생활 반경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이에 부스를 거실, 침실, 욕실로 나눠 구성하고 그곳에 필요한 물건을 진열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구성했다.

Interview
정영주 카카오메이커스 서비스팀 팀장

“전시에 소개할 인기 제품을 모아보니 우리 일상에서 매일 쓰는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곧 개인의 취향이 가장 잘 드러나기도 하는 물건이었기에 개인의 방이나 사무 공간, 욕실 등을 아우르는 ‘집’을 콘셉트로 삼았다. 현장에서 판매하기보다 대형 QR코드 간판을 세워 모바일에서 바로 주문할 수 있도록 안내했는데, 그 자체가 플랫폼의 특장점을 잘 드러내는 프로모션 방법이었다.”

플레이 마이룸

디자인 디어 아키텍트(대표 최재영), cargocollective.com/ deararchitect

“집은 공간과 가구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의 생활이 반영돼야 한다”를 모토로 하는 디어 아키텍트는 공간과 관련된 제품을 만든다. 3D 프린팅으로 출력한 시뮬레이션 공간과 가구 등을 다양한 키트 제품으로 선보이고, 거주 인구에 따른 최적의 배치를 제안하기도 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475호(2018.01)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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